은하수의 소설(Original)/Mutation-Kimera(리메이크)

Mutation - Kimera : 제 2 각성 ②

★은하수★ 2009. 3. 26. 16:23

디레스는 민의 뒷모습을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시아에게 가까이 갔다. 시아는 큭큭 거리면서 겨우 진정했다. 시아가 이렇게까지 즐거워하는 건 요 근래 처음, 아주 오랜만이었다.

“휴-. 무슨 일이야?”

“아니, 보스. 그건 내가 물어볼 말이야.”

“얘기할 거 있다며.”

“방금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격하게 궁금해져서 말이지. 보스는 왜 그렇게 웃고 있었고 민은 왜 저런 거야? 민이 저렇게 당황해 하는 건 양아버지인 나도 몇 번 못 봤는데.”

디레스에게는 죄다 기이한 현상이었다,

“그게 말이지. 흐응-, 귀여웠어.”

“뭐?”

제 2천왕은 자신이 단어를 잘못 들었나 했다. ‘귀엽다’라는 형용사는 보스와 제 1천왕 사이에서 존재할만한, 아니 존재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었다.

“야-. 민인 귀여운 구석이 있는 줄은 몰랐어. 그 표정이 나오는데 3년이나 걸렸단 건가? 쿡.”

확 빨개진 얼굴이며 당황스러워하는 표정 모두 시아의 머리에 분명하게 입력됐다. 시아는 부하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했다는 사실로도 즐거웠다.

“보스가 민을 귀엽다고 하다니…….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데?”

“아마 안 될 거야. 나도 처음엔 놀랐다니까.”

시아가 붐은 액체에 젖은 서류가 그 증거였다.

“우리 보스, 눈요기하셨겠네.”

“눈요기라……. 응. 눈요기했어. 그리고 1년 치는 웃은 것 같아.”

“으음. 보스가 그렇게 웃으니까 괜시리 맘이 편해지는데?”

보스의 행동 하나, 표정 하나가 길드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는 공식이 헛소리는 아니었다. 높은 자리에서 거대한 적을 상대하면서 큰 책임을 지고 있는 꼬마 보스가 늘 안쓰러웠는데, 이렇게 웃는 여유를 아주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 적잖이 위안이 됐다.

“한창 기분 좋은데 찬물 끼얹는 거 아닌가 몰라.”

디레스는 시아에게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서류의 윗부분에 검정 테이프가 둘러져 있었다.

“여기가 그런 곳이잖아. 한창 축제 분위기라도 전투가 터지면 즉시 움직여야지. 기분을 잡친다. 이 말이 나올 새가 없는 곳이 어디도 아니고 ‘길드’잖아.”

이미 변칙적인 생활에 익숙한 시아는 분위기가 급변한다 해도 그에 바로 맞출 수 있었다. 부정적인 표현이지만, 시아의 나이에 벌써 상황에, 시대에 순응하는 법을 익힌 것이다.

“이번에 갔다 온 다스 엔데에 대한 거야?”

“그건 레스가 제출할 거야. 이건 다스 엔데보다 더 골 때리는 거라서…….”

“무슨 소리야, 이거…….”

종이를 한 장씩 설렁설렁 넘기던 시아는 한 부분은 뚫어져라 읽었다.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빠짐없이 속독했다.

[탁!]

“펜타곤이 실존한다는 얘기야?”

시아는 서류로 책상을 세게 내리쳤다.

“플릿하고 솔리가 직접 봤대. 그리고 거기 쓰여 있는 것처럼 다른 곳에서 목격된 게 한두 건이 아니야.”

종족을 초월한 절대 키메라를 ‘펜타곤’이라 부른다. 원래 키메라는 오리지널과 플러스, 두 종족으로 구성된 일개체(一個體)다. 그런데 펜타곤은 오리지널도 플러스도 존재하지 않고 모든 종족으로 변할 수 있다. 단순히 폴리모프처럼 모습만 바꾸는 것이 아니다. 세포의 구성, 몸 안을 흐르는 마력이 완전히 그 종족의 것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종으로 변할 때 구속체를 끊을 필요도 없고 몸에 부담되는 그 어떤 것도 없다 한다. 하지만 이 펜타곤은 전설 속에만 존재하는 상상의 생물체로 알려져 있다. 신전에 신의 기록이 있다고 해서 신이 실존한다고 확신하기 어려운 것처럼, 다스 엔데에 별별 이야기가 숨어있지만 펜타곤의 실존여부는 ‘그저 전설’로 보는 것이 대부분의 생각이다. 그러니 크루세이더는 펜타곤의 실존을 믿는 소수인 셈이다.

