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7 첫 조원자! 첫 습격!
밤의 종족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야행성을 띠는 딥데어족은 전투 종족답게 밤을 새우고 낮에도 일하거나, 낮을 꼴딱 보내고 밤에 일하거나 피곤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최소 두 시간은 자 줘야 하는 뉴노멀족과는 상반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오늘은 두 조로 나눠서 움직이자. 나와 엑시델이 동쪽, 비이와 폴은 서쪽으로 움직이면서 주변을 제대로 파악할 것.”
햇살이 숲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한 순간에 아침 식사를 하고, 곧바로 오늘 일정으로 들어갔습니다.
“난 언제쯤 너랑 한 조로 다닐 수 있는 거지?”
“당분간은 바꾸지 않을 거야. 엑시델이 너랑 비이를 불편해 해서.”
처음부터 패시를 눈에 두고 윌랜드로 온 폴이 거의 노골적으로 자기의 의도를 드러냈지만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살짝 둔한 패시는 전혀 감을 잡지 못했습니다. 폴은 연신 웃는 낯이었지만 저를 쳐다볼 때는 항상 꿍꿍이나 원하는 게 있어서 그러는 것 같아 의도적으로 시선을 피했는데, 패시는 그게 제가 폴을 아주 불편해 하는 거라 생각했나 봅니다. 뭐, 패시에 비하면 치니비랑 폴이 불편한 건 사실입니다. 특히 폴.
“에? 엑시델이 나도 싫어하는 거야?”
“싫어하는 게 아니라 뭐랄까, 내가 손보기 어려울 만큼 속수무책이랄까?”
“여걸족의 공주님도 사람을 차별하는 구나.”
“차별이라니? 어느 정도 익숙해 질 때까지 좀 더 시간을 가지려는 거야.”
이란성 쌍둥이가 외모며 성격이 일란성 쌍둥이에 비해 많이 다르다지만 이렇게 까지 차이가 날 줄 몰랐습니다. 패시는 어른, 치니비는 응석받이 꼬마. 차라리 나이차 나는 형·동생 사이라고 하는 게 날 것 같습니다. 누구나 믿을 것 같고. 더 황당한 건 일리안 쌍둥이가 저보다 2살 많은 오빠들이라는 겁니다. 패시는 오빠라 부를 수 있겠지만 치니비에게는 절대 그렇게 못합니다.
“호오? 크로네스테 아가씨가 공주 출신이야?”
치니비가 지나가듯이 흘린 말을 폴이 그냥 지나칠 리가 없지요. 상당히 의외라는 듯이 쳐다보는데 그 시선이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응. 헤시리스라는 여걸 족들의 소국의 공주님. 드렌필드도 황제 밑에 소국을 다스리는 왕들이 있잖아. 엑시델은…….”
“닥쳐.”
제 신상에 대해, 그것도 철저하게 숨기고 싶은 신분에 대해 남이 이리저리 떠벌리는 건 화가 치밀어 올라 머리가 터져버릴 정도로 싫어합니다. 일리안 쌍둥이를 처음 만난 게 윌랜드의 황제, 통칭 국왕의 소개 덕분이었는데 그때 국왕의 입을 제대로 막았어야 했습니다. 그냥 트레져 헌터라고 하면 될 걸 굳이 제 신분을 말해서 그들과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버렸습니다. 처음엔 제가 아니라 일리안 쌍둥이가 신분 차이를 의식하면서 서먹해 했거든요.
“곱게 자라지 못한 공주님이군. 여걸 족이랬나? 그쪽 특성 때문에 공주님마저 성격이 이렇게 돼 버린 거야?”
“그쪽 얘기는 꺼내지 마. 관절을 하나씩 다 끊어버린다.”
“역시 과민 반응. 알았어. 시키는 대로 할게.”
일이 생겼다 하면 왜 항상 폴에게 꼬투리가 잡혀서 휘둘리는 쪽으로 흘러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치니비의 말대로 타고난 천적과 사냥감관계 인지도…….
“자, 잡담은 이만 하고 얼른 움직이자.”
“라져.”
