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한달간의성전수호록(완)

한 달 간의 성전수호록 : D-24 대현자! 오카리나!

★은하수★ 2009. 3. 18. 09:38

D-24 대현자! 오카리나!

 

전 날 저택에 도착한 패시와 저는 평범한 대접을 받고 현자를 만나지 못한 채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저택의 주인이 윌랜드의 양대 대현자 중 한 명인 오카리나라는 것을 알고 저택에 들어갈 때부터 긴장했었는데 밤이 깊도록 만날 수가 없어서 더 긴장했습니다.

윌랜드에는 황제의 스승이 될 수 있으며 모든 이들의 추종을 받는 현자를 대현자라 부르며, 남성은 이아스, 여성은 오카리나라고 부릅니다. 윌랜드 역사상 이아스는 겨우 17명. 대부분이 오카리나입니다.

지금 양대 대현자는 모두 오카리나로, 다른 오카리나는 소국 로린드에서 제자를 양성하며 황제와 다른 왕들의 자문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나 접근하지 못하는 페카도나드에 일부러 들어와 은둔생활을 하는 저택의 주인과는 정반대죠.

“또 한 분의 우카리나가 은둔생활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게 페카도나드일 줄은 몰랐어.”

“뒷세계의 여장부인 제시 리프엔의 여동생이라는 게 더 놀라운 걸.”

리프엔 부부가 인포머라지만 오카리나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가했더니 이모와 조카사이였습니다. 리키가 차남이긴 해도 상당한 늦둥이라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랐고 멜리사는 그보다 어리니 지금 귀여움을 듬뿍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건 일종의 잡소리고, 리프엔 부부가 로포르에서 페카도나드까지 온 이유가 소문의 용병단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였는데 오카리나가 하프 데몬에 대한 개괄적인 이야기를 해줬다고 합니다.

리프엔 부부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었는데 제가 아는 이야기였습니다. 패시는 적잖은 충격과 흥미를 받았는데 좀 더 자세하게 알기 위해 직접 찾아간 것입니다. 오카리나가 우릴 받아들일지 확실도 없으면서 말입니다.

“오카리나의 이름을 부르는 건 실례인데, 우연히 그 이름을 알고 있어서 무의식적으로 입 밖으로 튀어 나올 것 같아.”

“알고 있어?”

“응. 제시 리프엔이 여동생에 대해서 닳도록 이야기했으니까.”

“호오-. 내 이름을 알고 있단 말이지?”

“딸꾹!”

저택 응접실 입구에 나타난 오카리나를 보고 깜짝 놀란 나머지 딸꾹질을 했습니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딸꾹!”

패시를 따라 인사를 했지만 딸꾹질 때문에 말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패시가 등을 두들기며 진정시켜준 덕분에 금방 멈출 수 있었습니다. 어린애도 아니고 놀라서 딸꾹질을 하다니 부끄러워서 숨고 싶었습니다.

“황제가 하사한 검을 가진 소드마스터와 체이서스 전역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트레져 헌터가 왔다고 하니 만나지 않을 수가 있나.”

기품 있는 말투와 범할 수 없는 움직임에 경건함을 느끼고 오카리나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가만히 서있었습니다. 도무지 먼저 앉을 엄두를 못 냈습니다. 저는 그토록 긴장을 했는데 패시는 전혀 긴장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윌랜드의 대표로서 세계수를 지키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네만 거길 두고 여기에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가?”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오카리나라고 해서 모든 걸 알고 있는 것을 아니라네.”

오카리나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저희가 할 얘기에 흥미를 가졌습니다.

생각보다 어려운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조금 안심했습니다.

“성전파괴자와 싸우면서, 그들이 단순히 플리에서 온 몬데비언족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기 크로네스테 양의 말에 의하면 ‘하프 데몬’이라고 합니다만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있다면 가르쳐주셨으면 합니다.”

패시는 능숙하게 오카리나를 대했습니다.