“바보 같은…….”

시아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사마엘도 이런 보고를 당연히 들었겠지. …츠뵐프 리터를 움직일 거야.”

“어떡할 거야, 보스?”

디레스는, 자신이라면 지금 당장 보스의 명령을 수행할 수 있다는 투였다.

“당연히 그 슈튀크를 찾아야지. 절대 놈들한테 넘길 수 없어.”

펜타곤은 절대 키메라 다섯 개체의 통칭이다. 하나만 따로 부를 땐 ‘슈튀크’라고 한다.

“그러면 보스가 직접 지휘하는 건가?”

“물론. 구역 정리는 후방 지원 녀석들을 최소로 두고 나머지 전원을 움직여야지.”

가디안스의 보스는 눈을 매섭게 떴다.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는 결의가 차가운 냉기가 되어 어려운 일을 앞두고 시아가 냉철하게 사고할 수 있게 했다. 가슴은 뜨겁게 그리고 머리는 차갑게. 덕분에 두뇌회전 속도가 빨라졌다.

“조금은 의외야.”

시아가 머릿속으로 빠르게 팀을 짜고 임무 배치를 하는데 디레스가 그 사고 회로를 끊었다.

“보스는 신화나 전설 같은 건 안 믿으니까 좀 더 조사해보라고 시킬 줄 알았어.”

“애석하게도 신화는 믿어. 애들 중에 갓블러드가 한 명 있잖아.”

“으음, 보스. 내가 말하려는 건 그게 아니야.”

“알아, 무슨 말인지. ……. 대비야.”

“대비?”

시아는 서류의 어떤 곳을 펼쳐서 디레스에게 보여줬다. 슈튀크가 굉장히 즐거워하면서 수백 개체의 엔트를 죽였다는 글이 있는 부분이었다.

“펜타곤이 대량 학살을 즐겼다지만 이건 그걸 흉내 낸 걸로 밖에 안 보여. 아니면 너무 오랜만이라 준비 운동을 한 걸까? 만약 진짜 슈튀크면 최대한 빨리 움직여서 크루세이더를 저지하는 것이고, 슈튀크가 아니면 ‘전원 초광역 수색’이라는 유례없는 레이더망으로 찾아내서 우리 쪽으로 끌어들여야지. 상식 밖의 힘을 갖고 있다는 건 확실하잖아.”

“그래서 대비인 거군.”

그럴싸한 설명이었다. 디레스는 보스의 논리를 수긍했다.

“특별 부대 소속이랑 무소속이랑 섞어서 움직일 거야. 오늘이 지나기 전에 지령을 줄 테니까 가서 기다리고 있어.”

“혼자서 전원을 새로 짜겠다고?”

“지금 조직체계도 나 혼자 한바탕 뒤엎은 거잖아.”

모든 인사 정리는 보스가 직접 했다. 덕분에 누가 어디에 적합한지, 누구와 궁합이 잘 맞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보스가 길드 내부에 대해 이렇게 훤히 꿰고 있으니 가디안스가 철저하게 보스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아, 그랬지.”

“알았으면 얼른 나가. 할 일이 많다고.”

“Ja, für Sie, meine Boß."

시아는 책상 위에 쌓여있는 기타 서류들부터 후딱 해치우기 시작했다.

어느 덧 저녁때가 되고, 가족들은 인간 순종이고 시아가 키메라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은 척 집에 들어가야 했다. 착실한 딸이자 언니이자 누나로 있으면서 머릿속으로는 슈튀크를 수색하기 위한 임무 배치를 빠르게 짜 맞췄다. 깊은 밤이 오고, 시아는 수면 마법으로 가족들을 일직 재운 후에 큰 배치도와 각각의 지령을 갖고 아지트로 돌아갔다.

보스에게서 집결 텔레파시를 받은 4천왕이 전원 보스 집무실에 모여 있었다. 디레스에게 이미 슈튀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상태라 서설을 주저리 늘여 놓을 필요가 없었다.