패시와 저, 치니비와 폴로 구성된 두 개의 조가 각각 동쪽, 서쪽으로 흩어졌습니다. 저희가 간 동쪽은 전날 치니비가 활개 치던 곳 근처였습니다. 살인 원숭이들은 저희에게 호되게 당해서 그런지 낌새조차 없었습니다. 특별히 시끄러운 일이 없으면 평화로운 평범한 숲인데 어디에 뭐가 있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봐도 봐도 낯설게만 느껴졌습니다.
“이런…….”
앞서서 잘 걸어 나가던 패시가 걷는 속도를 조금 줄였습니다.
“왜?”
주변에 수상한 기척도 없고 정체불명의 뭔가가 나타난 것도 아닌데 왜 그런가 싶었습니다. 그때 패시는 경계가 아닌 걱정에 가까운 표정이라 뭔가를 가져오지 않은 줄 알았습니다.
“비이한테 어제처럼 날뛰지 말라고 말하는 걸 깜빡했어.”
“난 또 뭐라고. 치니비가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닌데다가 폴이 같이 있잖아.”
“그렇지?”
폴을 좋게 말하는 건 내키지 않지만 치니비를 다루는 데 폴만큼 적합한 조련사(?)도 없으니 별 수 없었습니다. 패시도 치니비 옆에 폴이 있다니까 안심하는 것 같았습니다만 다른 말썽을 부리진 않을지 또 다른 걱정을 하는 듯 했습니다.
“이 근처엔 루-래빗이 꽤 많네.”
이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어린 루-래빗 한 마리가 제 옆에 있는 수풀을 헤집으며 저와 반대 방향으로 지나갔습니다. 몸집이 끽해야 두 주먹 크기인데 숲 속을 대범하게 혼자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벌레도 많아. 그만큼 네가 극도로 싫어하는 거미도 많을 테고.”
“겁주지 마.”
패시가 자기 어깨에 붙은 송충이를 제 쪽으로 퉁겨내면서 놀렸습니다.
“헤시리스는 산지라서 거미가 주먹만 한 것도 있을 텐데 조그만 거 하나에도 왜 그렇게 겁내?”
“수의사면서 고양이 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설명할 거야?”
“나름 일리 있는 말이야.”
패시는 분명히 웃고 있었습니다. 제 말을 비웃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제 말이 재미있는 말도 아닌데 왜 웃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거미 얘기만 나오면 심각해지는데 패시는 거미를 싫어하는 걸 넘어서 무서워하는 사람은 처음 봐서 신기했나 봅니다.
[삐이익, 펑!]
치니비와 폴이 있는 방향에서 신호탄이 쏘아 올랐습니다. 저와 패시는 동시에 뒤로 돌았습니다. 그리고 대화나 눈신호도 없이 곧바로 신호탄이 쏴진 곳을 향해 뛰어간 것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 두 조가 출발한지 10분도 안 됐는데 신호탄이 숲을 울린 건 저희를 긴장감에 빠뜨렸습니다.
[삐이이익, 펑!]
두 번째 신호탄이 저희의 다리를 재촉했습니다. 서쪽 팀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게 확실했습니다.
[뿌득]
“둘로 나누는 게 아니었는데.”
패시는 자신의 결정을 후회했습니다. 후의 이야기에 의하면 치니비와 폴을 서쪽에 보낸 것이 조를 나눈 것보다 더 후회스러웠다고 합니다. 윌랜드에서는 패시가 대장 격이니 다른 사람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가슴과 어깨를 짓누르다 못해 영혼까지 마비시킬만한 책임감을 느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패시를 대장으로 몰아세운 걸지도 모릅니다.
[부웅!]
[캉!]
세계수에 다다랐을 때 양날 도끼가 날아들었습니다. 패시는 빠른 속도로 롱소드를 뽑아서 도끼를 멀리 쳐냈습니다. 저도 크로스보우를 공격 모드로 준비하고 앞을 유심히 봤는데 문데비언 족 두 명이 저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만약에 폴이 원군을 부르러 갔다면…… 치니비 혼자 있는 거야?”
“텔레파시로 부를 테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마. 게다가 지금은 우리도 위험하거든.”
