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1. 이것은 판타지입니다!
2. 커플링은 없습니다!
3. 가히리 소설은 처음 쓰는 거니까 너그럽게 봐주시고, 졸작은 싫다 하시면 '뒤로'버튼을 살포시 눌러주십쇼!
4. 히바리가 쓰는 무기를 '클로'라고 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으나 강철로 만든 손톱(?) 비스무레한 무기입니다.
5. 다음편은 '에필로그' 끝입니다... 뭐, 참... 딱히 탄탄한 글은 쓰지 못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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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 vierte Spiel[제 4 연주]-
밤의 성 요주인물들과 유니콘 일족이 모두 빛의 성으로 집결하고 밖에 나가 있던 빛의 성 기사들도 전부 돌아왔다. 무의 성과 그 휘하 성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여러 가지 방책을 단계별로 짰지만 과연 그대로 수행될지는 미지수였다. 원래 전쟁이란 어느 것이든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일이 벌어질지 시간만이 아는 불안한 시국에도 빛의 성 성주는 웃으면서 모인 이들을 격려했다. 제일 불안한 이는 정작 본인이면서 그것을 보이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썼다. 어쩌면 다른 이들에게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고 말했던 것 전부 스스로에게 한 말이자 자신이 제일 듣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빛의 성 성주는 성에서 가장 높은 탑을 오르고 또 올랐다. 마법을 쓰면 편하게 빨리 탑 꼭대기에 있는 망루에 닿을 수 있겠지만 머릿속을 정리할 시간을 가질 겸 직접 다리품을 팔았다. 원래 체력이 부실한데도 끙끙 대면서 끝까지 올라갔다. 중도에 쉬지도 않고 벽에 의지하면서 무릎을 짚으며 올라간 망루는 구름 한 점 없는 푸르디푸른 하늘을 성주에게 상으로 바쳤다. 그는 망루의 바깥 난간에 양손을 얹고 숨을 크게 들이쉬며 ‘밖’의 공기를 만끽했다. 성을 벗어날 수 없는 그에게 바깥 공기는 자유나 마찬가지였다. 저 멀리 보이는 마을과 더 멀리 있는 연속된 산줄기는 유토피아로 보일 만큼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고 간절히 바랐다. 성문 바로 앞에 있는 숲에 조차 나가지 못하는 그에게 이것들은 전부 꿈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한 순간 낯선 마기가 성주의 온 신경을 자극했다. 그 뿐 아니라 오싹한 공포까지 근육을 휘어잡았다. 살기와는 다른 날카로운 시선과 분위기에 난간을 잡고 있는 성주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뒤를 돌아보면 이 공포의 임자와 눈이 마주칠 것 같아 꼼짝하지 않았다.
“유감이야. 빛의 성의 불쌍한 성주.”
“읏.”
성주가 돌아보지 않자 아무개 씨가 성주 앞으로 이동했다. 그는 눈 밑에 쐐기풀 같은 문신을 하고, 그 문신과 같은 모양의 귀걸이를 양쪽에 하나씩 하고 있었다. 그리고 미소 짓고 있는 입은 입 꼬리가 야비하게 올라가 있어-적어도 성주에게- 비호감으로 보였다. 빛의 성 성주가 티 없이 깨끗한 흰 예복을 입고 있다면 그는 티끌 하나 붙어 있지 않은 칠흑의 예복을 입고 있었다. 밤의 성 성주가 즐겨 입는 예복보다 훨씬 더 검고 짙은 어둠에 가까웠다. 독수리의 날개깃을 모아 만든 망토도 그와 같은 색이었다.
“어떻게 보호막을 통과한 거지?”
“그쯤이야 내겐 아무것도 아니야. 다만, 안타까운 건 나 혼자만 자유롭게 여길 드나들 수 있다는 거지.”
“네 힘이 아니라 ‘그 자’의 힘이겠지.”
“역시 알고 있구나. 그러면 얘기가 쉽겠어.”
무의 성 성주, 백란은 현자 리본과 마몬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보호막을 무리 없이 통과하는 것도 모자라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도 들키지 않았다. 그의 뒤를 봐주는 ‘그 자’의 능력을 빌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째서 성을 가만히 두지 않는 거지? 성을 늘린다고 네가 특별히 이로울 것도 없잖아.”
“걱정 마. 여기가 마지막이 될 테니까.”
백란의 가늘게 뜬 눈을 보고 성주는 등골이 오싹했다. 성주는 알 수 있었다. 백란은 자신이 빛의 성도 손에 넣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원하는 것이 단순히 성이 아니라 성 안에 있는 무언가라는 것도. 7현자 습격 사건을 들었을 때부터 백란과 ‘그 자’의 목적을 대강 짐작했었다. 백란의 한 마디가 그 예상이 사실임을 확인해 줬다.
