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1. 이것은 판타지입니다!
-에필로그-
성주의 명령이 새로 떨어졌다. ‘성이 부서져도 괜찮다. 허나 백란에게 절대 굴복하지 마라.’ 현자 마몬과 기사 무쿠로가 싸움의 여파가 바깥으로 퍼지지 않게 성 주변에 보호막을 쳤다. 성주가 ‘그 자’와 대치했을 때는 이미 성의 70%가 파괴된 상태였다.
어둡고 고요한 아공간에서 빛의 성 성주와 ‘그 자’가 마주보며 서있었다. 현자 리본과 코로네로가 그에게 위협을 가하기 전에 성주가 먼저 그에게 접근해서 자신이 긴 시간 동안 준비한 아공간으로 불러들였다. 성주가 가지고 있는 문장의 힘을 사용해서 몇 년에 걸쳐 견고하게 만든 공간이라서 현자라 해도 쉽게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 대답을 찾았나?”
얇고 넓은 천을 망토처럼 뒤집어써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지만 간사하게 웃고 있는 입은 슬그머니 보였다.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이 즐거워했다. 몸 전체도 망토로 가리고 있고 목소리도 귀에 거슬리는 노이즈가 섞여 있어서 성별이 불분명했다. 하지만 그 자의 성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성주가 그를 알고 그가 성주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더더욱 중요한 문제다.
“역시 이런 걸로 세계를 바꾸는 건 옳지 못해요.”
성주는 양털 망토의 목 끈을 풀고 견장을 하나씩 차례대로 떼 떨어트렸다. 망토가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큰 왕관도 그 위로 미련 없이 떨어졌다. 예복 상의의 단추를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풀고 양 옆으로 젖히자 그의 가슴에 그려져 있는 문장이 훤히 보였다. 문신으로 새긴 듯한 문장은 성주의 마력과 ‘그 자’의 마력에 반응하여 따뜻한 주황빛을 발했다.
“이 문장에 걸고 맹세합니다. 당신의 소원은 제가 꼭 이뤄드리겠습니다.”
“그 약속……. 이미 했던 약속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나?”
‘그 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공간의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성주의 의지도 아니고 ‘그 자’의 의지도 아니었다. 세계가, 시간이 스스로 균형을 지키기 위해 성주가 만든 공간을 일그러트렸다. 사실은 그 공간이 성주가 만든 공간이 아닐 수도 있다. 원래 있던 곳을 성주가 찾아낸 것일 수도 있고 세계가 균형을 잃으면서 생긴 틈일 수도 있다. 아니다. 어쩌면 성주가 만든 공간일 수도 있다. 성주가 스스로 공간을 변형시키는 것일 수도 있고 공간이 성주 자체일 수도 있다.
공간도, 사람도 모두 마블링을 그리듯이 섞여나갈 때 아공간 밖에서 들려오던 싸움 소리가 멈췄다. 멈춘 것이 아니라 들리지 않게 된 것이고, 들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런 소리는 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소리가 없었다는 건 애초에 싸움이란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고, 싸움이 없었다는 건 성주가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것 모두 원래부터 없었다는 걸까? 아니다. 성주는 그것들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피부로 느끼고, 몸으로 겪었다. 아,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정말 웃기지도 않는 모순이 아공간처럼 얽히고 섞이는 것일까. 이 얼마나 몽환적인 현실인가.
그래, 모두들 꿈은 잘 꾸셨는가. 그대들은 때론 아름답고, 때론 슬프고, 때론 발랄하고, 때론 격한 피아노 선율을 들으면서 잠을 자고 있었다네. 그렇게 꿈을 꾸고 있었단 말이지. 내가 만든 꿈이었을까, 빛의 성 성주, 아니 봉고레 패밀리의 10대 보스가 만든 꿈이었을까, 당신이 만든 꿈이었을까. 지금 그대 눈에 보이는 사와다 츠나요시는 14살의 어린 소년인가 아니면 23살의 장성한 청년인가. 겹쳐 보인다고 당황할 것 없네. 지금 그 역시 스스로 자신이 누군지 헤매고 있는데 누가 그를 ‘사와다 츠나요시’라고 당당하게 부를 수 있을까. 존재가 분명하지 않으면 이름을 부르지 말게. 꿈에선 그 이름 자체가 거짓일 수 있으니까. 현실에 깨어나서도 자아가 분명한 상태인데도 자신의 이름에 회의감을 가지지. 그런데 저렇게 존재가 흔들리는 자에게 이름을 불러줘도 괜찮은 걸까. 내 한 마디 더 하지. 그대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중이네. 이제 깨어날 시간이네.
“전 당신을 뭐라 불러야 하죠?”
죄인. 죄인이라고 불러주게.
“아직도 죄책감을 갖고 있나요?”
축의 힘을 빌려 멋대로 저주를 뿌리고 다녔는데 죄의식까진 없더라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지. 하지만 지금 와서 후회해봤자 뭐하는가. 더 먼 과거에도,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더 먼 미래에도 난 똑같은 행동을 하고 똑같은 마음을 짊어지고 살아야하는 운명이거늘. 세계의 질서를 위해서 나 하나 희생하면 되는 일. 하지만 그에 휘말리는 수많은 생명들에게 난 죄인이지.
