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1. 이것은 판타지입니다!
2. 커플링은 없습니다!
3. 가히리 소설은 처음 쓰는 거니까 너그럽게 봐주시고, 졸작은 싫다 하시면 '뒤로'버튼을 살포시 눌러주십쇼!
4. 얼마 전에 올린 단편 [서곡]과 연결될 가능성이 0%라는 것을 다시 말씀드리나, 소재는 살짝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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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 dritte Spiel[제 3 연주]-
빛의 성은 백란과의 전쟁을 앞두고 만발의 준비에 기했다. 6기사 중 히바리는 성 내 주민들을 안심시키면서 은신처, 비상 대피로, 전쟁 식량 등을 미리 준비할 것을 당부했다. 히바리가 도심지를 맡는 동안 무크로는 변두리 및 국경의 보안에 신경 썼다. 적은 수지만 모두 성주의 백성이고, 미약하지만 전력의 일부였다. 무엇하나 소홀하게 방치할 수 없었다. 사사가와는 람보와 같이 군대의 특별훈련을 맡았다. 마법과는 거리가 먼 부대는 사사가와가, 마법 능력이 부가된 부대는 람보가 담당하는 건 당연하다. 나머지, 야마모토와 고쿠데라는 성주의 가까이에 있으면서 그때 그때 성주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현재 성주는 알현실의 거대한 옥좌에 앉아 스승 리본의 수정 구슬을 통해 영지와 기사들을 살피고 있었다. 마침 야마모토와 고쿠데라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주변 사용인들을 물리친 터라 스승과 극비 사항에 대해 어느 누구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스승님, 유니콘 일족에게 동맹을 청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싸움이라면 질색을 하는 일족이야. 받아들일 리 없어.”
“하지만 ‘그 자’가 백란과 같이 있다면 될 수 있는 한 많이 조력자들을 모을 필요가 있잖아요.”
성주의 말에 틀린 바는 없지만 실현 가능성이 극히 낮았다. 리본은 ‘그 녀석’이 나타나기만 하면 무력해지는 자신이 질릴 대로 질려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찾아가서 공격 마법을 퍼붓던가 온갖 저주를 쏟아 붓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분했다. 7현자는 ‘그 녀석’에게 절대 해코지할 수 없는 관계라서 어쩔 수 없었다.
“동맹을 찾는다면 제일 먼저 밤의 성을 챙겨야지 어째서 유니콘 일족을 먼저 생각해낸 거지?”
“그야……. 밤의 성에는 마몬이 계시잖아요. 그리고 그곳 성주는 저와 특별한 관계고. 알아서 도와주지 않을까…… 싶어서요.”
성주는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스승 리본이 혀를 차면서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성주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7현자 중 살아남은 4인이 조만간 빛의 성으로 모일 것이다. 그렇다면 마몬이 벨을 데려올 것은 분명하고, 잔자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설마 사촌이 백란에게 당하게 내버려둘까? 성주는 유일한 형제나 마찬가지인 자신의 사촌을 굳게 믿었다.
“그러면 유니콘 일족은 어떻게 만날 생각이지? 넌 성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몸이잖아. 그렇다고 기사를 보내면, 그 자긍심 높은 일족은 자신들을 깔보는 줄 알고 더더욱 안 도와줄 거야.”
빛의 성 성주는 성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몸이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라. 언제부턴가 빛의 성 성주는 대대로 그랬다. 그래서 성 밖으로 나들이 나가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나가면 심장 박동이 약해지면서 천천히 죽어 간다. 그들에게 주어진 숙명이라 어쩔 수 없다.