오카리나도 패시의 당당하고 침착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듯 했습니다.

“하프 데몬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 자체도 대단한 거야. 그대들은 ‘하프 데몬’에 대해서 알고 싶은 건가 아니면 지금 체이서스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하프 데몬 무리’에 대해서 알고 싶은 건가?”

“후자를 알려주십쇼.”

정확하게 집은 질문에 패시는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이미 하프 데몬의 존재에 대해 적잖이 충격을 받은 터라 그들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환멸적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해서라면 패시보다 제가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전자를 택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황제는 물론이고 아무에게나 전승되지 않는 역사를 들어야 한다네. 그 역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근엄한 표정과 묵직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쉽게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아무에게나 전승되지 않는 역사를 받아들인다는 건 그만큼 책임감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역사를 안 후에도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인데, 그런 종류의 역사를 접해본 경험이 당연히 없어서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누군가나 뭔가의 비밀을 알아낼 때나 SSS급 정보를 알아낼 때와는 다른 기분이었습니다.

“그대들은 그럴 자격이 있어. 하지만 아직 때가 이른 것 같군.”

“아, 오카리나…….”

저희가 대답을 못하고 있자 오카리나는 안타깝다는 표정조차 짓지 않으며 당연하다는 듯이 응접실에서 나갔습니다.

“뭐가 때가 이르다는 거야? 이건 아예 만나주지 않는 것보다 더 치욕이라고.”

일부러 바닥을 세게 구르며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바로 대답하지 못한 건 죄송스럽긴 하나 그걸 이유로 아무 이야기도 못 듣고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너무 분했습니다. 철저하게 무시당한 느낌이었습니다.

“하프 데몬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라고, 너도 그랬고 오카리나도 그랬어. 그들이 개체수가 현저히 적고 인위적인 생명체라서? 알려지지 않은 역사와 관련이 있다니, 그걸 알아야 지금 사태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도 어디선가 아귀가 안 맞아.”

패시가 제 팔을 잡아당기며 붙잡지 않았더라면 단숨에 저택을 뛰쳐나갔을 겁니다.

흥분을 가라앉히면서 패시의 논리력에 감탄했습니다. 검만 잘 다뤄서는 소드마스터가 될 수 없다고 하는데 패시는 어느 헌터 못지않은 전체를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지고 있는 정보가 적으니 연결이 잘 안 될 만했습니다.

“체이서스가 그런 체계니까 엉망인 거야.”

“그런 체계?”

“체이서스의 4국이 황제 중심연합대국이라고? 웃기지 말라고 그래. 사제·현자 체계야.”

“엑시델. 그거 좀 위험한 발언이야.”

“헤? SS급 이상 인포머와 각 계 헌터라면 다 알고 있는 이야기야.”

세상을 지겹게 오래 산 사람들도 터득할 수 있는 진리의 일종이기도 합니다. 지브릴의 증언에 의하면, 해가 몇 년이 가든 몇 살을 먹든 신경 쓰지 않는 딥데어족은 원로 자리에 앉아봐야 체이서스의 진짜 흐름을 본다고 합니다. 알고 나면 정말 바보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걸 깨답게 되고 세상에 저항하고 싶어지죠. 체이서스라는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그 안에서 다른 세계를 갈망하게 되죠.

“사제와 현자는 정치에 간섭할 수 없어.”

“자문할 수 있잖아.”

“자문과 간섭은 달라.”

“그래, 겉모습뿐인 자문. 실제로 황제에게 명령을 내리는 건 황제의 의지가 아니라 대사제와 대현자란 말이야. 이해할 수 없으면 하지 않아도 좋아. 하지만 이건 확실해. 이번에 각 국의 대표는 대사제나 대현자가 뽑았다는 사실이지.”

“신탁이 아니란 거야?”

“신을 믿어?”

패시는 입을 일자로 다물고 제게서 시선을 피했습니다.