“이제 그 마음, 제가 덜어드릴게요.”
6천 년 전에도 똑같은 약속을 했었지. 저주의 파수꾼 노릇에서 해방시켜주겠다고.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되레 저주에 걸려 대대손손 새장의 새가 되버렸잖나. 3천 년 후에 태어나서 또 그 약속을 했어. 하지만 우매한 내가 백란에게 내 힘을 넘겨준 바람에 세 개의 축 중 한 축이 망가져 버렸지. 결국 또 넌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이렇게 한 번 더 날 찾아왔어.
“한 번 환생하는데 3천 년 씩이나 걸릴 줄 몰랐어요. 하지만 이번엔 꼭 약속을 지킬 거에요. 당신이 우릴 도와준다면…….”
이미 널 도와줬어. 3천 년 전, 네가 모든 기사들을 대신하여 백란의 검을 받고 죽음을 택했을 때, 난 백란의 방어가 허술해진 틈을 타 그에게서 내 힘의 일부를 뺏어내고 네 저주를 풀어줬어.
“그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리고 백란이 멋대로 축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전부 ‘링’으로 바꾸고 백란 자체에 한계를 걸었지. 백란이 멋대로 설칠 수 있는 시간은 지금 뿐이야.
“그래서 10년 전, 링 쟁탈전 중에 백란이 가로치기하지 못한 거군요.”
세 축은 반드시 동시에 존재해야 해. 내가 여기저기서 원한을 사면서도 아르꼬발레노 저주를 계속 이어간 건 불가항력이야. 네가 정말 약속을 지킬 거라 믿으면서 그렇게 3천 년을 더 기다렸다. 긴 시간……. 솔직히 봉고레 프리모가 나타났을 때 그가 너인 줄 알았는데 애석하게도 아니더군. 하지만 진짜 네가 이렇게 내 눈 앞에 있어.
“제가 약속을 지켜 당신을 해방시켜 주면 당신은 아르꼬발레노의 저주를 풀어주는 것이죠?”
그걸 위해 내가 새로운 축을 만든 것이잖나. 괴물을 본 따 만든 새로운 링. 모두들 그것이 링의 원시형이라고 하지만 실은 제일 나중에 만들어진 세계의 축이지. 아르꼬발레노의 저주를 대신할 암울하고 지독히 괴로운 저주.
“전생의 기억을 좀 더 빨리 찾았더라면 봉고레 링을 부수지 않았을 텐데……. 저렇게 어린 저에게 백란과 싸우라 시키는 제가 잔인하게 느껴지네요. 백란의 존재는 몰라도 마레 링의 존재라도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지금의 너는 필연적으로 죽었지만, 저곳에 있는 너는 필연적으로 세계의 축을 지키고 9천 년에 걸친 약속을 지킬 거야. 이 세계에 걸린 모든 저주가 풀리고 축은 제자리를 찾고 나도 죽을 수 있겠지. 너와 너의 기사들도 괴로운 환생의 길을 더 이상 걷지 않아도 돼.
“유니가 백란에게서 해방되면 어떻게 될 것 같은데 아직 백란의 힘이 너무 강해요. 유니를 놓아주지 않을 거에요.”
축과 축이 맞부딪히면 잠들어 있던 모든 것이 깨어나는 법. 아직 꿈꾸고 있는 세계를 깨우기 위해서 필연적인 싸움.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한 암울한 시간. 그 악몽에서 깨어나면 새로운 세계가 저기 있는 어린 너에게 선사될 것이야. 자. 이제 조그마한 네가 세계를 잠에서 깨우는 걸 지켜보자. 어차피 이 잔인한 방법을 선택한 건 바로 너니까.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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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읽으셨다 시피 츠나요시 군의 전생 이야기를 쓴 겁니다. ‘그 자’는 아르꼬발레노 저주를 건 장본인이고요. 가정교사히트맨리본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이야기가 진행된 배경을 나름 상상해서 쓴 겁니다.
7. 설정
①백란이 가지고 있는 석판을 보고 봉고레 링, 마레 링, 쭉쭉이가 중요한 삼대 요소라는 사실을 Get!
②백란이 트리니셋네가 최고 권력(?)이라 발언한 것에서 그 사실을 Get!
③일곱 가지 파동에 따른 필살염 색이 다르다는 사실도 Get!
④저주에 걸린 사람이 있다면 저주를 건 사람도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저주는 순수하게 인공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고로 아르꼬발레노 저주에서 힌트 Get!(전 아마노 작가님이 제가 설정한 '그 자' 비스무레한 자를 등장시켜 주길 바라는 소심한 인간입니다.)
⑤10년 후의 모든 일들을 10년후 츠나요시 군이 계획해서 수호자들을 미래로 불러모은 것이라는 사실도 Get!
8. 다음 중편 예고...
실은 이거로 끝내려고 했는데... 그냥 쓰기 시작한 거 다음 가도록 하지요.
츠나요시 군을 중심으로 환상곡을 연주했다면 다음은 무크로 군을 중심으로 오페라를 치를 예정입니다.
그것도 중편. 그것도 Overture서곡(프롤로그)-제 1~4막-Finale대단원(에필로그) 이 구성으로 나갈 겁니다.
잘 부탁드립니다(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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