“우리 꼬마 보스께서 또 대단한 발상을 했다면서?”

제 4천왕 밀리엄이 활짝 웃으면서 슈아에게 다가갔다. 슈아는 무표정을 일관한 채 아주 간단하게 응했다.

[뻑!]

정강이를 발로 채인 밀리엄은 너무 아파서 폴짝폴짝 뛰었다. 설마 그런 반응이 나올까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던 터라 알고 맞을 때보다 몇 배로 아팠다.

디레스는 쯧쯧 혀를 찼지만, 휴는 크득크득 웃으면서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한 밀리엄을 붙잡았다. 민은 아예 밀리엄을 신경 쓰지 않았다. 시아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긴장감 좀 가져. 그렇게 헤벌레하고 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

“보스-. 그건 엑서스엘 씨의 말버릇이잖아.”

“안 아팠나보지? 휴, 저 녀석 쓰레기통에 갖다 박아.”

“Ja, für Sie…….”

“아냐, 보스, 아냐, 잘못했어.”

밀리엄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자신보다 한참 어리지만 길드 가디안스의 보스라는 사실을 다시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함부로 건드렸다간 본전도 못 뽑을 상대라는 사실도 덧붙였다.

“이게 이번 배치인가요?”

제 1천왕은 보스가 만든 배치도와 지령들을 하나하나 훑어봤다. 썩 마음에 드는 듯 했다.

“응.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그래도 모르는 일이니까 녀석이 슈튀크라는 가정 하에서 짠 거야.”

“보스 머리는 분명히 슈퍼컴이에요.”

단시간에 약 90명의 임무 배치를 새로 짜는 건 보통 재주가 아니었다. 민은 자신의 보스는 역시나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보스의 능력을 하나씩 볼 때마다 점점 보스를 추종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보스 밖에 모르는 바보 중에서도 손꼽히는 바보라고 해두자.

민은 지령을 끝까지 훑어보면서 각 천왕들에게 줄 것들을 분류했다. 시아가 처음부터 정리해서 오긴 했지만 간혹 섞여 있는 것도 있었다.

“성급하게 굴지 않아도 내가 어련히 알아서 할 걸, 뭣 하러 쓸데없는 수고를 해?”

슈튀크 건의 서류를 다시 살펴보던 시아는, 민이 분류를 끝낸 지령을 각 천왕들에게 나눠줄 때, 민이 또 잡일에 손댔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민은 자기도 모르게 몸이 움직인 거라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깨나 민망했지만 다른 천왕들과 같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뭐 어때서 그러십니까? 4천왕은 보스의 수족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제 1천왕을 민망함에서 구제해준 이는 제 3천왕이었다. 아마 자신도 평소에 보스의 등하교를 챙기기 때문에 제 1천왕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리라.

“그 ‘수족’하고 ‘잡일’은 엄연히 달라. 됐어. 잡담은 이만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시아는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휴의 눈에는 꼬마 아가씨의 새침한 표정으로 보였다. 보스는 자신이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능력자로서 존중하기 위해 4천왕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들이 수족을 자청하면 보스도 속으로는 나름대로 어쩔 줄 몰라 할 것이다. 휴는 이런 보스의 마음속을 제대로 들여다봤다.

“정보 부대는 반으로 나눠서 각각 특수 전투 부대와 진격 부대랑 붙였고 수색 부대는 셋으로 나눠서 암살 부대, 진격 부대 그리고 후방 지원 부대에 붙였어. 이게 이번 기본 조직이야. 예외는 예외대로 다른 임무가 있으니까 다른 녀석들과 섞이지 않게 해.”

“암살 부대는 원래 1인 체계인데……. 그거 무시하고 수색 부대랑 같이 움직이는 건가요?”

시아만이 지휘할 수 있는 길드원이 있다면, 4천왕은 제외하고, 보스 직속 암살 부대다. 특수 전투 부대로 보스 외의 간부는 손댈 수 없었지만 지금은 제 1천왕에게 지휘권이 있다. 이 두 부대는 특성 상 가디안스의 무체계 속에서 예외로, 조직 체계가 일정하게 정해져있다. 암살 부대는 1인 체계, 특수 전투 부대는 3인 체계가 그것이다.