몬데비언족이 세계수로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하게 저희가 그들을 향해 달려 나갔습니다. 원군이 올 때까지 원거리에서 그들을 겨냥하는 게 몸을 지키는 데에는 안전한 방법이겠지만 그렇게 하면 세계수가 위험해지니 육체를 망가뜨리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잔나비들은 꺼져!”
몬데비언족이 상대를 위협하며 맹렬하게 달리는 모습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라서 동맹 결성 후 첫 대전인데도 전혀 겁나지 않았습니다. 최강이라도 무적은 아니라는 사실을 머릿속에 제대로 각인하고 있는 터라 마음 단단히 먹고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겨 급소를 향해 조준했습니다.
[사악]
[슝 슝 슝 슝 슝]
패시는 소드마스터의 상징, 백색 검기를 갖고 몬데비언족 한 명과 싸웠고 전 다른 한 명을 상대로 화살 10연발을 날렸습니다. 10발 중 한 발은 몬데비언족을 상대하기 위해 특별 제작한 은화살촉(이하, 은촉)을 달아놨었는데 제 상대가 날렵하게 10발을 모두 피해버렸습니다. 근거리 전에서는 제가 많이 불리하기 때문에 붙잡히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화살을 쐈습니다.
[슝 슝 슝]
몬데비언족이 근육이 발달해서 달리는 속도가 빠르다지만 자신의 심장과 목을 향해 정확하게 날아드는 화살을 피하면서 달리니까 제게 쉽게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 해도 점차 거리를 좁혀와 조금씩 긴장됐습니다.
[캉! 캉!]
패시가 있는 쪽에서 패시의 검기와 몬데비언족의 도끼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접근 전으로 공방을 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치니비와 폴은 모습도 보이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아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저도 선발된 전사니 적어도 짐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나무 위를 뛰어다니며 화살 통에 들어있는 은촉화살을 꺼내 크로스보우에 장전할 시간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이동하는 중이고 긴장을 심하게 해서 화실이 잘 장전되지 않았습니다.
“잡았다!”
절 쫓아오던 몬데비언족이 바싹 따라 붙어서 제게 손을 뻗을 때 누군가 옆에서 발차기를 갈겨 그를 떨어뜨렸습니다.
[구웅!]
몬데비언족은 기습 공격에도 침착하게 안전 착지 했습니다. 멈춰 서서 과감하게 드롭킥을 날린 이를 보니 일리안 쌍둥이가 부른 소드마스터 중 한 사람, ‘헤케온 텍스트리터’였습니다.
“아가씨를 그렇게 난폭하게 몰아 세워서야 쓰나.”
텍스트리터 씨는 윌랜드의 11인 소드마스터 중에서 최연장자입니다. ‘소드마스터’가 가진 특성 때문에 80을 넘은 연세(!)에도 20대 초반의 창창한 젊음을 과시하는 분입니다. 손자랑 동갑처럼 보인다고 좋아하시는데 자제분들은 5, 60대라는 걸 생각한다면 그 농담은 저희 앞에서만 하셨으면 바람이 있습니다.
헛소리는 이걸로 끝내고, 다시 텍스트리터 씨의 활약을 쓰자면, 한 마디로 이름값을 하셨습니다. 뉴노멀족은 평화 종족이라 약하지만 오랜 시간 단련하고 소드마스터처럼 어떠한 경지에 오르면 딥데어, 몬데비언에 밀리지 않는 그보다 강한 힘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텍스트리터 씨는 오랜 시간에 의한 경험을 체내에 축적하고 계신 소드마스터라 움직임 하나하나가 힘 있고 상대 몬데비언족을 조금씩 밀어 붙였습니다.
처음에는 멍하니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머리에 띵하는 느낌이 들면서 제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몬데비언족을 겨냥할 수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서서 은촉화살을 시위에 걸고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확정 사정 범위로 몬데비언족이 들어오자마자 주저 없이 화살을 쐈습니다.
[푹]
목을 노리고 쏜 거였는데 화살의 기척을 알아내고 팔로 막았습니다. 텍스트리터씨 때문에 피할 수는 없었던 겁니다.
“크읏.”
몬데비언족에게 있어 그 어떤 맹독보다 은이 제일 잘 통합니다. 체이서스에 살면서 사고할 줄 하는 자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죠.
“두고 보자.”