한번은 현재 빛의 성 성주가 말도 안 되게 잔인한 숙명을 고분고분 따르기 싫다며 가출을 한 적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한 달도 안 된 꽤나 최근 일이다. 그래서 그동안 시종 바질이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성주를 따라다녔다. 이건 뒤로 제끼고, 가출을 과감하게 저질렀던 성주는 성주의 부재 때문에 성 안이 발칵 뒤집힌 지 한 사흘 만에 기사 야마모토에게 업혀 돌아왔다. 가출이라고 해도 마땅히 갈 데가 없는 성주는 사촌 잔자스가 다스리는 밤의 성으로 갔다가 쓰러진 것이다. 그곳의 기사 스쿠알로가 빛의 성 야마모토에게 재빨리 연락한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성주를 빛의 성으로 데려와 살릴 수 있었다. 당시 성주는 심장박동이 너무 약해져서 맥을 짚는 건 고사하고 가슴에 직접 손을 대도 심장이 제대로 뛰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려웠다. 성주가 의식을 되찾고 안색이 좋아지자마자 당한 일은 뻔하다. 기사들의 입에서 잔소리가 줄줄이 사탕처럼 끊임없이 나왔다.
“제가 그들에게 가지 않고 그들의 우두머리가 이곳에 오지 않아도 동맹을 맺을 수는 있잖아요.”
“텔레파시로 맺는 동맹도 네가 말하는 그 동맹이냐?”
“누가 텔레파시로 한 대요? 그리고 전 할 줄도 몰라요.”
성주는 생긋 웃었다. 그리고는 스승에게 가까이 가서 스승의 머리 위에 있는 수정 구슬ㄹ을 조심스럽게 들었다. 구슬에 손대자마자 스승이 매몰차게 지팡이를 휘둘렀지만 가볍게 피할 수 있었다. 그는 이미 스승과 필적할 만한 실력자였다. 그럼에도 고분고분 맞아왔던 건 스승이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는 허탈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자신이 이만큼 성장했다는 걸 보여서 스승을 안심시켜야 하는 때가 됐다. 물론 성주의 스승은 자신의 제자가 얼만큼 자랐는지 알고 있었다. 자실을 배려하는 제자의 과도한 응석을 받아주는 재미에 사는 거였다.
“나보고 유니콘 일족과 동맹을 맺고 오라는 뜻이냐?”
“감시 스승님께 그런 부탁을 드리겠어요? 연락을 터 주시기만 하면 되요. 다른 현자 분들과 얘기할 때처럼 공중 영상으로요. 제가 못하는 텔레파시보다 더 고급 기술인데도 스승님은 아주 쉽게 하시잖아요.”
“내가 네 개인 연락병이냐?”
[휘익]
“그 정도는 해 주셔도 괜찮잖아요.”
[휘익]
“이 무능한 제자 같으니라고.”
[휘익]
“제자가 무능하면 스승에게 문제 있는 거라던데요?”
[휘익]
“누가 그딴 소릴!”
[휘익]
현자 리본은 성주의 급소를 향해 지팡이를 휘두르고 찌르고 했지만 한 번도 맞지 않았다. 결국 관자놀이에 핏발이 서고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성주는 전혀 힘들어하지 않고 배실배실 웃고 있었는데 리본은 왠지 그 낯짝이 괘씸해 보였다.
“많- 이 컸다.”
“칭찬이 아닌 걸로 아나 칭찬으로 걸러 들을 게요.”
성주는 스승의 몸에서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마기가 보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마법으로 자신의 위협할 가능성이 0%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스승이 혼자 알아서 기분을 풀 때까지 해맑은 얼굴로 기다렸다.
“그래, 유니콘 일족 수장을 설득할 자신은 있는 거냐?”
“되든 안 되든 해 봐야죠.”
“하긴, 원래 그런 녀석이지.”
결국은 현자 리본이 손들었다. 제자가 무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반대하거나 말릴 이유가 없었다. 차츰 자력으로 일어서려는 성주를 도와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스승으로서의 욕심 때문인지 성주가 뭘 하려 하든 더 가르치고 더 앞으로 끌어내주고 싶었다. 그래도 구박하는 수업방식 속에서도 성주가 꾸준히 성장해줘서 고마웠다.