“응. 너랑 솔리만 단독이고 나머지 모두 수색 부대랑 2인조로 움직일 거야.”

가디안스 내에서도 탑클래스라는 암살 부대에서 또 ‘탑’으로 불리는 제 1천왕과 강 솔 리가 특수 임무를 맡았다. 다른 천왕들은 그들이 어떤 임무를 맡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민도 솔리가 어떤 임무를 맡는지 알 수 없다. 보스와 담당자만 아는 일종의 극비였다.

“우리 쪽은 부대 특성상 복잡하게 갈리는군.”

디레스가 수색 부대와 정보 부대를 맡기 때문에, 항상 그랬지만, 이번에는 길드 전체가 움직이는 터라 부대 중에서 가장 복잡하게 쪼개졌다. 하지만 시아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알아서 짜줬기 때문에 디레스가 머리 쓸 일은 없었다. 그저 잘게 쪼갰다가 다시 모아서 각각의 보고를 처리하는 일이 귀찮으리만치 성가실 뿐이었다.

“잠깐 있어봐……. 보스, 보스도 조로 움직이는 건가?”

디레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령 중에 동생 플릿의 지령에 있는 의외의 사실에 놀랐다. 제 1천왕과 솔리가 단독으로 움직이는 판에 보스가 누군가와 같이 행동할 줄은 몰랐다. 원래 보스 성격대로라면 더더욱 혼자 곳곳을 헤집고 다니는 게 정상이었다.

“응. 플릿이 이번 타깃을 직접 봤잖아. 데리고 다니는데 그만한 매력적인 조건이 어디 있어.”

“일리 있는 말이군.”

“플릿이 위험해질 일은 없을 테니까 안심해.”

“무슨 소리야. 보스랑 같이 다니는데 걱정할 필요 없지. 게다가 그 녀석이 애도 아니고, 이런 일을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니고. 걱정하는 거라면 100년도 더 전에 그만 뒀어.”

엑서스엘 형제의 우애는 길드 내에서도 유명하다. 둘 다 레드 드래곤 순종이면서 종족 이미지와는 안 맞게 서로를 세심하게 챙겼다. 겉으론 아닌 척 하지만 열심히 신경 쓰고 있는 모습이 타인의 눈에도 쏙쏙 들어갈 정도였다.

“그렇다는 분이 100년 동안 똑같은 레퍼토리를 읊었다면서?”

“무슨 말이야?”

시아는 밀리엄의 말에 형식적으로 반응을 보였다.

“으응-, 스승님이 가르쳐 주신 건데, 디레스가 100년 전부터 ‘플릿을 걱정하는 거라면 10년 전에, 20년 전에, 50년 전에… 그만 뒀어.’라고 말했데. 스승님은 그 100년 내내 똑같은 말을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았다나 뭐라나.”

밀리엄은 디레스의 말투를 똑같이 따라했다. 밀리엄이 혼자 키득거리고 있다면, 시아는 ‘그래?’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지금 상황에 어울리지 않은 말을 길게 주절거려서 곱게 무시해버렸다.

“직위를 떠나서 오리지널이 하이 엘프인 분이 어떻게 이렇게 경박할 수 있습니까?”

“읏……. 뭐라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줬는데?”

“보- 스-.”

제 4천왕은 발끈해서 제 3천왕을 향해 상체를 돌렸다가 보스의 한 마디로 김이 팍 샜다. 눈가가 촉촉하고 눈망울이 아롱아롱한 강아지로 변했지만 보스가 전혀 쳐다봐주지 않았다. 그렁그렁한 눈은 가벼운 좌절로 변했고 고개가 떨궈졌다.

“상황 파악 못하고 농담 따먹기나 하는 녀석은 버리고 우리끼리 계속하지. 휴, 구역 수색 팀을 최소로 짜긴 했는데 상황에 따라서 그 팀도 이번 계획에 낄 수 있으니까 사전 통지해 둬. 아지트에 남는 건 특수 전투 부대 제 6조, 정보 부대의 팔커 그레실, 후방 지원 부대의 구 화타, 질버르 아르츠나이, 무소속의 몬드 힘멜, 조네 힘멜, 게슈티론 코스모폴릿. 이상 9명이야. 이 대기조는 누구와도 자리를 바꿀 수 없다고 지령 전달 때 같이 말해.”