거짓된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주 경멸합니다.

뒷세계, 어둠의 세계라 부르며 인포머와 헌터를 쓰레기 더미의 구더기 취급하는 상류층 귀족과 지식인들이 얼마나 가증스러운지 아십니까? 치가 떨리도록 가증스럽습니다. 물론 황제와 특수 몇몇을 제외하고는 세계의 배후를 모르겠지요. 감히 상상도 못하겠지요. 그러니 제가 정말 환멸 하는 건 죄의식 없이 황제를 갖고 노는 각국 대사제와 대현자입니다.

허울 좋은 귀족들. 그들은 그저 혈통으로 황제의 명에 따를 뿐입니다. 역시나 허울 좋은 왕과 황제. 그들도 피와 이름 때문에 그 자리에 앉아서 명령을 받고 내리는 겁니다. 대사제와 대현자는 안 그런 척 황제의 뒤에서 아무도 모르게 명령을 내리고 지시하여 하나의 국가를 한 손으로 잡아 흔들고 있습니다.

너무 뻔뻔하지 않습니까? 진짜 무서운 뒷세계가 바로 이런 것 아니겠냐고요. 진심으로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러면 우리를 뽑은 것도 오카리나라는 이야기야?”

“정확하게 말하면 로린드의 오카리나. 이 저택의 주인은 침묵의 대현자라 황제나 국가에 손대지 않아. 그만큼 자신의 지식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페카도나드의 오카리나가 웬만해선 입을 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가르쳐 줄 것 같으면서 발설을 피하는 태도가 너무 싫었습니다. 오카리나에게는 그녀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세상 사정을 알고 있고 저희가 방문한 목적을 알고 있다면 최소한 지식유출을 거부하는 이유라도 알려줘야 하는 게 도리가 아닐까요. 시기상조라는 뻔한 대답은 그저 핑계입니다.

……진실을 알기 전,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엑시델.”

패시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네가 이때까지 얘기한 걸 정리하면 저택의 주인에게 화를 낼 이유가 없잖아.”

“그저 분한 거지 화를 낸 게 아니야. 그리고 이유가 왜 없어?”

“페카도나드의 오카리나가 침묵의 대현자라는 걸 알면서 그녀가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말해주지 않는 거에 화낸 다는 건, 아니 네 말대로 분해하는 건 모숨이야. 지금 넌 불만을 다른 데에 푸는 어린애 같아.”

욱 하는 마음에 곧바로 패시에게 반박하려고 했지만 타이르는 듯한 부드럽고 나지막한 목소리에 양쪽 귀가 매료되는 바람에 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음성에 흥분이 좀 가라앉아서 제가 한 부끄러운 언동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패시의 마지막 말이 다시 머릿속을 자극하면서 얼굴 전체를 뜨겁게 데웠습니다.

“확실히……. 네 말이 맞아.”

전에도 그렇고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에도 그렇고 패시는 확실히 중화제 노릇을 톡톡히 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자가 타인의 감정 또한 다스릴 수 있는 걸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패시는 가능한 것 같습니다. 최소한 저와 치니비에게 있어서는 가능합니다.

“침묵의 대현자라면 누구보다도 객관적으로 현실을 볼 수 있을 거야. 그래서 때가 이르다고 했을 테고. 하지만 자격이 있다고 했잖아.”

“하프 데몬에게 두 번씩이나 습격당한 판에 몇 번 더 습격당해야 한다는 건지…….”

초단순하게 오카리나의 말을 멋대로 해석하고 있을 때 저택의 시녀 중 한 명이 다가와 정중하게 말을 걸었습니다.

“주인님께서 두 분을 티타임에 초대하시겠답니다. 정원으로 가시죠.”

뜻밖의 부름에 저희는 의아해했습니다.