리본은 수정 구슬을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그 주변에 지팡이로 마법진을 그렸다. 마법진을 완성한 순간 수 구슬에서 빛이 나면서 그 빛이 마법진을 따라 흘렀다. 시작점부터 종착점까지 빛이 채워지고 수정 구슬이 높이 떠올랐다. 그리고 허공에 생긴 푸른빛의 무수한 룬 문자가 구슬의 주변을 고리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성주는 한 순간 잠깐이지만 그 룬 문자가 나비처럼 보였다. 자연 속에서 우아하게 날아다니는 나비가 아니라 자유를 빼앗기고 구속당하고 있는 안쓰러운 피조물 같았다.
“Aufforderung zum Erscheinen."
주문을 외자 푸른 룬 문자가 전부 수정 구슬로 빨려 들어가고 곧이어 유니콘 수장의 모습이 허공에 영상으로 나타났다. 기하학 무늬가 촘촘하게 새겨져 있는 황금 육각뿔은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윤기 나는 은백색 털과 에메랄드-사파이어 오드 아이는 여전히 매력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지만 길고 거칠 갈기는 그가 아직도 야생마적인 성질을 고치지 못했음을 보여줬다.
“현자 리본이 내게 무슨 일인가 했더니 츠나가 용건이 있는 거였군.”
“오랜만이에요, 디노 씨.”
유니콘 일족이라고 하면 외모는 한 인물들 한다지만 그와는 안 맞게 사교성이 너무 없어서 그들과 어울리려는 자들이 드물다고 한다. 하지만 빛의 성 성주는 그들을 자주 성으로 초대하고 극진한 대접을 했다. 덕분에 사소한 거리도 곧잘 얘기할 수 있는 사이가 됐다. 이름도 막 부르고 말이다.
“빛의 성의 귀여운 츠나가 이런 식으로 날 부른 건 처음인데……. 그래, 무슨 일이야?”
디노의 표정이 화사하고 어투도 밝아서 동맹을 맺자고 부탁하기 어려웠다. 정말 해도 괜찮은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까지 했다. 싸움을 싫어하는 일족에게 무의 성과 맞서기 위한 동맹을 청하는 것은 친분을 앞세운 교우관계 남용 같았다. 저렇게나 밝게 웃고 있는데 우울한 화제를 꺼내자니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츠나, 불렀으면 뭔가 얘기를 해야지.”
“네, 네…….”
“성주님, 다녀왔습니다!”
마침 고쿠데라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순조롭게 잘 처리했는지 표정이 아주 밝았다.
성주는 순간 난처해졌다. 고쿠데라는 유니콘 수장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에게 동맹을 청하는 중이라는 것을 알면 길길이 날뛸 것이다. 100% 확실했다. 어떠한 핑계를 대서라도 다시 내보내야 했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
“그 정도쯤이야 제겐 누워서 떡먹기입니다.”
고쿠데라의 눈에 자신과 성주 사이에 있는 영상이 보였다. 마법만 썼다 하면 꼭 사고를 치는 야생마 디노가 헤프게-고쿠데라의 시각에서- 웃고 있었다. 고쿠데라의 표정이 한 번에 확 구겨지는 걸 본 성주는 마음이 급해져서 그런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성주님?”
“야, 야마모토한테 지원군을 보낸다는 걸 깜빡했어?”
“야마모토한테요?”
“응.”
기사 고쿠데라가 의아해 하는 건 당연했다.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검사에, 타고난 전투 센스를 가진 기사 야마모토에게 지원군은 무용한 존재 같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금 그가 맡은 임무가 그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깟 미노타우르스 떼거지를 처리하는 것쯤이야 6기사 중 막내인 랍보도 쉽게 해치울 수 있는 일이었다.
“고쿠데라가 가 줄거지?”
“하지만 지금 야마모토가 맡은…….”