그 때 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뉴노멀족과 맞먹을 정도로 마법 능력이 제로에 가깝고 쓸 수 있는 자가 손가락으로 꼽힐 정도로 적은 몬데비언족이 주문하나 외우지 않고 워프로 도망친 것이었습니다. 세이버 사건 때도 그렇고, 마법에 능통한 자가 배후에 있는 게 분명하다는 걸 확신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지?”
“네. 덕분에요. 역시 소드마스터들의 대부셔요.”
“과찬이야. 아직 멀었지.”
텍스트리터 씨와 같이 세계수가 있는 곳으로 가니 드렌필드에서 온 원군과 윌랜드 일행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부상자는 두 명이었는데, 그린은 혼자 치료하고 있었고 치니비는 땅에 누워서 지브릴에게 치료받고 있었습니다.
“엑시델! 무사했구나. ……. 텍스트리터 씨! 제일 먼저 오셨군요!”
“경애하는 패시 일리안군. 아주 오랜 만이지. 치니비군의 상태는 좀 어떤가?”
“복부의 상처가 깊고 출혈도 심한 상태에요. 치료가 끝나도 당장 움직일 수 없다네요.”
보통은 부상당한 곳에 피가 흥건한 법인데 치니비는 옮겨온 자리까지 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지브릴은 치니비가 외·내상이 모두 심한 만큼 정신적 충격도 있을 것을 염려해 천천히 치료했습니다.
사람이 다쳐서 피범벅인 살덩이를 내보이는 걸 거의 본 적이 없어서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일고 토기가 올라왔습니다. 폴이 제 눈을 가려준 덕분에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어째서 치니비만 저렇게 심하게 다친 거야?”
“상대가 나빴어. ‘혈안의 야수왕’이 여기에 가담했을 줄이야.”
“혈안… 그 사람은…….”
“아는 대로야. 앞으로 훨씬 더 조심하고 제대로 대처법은 강구해야 돼.”
저와 폴은 트레져 헌터라는 특성 상 최고의 정보력을 자랑하기 때문에 ‘혈안의 야수왕’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자세히 잘 알고 있었습니다. 지브릴이야 원로급까진 아니더라도 상위 권력층 사람이니 그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이름만 아는 수준이었습니다.
“윌랜드의 소드마스터계에서 미래가 촉망한 새싹이 이렇게 망가지다니, 안타깝기 그지없군.”
텍스트리터 씨는 치니비에게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치니비는 정신을 잃은 상태라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신 같은 실력자가 왜 윌랜드의 대표가 되지 않은 거지?”
누군가가 다치는 꼴은 절대 보기 싫어하는 지브릴이 추궁하듯이 물었습니다.
“이번 대표들은 신탁에서 지정했잖습니까. 그리고 지금 이렇게 도우러 왔으니까 노여움을 푸시죠. ‘자비로운 붉은 나비’.”
지브릴과 텍스트리터 씨는 서로 잘 아는 사이인 것 같았습니다. 이날 밤 후설에 따르면 지브릴이 텍스트리터 씨가 소드마스터로 될 수 있도록 도와준 스승이라고 합니다. 아카데미를 막 졸업한 텍스트리터 씨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한 지브릴이 무서우면서 탄탄하고 기품 있는 훈련을 막무가내로 권했다는데 그걸 재미있을 거라 생각하고 선뜻 받아들인 텍스트리터 씨도 특이합니다.
“이봐. 헌터 엑시델. ‘혈안의 야수왕’이 대체 누구야? 폴 녀석이 입 다물고 있는데 알 수가 있어야지.”
“그 사람 말이야?”
“바람만큼 날렵하고 빛만큼 빠른 공격을 하다는 거밖에 알려진 게 없잖아.”
그린과 패시가 양쪽에서 ‘혈안의 야수왕’에 대해 물어보는데 폴의 눈치를 보거나 제 개인적인 생각에서나 모르는 게 약일 것 같아서 입을 꾹 다물었습니다. 지브릴도 그에 대해서 뻥긋하지 않는데 제가 얘길 해서 좋을 거 없지 않겠습니까. 싸움이 계속되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겠지요.
'은하수의 소설(Original) > 한달간의성전수호록(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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