시아는 자신이 짠 배치를 최종 점검 했다. 그럴 리 없겠지만, 한 명이 두 곳에 중복 배치 됐다거나 아무런 배치도 되지 않은 자가 있다거나 하면 작전을 시작하고 나서 일이 꼬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카오스 이론. 아주 작은 실수라도 결정적인 흠이 될 수 있다는 시아의 지론이었다. 4천왕을 일부러 불러서 각 지령을 확인하는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길드원 전원이 자리이탈 할 수 없다는 말이네요.”

“예외가 있다면 구역 수색 팀 뿐. 이런 말씀이십니까?”

민과 휴의 간단한 정리를 들은 시아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리고 왼손을 어깨 높이로 가볍게 들고 손가락을 한 번 퉁겨서 집중적으로 움직일 지역을 영상으로 보여줬다. 다스 엔데를 중심으로 대략 반경 10km가 됐다.

“이번 타깃이 슈튀크일 것이라는 가정 하에 탐색 구역을 정하신 겁니까?”

“임무 배치를 그에 따랐는데 당연하지. 자……. 플릿과 솔리가 그 녀석을 발견한 곳이 이쯤이고, 다른 목격 지점도 대부분 이 범위 안에 고루 있어. 그러니까 이게 제일 합리적이야.”

시아는 오른손 검지의 끝으로 검은 마기를 가늘고 길게 뻗어서 영상을 차근차근 가리켰다. 시아가 가리킨 곳마다 엄지손톱만한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 다음에 이번 단체 임무의 각 조가 배치될 곳을 표시했다. 영상의 중앙에 있는 다스 엔데를 꾹 찌르자 약지손톱만한 붉은 불꽃들이 일제히 타올랐다. 푸른 불꽃을 중심으로 붉은 불꽃이 산재해 있었다.

영상 지도를 검토하는 중에 예리한 제 1천왕이 어느 지점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그냥 지나쳐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아주 작은 흰 점이 찍혀있었다.

“보스, 이건 뭐에요?”

“아-. 거긴 솔리가 있을 곳이고, 넌… 여기야.”

시아가 가리킨 곳에 똑같은 흰 점이 있었다. 단독 비밀 임무 수행자 2인을 표시한 것이었다.

“참고로 난 여기서부터 남쪽으로 움직일 거야.”

다스 엔데의 북쪽 경계에 작게 찍혀있는 검은 점이 시아와 플릿의 위치였다. 시아는 자신이 이동할 예상 경로를 직선으로 쭉 내려 그었다. 영상을 다시 전체적으로 보니 길드원의 배치가 시아의 동선을 중심으로 거의 좌우 대칭이었다. 민과 솔리의 배치도 그러했다. 민이 동쪽, 솔리가 서쪽이었다.

“이거 무슨 군대의 대형 같군."

“응, 맞아. 일부러 대형을 맞췄어. 크루세이더도 당연히 움직일 텐데 만발의 준비를 해야지. 제일 골치 아픈 단체전을 하게 되면 대형이 없는 것보다는 간단하게라도 하나 만들어져 있는 쪽이 조금이나마 더 유리하겠지.”

“그래서 자리 이탈은 안 된다고 한 거군.”

제 2천왕은 시아의 전체적인 의도를 이해하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하나하나 따로 노는 것 같은 요소들이 알고 보니 서로서로 긴밀하게 얽혀있었다.

“얼마나 쓸모 있을 지는 장담 못하지만 도움 안 되는 쪽은 아닐 거야.”

입김을 한 번 훅 불자 바람에 쓸리는 연기처럼 스르륵 밀려 사라졌다. 이로써 배치 점검이 끝났다. 시아는 등받이를 밀듯이 등을 뒤로 젖히면서 잠깐 자기 생각에 빠졌다. 의자를 좌우로 느리게 돌리기도 했다. 다른 생각을 마치자마자 움직임을 멈추고 상체를 앞으로 내밀면서 책상 위로 이마를 떨어뜨렸다.

4천왕은 왜 그러느냐고 물으려다가 시아가 오른손만 들어서 나가라는 시늉을 하는 바람에 말을 걸지 못했다. 밤이 깊은데다가 두뇌 노동을 큼지막하게 해서 피곤한 것일 거라 생각하고 다들 조용히 집무실에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