“가 줄거지?”
“……네.”
성주가 신뢰 가득한 눈으로 애절하게 쳐다보는데 안 간다고 할 수 없었다.
빛의 성 성주는 그렇게 억지로 고쿠데라를 내보내고 나서 옥좌에 다시 앉아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고쿠데라가 나타난 그 짧은 순간에 일을 다 망칠 뻔했다. 그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돌아오면 제대로 사과해야지 라고 생각하는 성주를 보고 유니콘 일족의 수장이 끅끅끅 웃었다. 디노의 눈엔 성주의 행동이 하나같이 다 귀여워 보였다.
“대체 무슨 일인 거야? 고쿠데라가 들으면 안 될 정도면 꽤 성가신 건이라는 말인데.”
디노는 무슨 얘기든 다 들어주겠다는 식으로 자상하게 웃었다. 유니콘이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푸는 일은 극히 드문데 디노가 빛의 성 성주를 대하는 태도는 아주 이례적인 것이다. 성주는 디노가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해 봐도 될 거다.
“으……. ‘꽤’가 아니라 ‘많이’ 성가신 일인데도 괜찮으시겠어요?”
많이 다부져 졌다지만 아직 심약한 성향이 남아있는 성주는 아주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디노가 ‘물론’이라고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지만 여전히 거절당할까봐 겁났다.
“실은 요즘 무의 성 성주 백란이 비윤리적인 행동을 일삼고 있어요. 관점에 따라선 비윤리적인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게, 다음은 여길 공격하겠대요. 백란의 성 부수기 놀이에 저희도 어쩔 수 없이 끼게 됐는데… 지고 싶지 않아요. 특히 백란과 같이 있는 ‘그 자’에게는 더더욱.”
“그래, ‘그 자’가 백란과 같이 있었지…….”
디노 역시 ‘그 자’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가 누군지,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 그가 백란과 어떤 관계인지, 세속에서 동떨어져 세속을 객관적으로 바라봐온 그이기에 ‘그 자’를 나름 인물평까지 할 수 있었다. 천천히 생각해 보니 빛의 성만으론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전 정말로 지고 싶지 않아요. ‘그 자’는 정말로 용서하지 않을 거에요. 그러니까…… 유니콘 일족이 저흴 도와주셨으면 해요.”
성주는 가까스로 동맹을 제안했다. 얘기의 흐름 중에 대충 눈치 챈 디노는 성주의 제안에 크게 놀라지 않았지만 난처한 표정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동맹이란 수장 혼자만이 아닌 일족 전부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었다.
“성가신 것들……. 츠나, 밤의 성이다.”
[딱]
리본이 지팡이로 바닥을 세게 두드리자 또 다른 영상이 공중에 나타났다. 잔자스가 마몬을 시켜 연락을 튼 것이다.
“내일 중으로 빛의 성으로 가겠다.”
[휘-]
“에……?”
일방적인 한 마디만 끝내고 영상을 끊어버리는 행동에 당황스러워 하는 성주였지만, 잔자스가 한 말의 의미를 파악했기 때문에 이내 마음이 가벼워졌다. 역시 잔자스는 하나뿐인 사촌을 버리지 않았다.
“대단한 아군이 생겼네, 츠나.”
“아, 디노 씨.”
그렇다. 아직 유니콘 일족과의 동맹 교섭이 끝나지 않았다. 거절당할까 두려웠지만 애써 웃는 얼굴을 했다.
“도와줄게. 누구도 아니고 츠나의 부탁이잖아.”
이 다음 순간, 성주의 얼굴이 얼마나 환해졌을지 짐작할 수 있는가? 평소에 유니콘 일족에게 은덕을 쌓아온 대가를 이렇게 배상받는 빛의 성 성주. 세력 있는 아군을 두 무리나 챙기고, 일이 잘 풀리는 듯 보인다. 하지만 아직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절대 안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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