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한달간의성전수호록(완)

한 달 간의 성전수후록 : D-22.5 [외전1]코볼트와 달구경!

★은하수★ 2009. 3. 18. 09:40

D-22.5 [외전1]코볼트와 달구경!

 

자정이 좀 넘어서야 생명의 숲 외곽에 도착했습니다. 달이 보이지 않는 새카만 밤에 숲 속으로 들어갈 순 없는 노릇이라 해가 뜰 때까지 노숙을 하기로 했습니다. 몸이 많이 지친 상태라 금방 잠들 수 있었는데 한 두 시간이 좀 지나서 이상한 기척에 깨어났습니다.

“아, 일어났구나.”

패시가 먼저 일어나서 어둠 속을 조심스럽게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부스럭]

풀숲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루-래빗이나 시니일 거라 생각하고 소리가 나는 곳을 응시했습니다.

때마침 구름이 걷히고 크고 밝은 보름달이 시야를 밝게 비췄습니다. 덕분에 숲의 외곽이 어떻게 생겼는지 짐승들이 돌아다니는 길이 어디서부터인지, 그리고 수풀에서 꼼지락 거리는 것이 코볼트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저거 산악형 코볼트잖아.”

코볼트는 대체로 키로 유형을 나눌 수 있는데 성인 뉴노멀족의 허리까지 성장하는 건 평지형 코볼트, 무릎까지 오는 건 산악형 코볼트라고 부릅니다. 생명의 숲은 평지의 대표로 불리는데 산악형 코볼트가 있으니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회색으로 털갈이 한 걸 보니 확실히 저 정도가 다 자란 거군. 생명의 숲이니까 닥히 이상할 것도 없잖아.”

대화를 하는 사이에 코볼트는 숲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 때 군데군데 흩어져 있던 코볼트들이 차례대로 따라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딘가로 모이는 듯 했습니다.

“헤에. 쫓아가 볼까?”

“뭐?”

“트레져 헌터로서 피가 끓는 달까, 본능이 뇌를 마비시킨 달까. 흥미로운 게 있을 거 같아서.”

“이런. 달이 가려지면 끝장이라고.”

말만 보면 절 말리려는 것 같은데 절 따라 일어서서 제 머리를 툭 치는 걸 보니 같이 움직이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생명의 숲을 향한 호기심 때문일 겁니다.

“달이 생각보다 밝네.”

이 때 뜬 보름달이 숲 속으로 들어가 나무와 풀을 헤치고 다녀도 무리 없을 정도로 크고 환했습니다. 시야가 닿는 곳까진 코볼트 한두 마리가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있어서 주변을 두리번거릴 필요 없이 쭉쭉 앞으로 나갔습니다. 뭔가 기척이 나서 옆을 돌아본 적도 있지만 그 땐 평범한 조그만 들짐승이었습니다. 야행성의 포악한 들짐승이 나타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 때는 그런 생각을 조금도 하지 못했습니다.

“쉬-. 저기 봐.”

패시를 멈춰 세우고 앞을 가리켰습니다.

주변에 나무가 일렬로 원을 그리듯 세워져 있고 그 안에 거대한 바위가 떡하니 바위산 축소판처럼 세워져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다 자라서 회색으로 털갈이한 코볼트와 아직 어려서 갈색 솜털을 가지고 있는 코볼트 등 근처의 모든 코볼트가 모두 모인 듯 했습니다. 코볼트들은 고개를 들고 머리 위에 떠있는 달을 쳐다봤습니다. 달빛을 몸에 입는 것 같았는데 달이 버친 눈동자를 보니 그저 달을 황홀하게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단체로 달구경하나봐.”

“이렇게 달이 잘 보이니까 그럴 만하네. 꽤 예쁘잖아.”

패시가 말로 감정 표현을 잘 안 하는 편인데 가끔 가슴이 콩닥거릴 정도로 다양한 수식 어구를 쓴단 말입니다. 그것도 시기적절하게…….

“우우-.”

코볼트 무리 중 일부가 달을 향해 길게 울었습니다. 나름의 자기감정 표현이었습니다. 그 소리에 깨어났는지 꽁무니에서 푸른빛을 내는 반디와 노란 빛을 내는 반디가 일제히 빛을 내며 주변을 날아다녔습니다. 그리고 버섯의 포자가 달빛에 반사 돼 옅은 황색을 띠며 하늘을 향해 천천히 날아올랐습니다.

“이야, 너무 예쁘다.”

“그러게. 얼마 없는 낭만적인 장면이야. 여기에 어울리는 숙녀분과 이걸 보며 데이트하면서 프러포즈하면 대답 받기 쉬울걸.”

“천하의 패시 일리안도 그런 말을 할 수 있구나.”

“이럴 때만.”

패시가 부드럽게 미소 짓는 진귀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달과 코볼트에게 마음속으로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