“영토를 넓힌다는 명분 아래 성을 찬탈하고, 죄 없는 이들을 괴롭히는 자에겐 절대 넘겨줄 수 없어!”
빛의 성 성주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눈에 있는 힘껏 힘주면서 백란을 노려봤다. 하지만 백란은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그의 얼굴을 성주의 얼굴로 바짝 들이댔다. 이마가 살짝 닿는 순간 성주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아 뒷걸음질 쳤다.
“쿠훗. 절대 못 준 다는 건 성? 아니면…… 일곱 수호자의 문장(훗날의 봉고레 링)?”
“역시 그걸 노리고 있었어…….”
“응. 꼭 필요하거든.”
성주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백란이 나타났다는 신호를 보내면 분명 그가 성을 초토화 시킬 것이다. (말이 성주지 무의 성에 있는 생명체라곤 백란과 ‘그 자’ 뿐이다. 즉, 여태껏 무의 성이 저지른 성 부수기 놀이는 창공의 성을 제외하고 전부 백란 혼자 한 짓이다. 물론 ‘그 자’가 서포트 해줬다.) 성주는 다른 이들이 아직 백란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모르니 자기 선에서 조용히 끝내고 싶었다.
“창공의 성에 있던 일곱 수호자의 의지(훗날의 마레 링)는 어떻게 했지?”
“그게 말이야, 참 성가시더라고. 유니랑 여섯 기사의 심장에 연결돼 있는데다가 다른 축이 모두 모이지 않으면 그들을 죽인다 한들 절대 빼낼 수 없게 돼 있던 걸. 일단 살려두긴 했는데, 글쎄ㅡ, 반항하려고 하면 그가 알아서 처리하겠지.”
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세 개의 축 중 ‘일곱 수호자의 의지’가 이미 백란의 손아귀에 있었다. 그래도 순순히 백란에게 복종하지 않고 그 이름값을 했다. 성주는 아직은 창공의 성 성주와 기사들이 살아있다는 것에 안심했다. 그들을 자기 쪽으로 빼낼 기회라도 있는 게 어딘가. 죽으면 빼도 박도 못한다지 않던가.
“혹시 일곱 수호자의 문장도 그런 건 아니겠지? 어차피 축을 모두 모으겠지만 이왕이면 쉽게 모으는 게 좋잖아.”
백란은 자신이 세계의 축 세 개를 모두 모으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빛의 서 성주는 백란의 자신만만한 태도가 눈에 거슬렸지만 그럴만한 능력자고 자신이 그를 막을 수 있을 만큼 강하지 않기 때문에 섣불리 반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백란의 비위를 맞추는 짓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니 입을 굳게 다물고 침묵을 지켰다.
“일곱 수호자의 문장까지 손에 넣으면 나머지 일곱 빛의 수정(훗날 아르꼬바레노의 쭉쭉이)도 쉽게 ‘회수’할 수 있을 거야.”
“불쾌하군.”
성주의 표정이 순식간에 무섭게 변했다. 언제나 밝고, 낙천적인 표정을 잃지 않는 빛의 성 성주가 그런 표정을 짓자 백란은 적잖이 놀랐다. 하지만 이내 만족스럽다는 듯이 성주를 찬찬히 훑어봤다.
“그 표정, 그 투기. 그래, 그 정도는 해 줘야 내가 지루하지 않지.”
“입…… 그 입 다물어. 회수라니. 처음부터 네 것이라는 듯이 말하지 마.”
“하지만 네가 갖고 있는 문장도 네 건 아니잖아.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세 축은 내 거라고 정해져 있다고.”
“무슨 말도 안 돼는 소리를……!”
성주는 엄청난 양의 살기와 마기를 내뿜다가 급히 감췄다. 이미 늦었다. 빛의 성 내에 있는 모두가 성주의 분노를 알아챘다. 그리고 성주가 있는 망루로 속속 모여들었다. 성주와 마주보고 있는 백란을 발견한 그들은 일제히 경계태세를 갖췄다.
“바보 츠나! 백란이 나타나면 즉각 알리라고 했잖아!”
현자 리본이 무시무시한 살기를 양껏 발산했다. 성주는 스승이 나오지 않길 바랐기 때문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자신의 사소한 실수로 일이 커져버린 것을 자책하고 있는데 백란이 등 뒤로 텔레포트 해왔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겐 들리지 않을 만큼 감질나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목소리는 어떤 유혹의 목소리보다 달콤하고 어떤 경찬의 목소리보다 부드러우면 어떤 찬미의 목소리보다 매력적이었다.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아?”
“거기서 떨어져!”
[쉬익-!]