시녀의 뒤를 따라 정원으로 나가니 흰 식기가 가지런히 차려진 원형의 원목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중산층에서 쓸 만한, 고급스럽진 않지만 멋스런 것들이었습니다. 앞마당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나을 듯한 정원에(잔디만 넓게 깔려 있다.) 잘 어울렸습니다.

자리에 앉아 저희를 기다리고 있던 오카리나가 손짓으로 자리를 권유하자, 저희는 조심스레 다가가 앉았습니다.

막 오카리나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온 터라 처음보다 더 대하기 껄끄러웠습니다. 어떻게 보면 철없는 언동에 자책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이 저택을 찾아 온 손님인데 그냥 보낼 수가 있어야 말이지.”

오카리나의 간단한 손짓에 따라 옆에 서있던 시녀가 각자의 앞에 있는 잔에 홍차를 따랐습니다.

“세세한 것에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카리나.”

“아니지. 난 이 저책의 주인으로서 그대들을 부른 거야. 내 이름을 아는 크로네스테 양이 일리안 군에게 좀 알려 주게.”

실로 파격적인 발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보통 웃어른이나 자위가 높은 이가 예의격식을 무시하거나 허술하게 차려도 좋다고 허락하면 그에 따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오카리나라면 얘기가 다릅니다. 황제보다 지위가 높단 말입니다!

“어떻게 감히…….”

“괜찮아. 시종들도 모두 주인님, 마님 하는 걸.”

확실히 저택 내 사람들 중에 ‘오카리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저와 패시 둘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오카리나의 말 모두, 어미가 자유분방한 걸 보면 예의격식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로린드의 오카리나가 보수적이고 딱딱하다면 페카도나드의 오카리나는 상대적으로 유연하달까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존함이 프시케 리프엔이니까 리프엔님이라고 부르면 되는 건가요?”

“리프엔 씨나 프시케 씨가 더 좋겠지만 상당한 나이 차를 고려해서 리프엔 님까지로 해두지.”

만약에 리프엔 씨, 프시케 씨라고 부르게 했다면 절대로 호칭 부르는 일 없이 어색한 대화를 했을 겁니다. 양심이 있지, 어떻게 ‘-씨’라고 부를 수가……. 소드마스터를 부를 때나(텍스트리터 씨 등의 아는 분들에 한해서) ‘-씨’한단 말입니다.

뒤에 오카리나가 ‘프시케님도 괜찮아’라고 덧붙이셨는데 저희는 끝까지 ‘리프엔님’으로 고수했습니다. 진심으로 어색했습니다.

“차 마시면서 험한 얘기는 사양하는 편인데… 성전파괴자 중에 혈안의 야수왕도 보였나?”

홍차 한 모습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중에 이 말을 듣는 바람에 사래들 뻔 했습니다. 패시도 차를 내뿜을 뻔 했다는 군요.

“네, 네.”

“그는 ‘거기’에 들어가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오카리나가 말한 ‘거기’는 후에 알게 된 하프 데몬의 성전파괴단, 자칭 심판단입니다. 아시다시피 비극으로 시작해서 비극으로 끝난 비운의 결사단이죠.

“혈안의 야수왕에 대해서도 알고 계시는 군요.”

“그에 대해선…… 알고 있는 게 좋겠군. 인포머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트레져 헌터는 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그때, 조금 망설였습니다. 지브릴이 입 다물고 있어서 저 역시 누구에게도 가르쳐주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패시가 하프 데몬에 대해 알게 됐으니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본명은 텔러 슈볼츠아웃. 종족은 몬데비언족과 딥데어족의 하프 데몬. 제가 하프 데몬에 대해서 알게 된 게 그 덕분이라고 할 수 있죠. 다른 이들은 그저 혼혈이라고만 알고 있는 수준이고요. ……그 슈볼츠아웃 가(家)의 사정도 아는 편인데 혈안은 그 사이에서 평범하게 자랐다고 해요. 딱히 문제도 없었고, 지금까지는 유명한 원티드 헌터(현상범 사냥꾼)였고. 이 정도면 대략적인 설명이 되겠죠?”

