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사히트맨리본!/리본! 팬소설作

das Phantasie[환상곡] - 프롤로그

★은하수★ 2009. 3. 23. 09:53

<공지>

1. 이것은 판타지입니다!

2. 커플링은 없습니다!

3. 가히리 소설은 처음 쓰는 거니까 너그럽게 봐주시고, 졸작은 싫다 하시면 '뒤로'버튼을 살포시 눌러주십쇼!

 

 

-프롤로그-

 

갈색 머리의 동양인이 커다란 의자에서 부스스 일어났다. 오른손으로 앞머리를 쓸어 올리던 그는 순간 눈앞을 스쳐지나간 옷소매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희디 흰 소매에서 금으로 만든 견장이 달린 어깨까지 동그란 눈을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문장이 금실로 수놓여 있는 가슴에서 검은 단화를 신은 발가지 시선을 훑어 내려갔다. 그의 눈은 점점 커졌다. 그리고 자신이 입고 있는 낯선 옷 덕분에 잠이 확 깼다.

“이게 뭐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순간 머리와 어깨가 무거웠다. 머리 위를 더듬어 보니 왕관이, 고개를 살짝 돌려보니 두꺼운 양털 망토를 어깨에 걸친 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옅은 주황빛이 도는 망토를 앞으로 당겨보니 가슴에 수놓여 있는 것과 똑같은 문장이 망토 위에도 큼직하게 그려져 있었다.

뭔가 감을 잡은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그가 서있는 곳에서 문까지는 최소한 50m는 됐다. 멀리 보이는 여닫이문은 그의 상의처럼 순백색으로, 혼자서는 절대 열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그는 문의 크기를 가늠하며 시선을 천천히 올리다가 높디높은 천장을 보고 경악했다.

“설마……. 아니겠지. 내가 왕일 리가 없잖아.”

억지로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어봤지만 어색해질 뿐이었다.

“흐에에에-!”

패닉 상태에 빠지려는 찰나에, 거대한 문이 소리 없이 스르륵 열렸다. 문 틈새로 조금씩 사람의 형상이 보이는 듯 싶더니 서양식 흰 예복에 선홍색 실크 망토를 걸친 누군가가 보였다. 그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의 형상이 또렷이 보였다. 갈색 머리의 남자는 턱선 조금 아래까지 내려오는 은회색 머리칼과 에메랄드 빛 눈동자를 보고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고쿠데라!”

낯선 환경에 당황해 하던 중에 낯익은 ‘고쿠데라’가 나타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무거운 왕관이건 땅에 질질 끌리는 망토건 상관하지 않고 고쿠데라를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난처해하는 얼굴을 발견하자마자 우뚝 멈춰 섰다.

“성주님, 옥좌에서 친히 내려오실 정도로 제가 반가우십니까?”

자신도 반갑다는 것이 아니었다. 성주는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는 뜻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성주’라는 단어가 갈색 머리의 남자의 귓전을 맴돌았다.

‘성주’라 불린 그는 자신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충격적인 사실에 다시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는 자신이 아는 ‘고쿠데라’라고 믿었던 자에게서 확인사살을 당한 것이었다. 머리가 팽글팽글 도는 듯 하더니 속이 뒤틀렸다. 멀미 같았다.

“아, 성주님, 일어나셨군요.”

짧은 스포츠 컷을 한 남자 두 명이 나란히 들어왔다. 역시나 서양식 흰 제복을 입고 있었지만 망토 색이 달랐다. 한 명은 코발트블루 색을, 다른 한 명은 밝은 상아색을 걸치고 있었다.

“야마모토? 형님?”

새로 나타난 두 명 역시 성주가 알고 있던 누군가들과 너무나 닮았다.

“이봐, 성주님이 이상해.”

고쿠데라는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이런 표정도 성주가 알고 있는 그와 똑같았다.

“그게 무슨 소리냐, 고쿠데라.”

“날 보자마자 옥좌에서 뛰어 나오셨다고.”

“아하하하, 성주님이 무서운 꿈이라도 꾸셨나 보지.”

“야마모토의 말에 극한으로 동감한다.”

“그런가……?”

한 사람 한 사람이 갖고 있는 말버릇도 웃을 때의 표정도 전부 똑같았다. 그럴수록 성주의 혼란은 커지기만 했다. 그 순간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말이 있었다.

<장주지몽. 나비가 된 꿈을 꾼 장자가 꿈에서 깨어나, 장자가 나비가 되었는지 나비가 장자가 되었는지 의심했다더군. 넌 알고 있겠지. 꿈을 꾼 자도 장자, 깨어난 자도 장자. 하지만 정말 장자가 꿈을 꾸었을까? 나비가 꾼 꿈이 아니고? 장자가 나비가 되는 꿈을 꿨을까, 나비가 장자가 되는 꿈을 꿨을까? 과연 어느 쪽일까?>

낯익은 목소리가 머리가 깨지도록 머릿속을 헤집었다. 거슬리는 쇳소리처럼, 손톱으로 긁는 칠판 소리처럼, 전파가 잡히지 않는 라디오처럼 지독히도 불쾌한 목소리였다.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알 수 없지만 성주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혼란스러웠다. 나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