기사 야마모토의 검이 성주와 백란 사이를 갈랐다. 백란은 킥킥 웃으면서 사라졌다가 고쿠데라 옆에 나타났다. 그리고 성주에게 속삭였던 그 목소리로 고쿠데라의 귀를 간질였다.
“너의 성주에게 걸린 저주를 풀어줄게.”
“헛소리 말고 꺼져.”
[콰광!]
고쿠데라가 낮게 깐 목소리로 거절하고 화염 마법을 갈겼으나 백란을 맞추지 못했다. 그는 이미 잔자스의 눈 바로 앞에 있었다.
“빛의 성 성주에 어울리는 건 츠나요시가 아니라 잔자스 당신인데 말이야.”
“꺼져라.”
“빌어먹을 놈이 어디다 들이대?”
스쿠알로의 검이 허공을 벴다. 백란의 흔들거리는 독수리 깃 망토는 무쿠로의 등을 간질였다. 무의 성 성주는 무쿠로와 등을 마주대고 서서 그에게도 감미로운 목소리를 남겼다.
“넌 겨우 기사로 있을 재목이 아니야.”
“쿠후후. 유감이지만 전 높은 자리에는 관심 없습니다.”
무쿠로가 독기로 그를 구속하려 했지만, 백란은 가소롭다는 듯이 너무 여유롭게 빠져나갔다. 하지만 대신 히바리가 친 광역 공간 덫에 걸려 본의 아니게 히바리를 상대해야 했다. 마법과 육탄전을 동시 적절하게 구사하는 실력가는 백란이 마법을 쓸 틈을 주지 않으면서 그를 덫의 중심으로 조금씩 몰았다.
“제법이군요.”
히바리는 여유 있는 척하는 백란의 말을 사뿐히 내리쳐주고 화려한 몸사위를 계속했다. 마치 벚꽃 잎이 바람에 흩날려 퍼져나가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백란은 육탄전에는 그닥 소질이 없어서 겨우겨우 피아는 게 고작이었다.
시전 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 무한 공격에 사사가와, 룩스리아가 가담했다. 공격자의 수가 수비자의 수보다 많아지면 의외로 틈이 생기는 법. 백란은 히바리가 만든 덫의 중심에 닿기 직전에 무자비한 공격 세례에서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자식, 물어 죽인다.”
히바리는 백란을 놓친 화풀이를 사사가와에게 했다. 때가 때인 만큼 그에게 손대지는 않았지만 히바리의 눈과 클로가 번쩍거렸다.
“창공의 성보다 흥미진진한데 위험 요소가 크네.”
“그렇게 여유부릴 때가 아닐 텐데.”
[쾅 쾅 쾅 쾅]
현자 코로네로가 난사한 소형 마법탄 사이로 백란이 유연하게 날아와 코로네로의 수정 구슬을 움켜쥐었다. 백란을 놓친 것의 만회인지, 사사가와가 백란에게 주먹을 날렸다. 하마터면 꼼짝없이 코로네로의 핵을 뺏길 뻔했다.
“적당히 움직이세요. 당신을 공중에 띄우고 있는 사람이 나란 말입니다.”
“스승님이 극한으로 위험한데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
기사 무쿠로가 마법을 쓸 줄 모르는 사사가와를 지탱해 주고 있는 덕분에 그가 공중전에 가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워낙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미라 무쿠로의 집중력을 많이 잡아먹었다. 무쿠로는 사사가와를 챙겨주면서 자신의 본분에도 충실한 중이었다. 백란이 자신이나 마몬 가까이로 다가오려 하면 삼지창을 휘두르거나 경계 막을 쳐서 그의 움직임을 둔화시켰다.
다른 이들이 백란이 대규모의 마법이나 고급 마법을 쓸 틈을 주지 않으면서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는 동안, 빛의 성 성주는 스승 리보노가 근처에 몸을 숨기고 있는 ‘그 자’를 주시했다. 스승이 그에게 다가갈까, 그가 스승에게 다가갈까. 계속 긴장상태였다.
“츠나요시, 저 녀석을 죽이지 말라는 명령을 철회해라. 안 그러면 저 무의미한 술래잡기는 영영 안 끝날 거다.”
“죽이는 건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돼.”
“이유가 뭐냐?”
아무리 사촌이지만 성주는 잔자스에게 ‘그 자’의 존재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아니, 지금 느긋하게 설명할 시간이 없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일촉즉발 같은 상황에서 그에게 아무 것도 알려줄 수 없는 것이 미안하면서도 온 신경을 스승 리본과 숨어 있는 ‘그 자’에게 쏟았다. 주변에 퍼져있는 ‘그 자’의 마력이 점차 짙어질수록 심장이 점점 빠르게 고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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