“나머진 내가 얘기 하지. 보통 하프 데몬이 인위적으로 태어난 실험 혼혈아라는 건 알고 있겠지? 그 역시 그랬는데, 아버지인 카르텍 베 다스 슈볼츠아웃이 실험체 중에서 자신의 피를 가진 텔러를 정식으로 슈볼츠아웃 가로 들였어.”

“잠, 잠시만… 슈볼츠아웃 가라면 플리의 후작 가문으로 알고 있는데요.”

플리의 슈볼츠아웃 가는 체이서스 전체에서 유명한 가문이니 패시도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공작 가문이었다가 ‘불순한 실험 후원’이라는 죄명으로 작위가 강등되었지요. 박탁하지 않은 것에 대해 반발이 있었지만 플리의 대사제가 귀족 전체의 입을 막았다고 합니다. 워낙 유능한 인재를 많이 배출한 가문이라 자구이가 어찌되든 여전히 유명세를 유지하고 있어 그 오래된 사건은 이미 종이 위에 밖에 남아있지 않게 됐습니다.

“역시 알고 있군. 하지만 이것도 알아 둬야 해. 슈볼츠아웃 가는 절대 차별을 하지 않아. 그 피가 흐르면 누구라도 받아들이지. 그래서 텔러는 다른 하프 데몬과는 다르게 가족들 사이에서 사랑을 받으며 유복하게 자랐어. 형제는 순혈이지만 신경 쓰지 않았지. 자신도, 그 형제들도. 원티드 헌터로 살면서 악명, 명성 구분 않고 떨치면서 ‘혈안의 야수왕’이 되었어도 가족 간의 유대는 변하지 않았지. 그런데 그런 그가 ‘거기’에 들어가 있을 줄이야…….”

오카리나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했습니다. 혈안을 ‘텔러’라고 친근하게 부르는 것도, 그의 이야기를 하면서 보인 슬픈 얼굴도, 그녀가 혈안과 친분 있는 사이라는 것을 알려줬습니다. 그녀에게 혈안은 귀여운 꼬마였을 지도 모릅니다.

“리프엔님. ‘거기’에 들어간 하프 데몬은 모두 반이 몬데비언족입니까?”

그간 세계수를 위협한 하프 데몬이 모두 몬데비언족의 외모를 하고 있어서 이 질문이 나올 법 했습니다. 참고로 전 패시에게 하프 데몬의 종류는 하프 블러드와 같다고 가르쳐줬습니다.

“대부분, 아니 몇 명을 뺀 모두가 소울족의 피를 갖고 있다네. 몬데비언족의 피를 갖고 있는 자들을 우선 내보낸 것뿐일 거야.”

혈안처럼 몬데비언족과 딥데어족의 하프 데몬인 자들은 대량 30개체가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몬데비언족과 소울족의 하프 데몬은 약 40개체이고요. 다른 하프 데몬의 개체수도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데 성전파괴자들의 대부분이 소울족의 피를 갖고 있다면 그 결사단은 최대 100개체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다행인 건 체이서스의 모든 하프 데몬이 ‘거기’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 심판단. 이 때까지만 해도 모르는 것 투성이였는데…….

“대부분이 소울족의 피를 가진 하프 데몬이라면 주동국은 플리가 아니라 세이버라는 얘기가 되는 겁니까?”

“호오, 일리안 군. 보통은 그런 단순한 사고가 맞지 않는 복잡한 이야기지만, 우연히도 맞다네.”

“하프 데몬이 일으킨 일이라면 주동국이 없어야 맞는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이 역사란 어둠 속에서 혼자 울고 있는 거라네, 크로네스테 양.”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렸습니다. 성전을 지키는 대표가 잘못 뽑힌 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처음에 일이 일어난 곳이 세이버였는데 그럼 그건 연극이었다는 겁니까?”

“그들의 목적은 모든 성전의 파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