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Mutation-Kimera(리메이크)

Mutation - Kimera : 제 2 각성 ⑤

★은하수★ 2009. 4. 27. 18:18

잠깐의 외출을 마치고 아지트로 돌아온 시아는 이- 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어째서 밀리엄이 보스의 집무실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서는 버섯을 꼬물꼬물 끝없이 만들고 있는 걸까? 그리고 보스가 돌아오길 기다리던 민은 집무실 전체가 버섯에 뒤덮일 것 같아 손.으.로. 버섯 채집(!)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버섯은 밀리엄 근처에서만 자랐지만 가끔씩 한계선 밖으로 퍼지면 민이 또 수작업으로 제거했다.

“그 버섯, 먹을 수 있는 거야?”

“드래곤 몸에서 자란 건 버섯이 아니라 곰팡이에요.”

“오-. 그런 거야?”

보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하다가 눈물범벅인 밀리엄의 눈과 마주쳤다. 삶에 상실감을 느끼고 비관하는 중인 그의 모습이 많이 거북해서 먼저 시선을 피했다.

“드래곤은 드래곤이지. 근데 지금은 엘프니까 버섯이라고 해 주자.”

시아가 자리로 돌아가 앉으려는데 등 뒤에서 밀리엄의 절규가 척추 내 신경을 기습하고 그를 따라 흘러서 골을 흔들었다.

“논-점-이- 그-게- 아-니-잖-아-.”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자마자 깜짝 놀랐다. 밀리엄이 시아를 향해 좌절 자세로 엎드려서는 무지무지 서럽게 울고 있었다. 버섯은 어느새 없어지고 밀리엄이 있는 곳은 얕은 물웅덩이로 변해갔다. 어찌 그렇게 잘 우는지 시아는 금세 밀리엄에게 질렸다.

“민아.”

“네, 보스.”

“나 말이야, 4천왕 제대로 뽑은 걸까?”

보스는 진심으로 진지하게 물어본 건데 민은 태평하게 대답했다. 추하게 우는 것쯤이야 4천왕의 자질을 논하는데 있어 문제되지 않는다고 여겼다.

“한 조직에 저런 캐릭터가 하나쯤은 있어 줘야죠.”

“아니, 저건 아니야.”

시아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밀리엄이 끊임없이 우니까 달래지 않을 수 없지만 어떻게 달래야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일단 질척이는 눈물 웅덩이를 밟으며 밀리엄에게 가까이 가서 옷이 젖지 않게 조심스럽게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밀리엄의 어깨를 콕콕 건드렸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루시퍼에게 들은 얘기 때문에 가뜩이나 심난한데 돌아오자마자 밀리엄이 이 모양이니 기력이 극도로 쇠하는 것 같았다. 다 내던지고 침대로 들어가 자고 싶었다. 이게 속세에서 말하는 ‘스트레스’구나라고 납득하기까지 했다.

시아가 어쩔 줄 모르고 난처해하는데 민이 시아를 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솔리가 집무실 입구 옆 벽에 한쪽 어깨를 붙여 기댄 채 삐딱하게 서있었다. 그녀의 눈은 보스 앞에 있는 밀리엄을 한심스럽게 보고 있었다. 시아는 그 순간 밀리엄과 솔리가 또 싸우고, 또 밀리엄이 져서 또 집무실로 하소연하러 왔다는 뻔한 이야기를 눈치 챘다. 그 순간 시아의 이마에 핏발이 섰고 스르륵 다리와 허리를 피며 일어섰다.

“얼마나 심하게 싸운 거야?”

“그렇게 심하게 안 싸웠어.”

밀리엄의 울음소리 때문에 보스와 솔리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민만 무덤덤하게 있으면서 집무실 손님들에게 줄 차를 준비했다.

“하……. 밀리엄의 오리지널이 뭐였더라? 갑자기 헷갈리네.”

“하이엘프. 그럼 뭐해. 플러스가 실버 드래곤이라서 그쪽 성격이 아주 뛰어나신데.”

솔리는 밀리엄을 반경멸스러운 눈으로 내려다보며 오른발로 그의 허리를 툭툭 찼다. ‘서로 좋아 죽어나가다 못해 약혼을 한 사이’로 알려져 있지만 속을 파헤쳐보면 솔리가 밀리엄을 가지고 노는 주인-놀잇감 관계에 더 가깝다. 죽을 만큼 좋아한다는 건 사실이니까. 그래도 솔리는 ‘실리’를 더 중요시하는 반면에 밀리엄은 ‘사랑’을 무엇보다도 우선해서 가끔 마찰을 격하게 일으킨다.

“그만 좀 울어. 그 나이에 창피하지도 않아?”

이제는 바닥에 이마를 박고 훌쩍 거린다.

“하지만, 하지만…….”

“적당히 해. 보스가 싫어하잖아.”

“나도 보스 싫어! 으윽, 읍……, 흐윽. 나 혼자 두지 마-.”

“뭔 소리야?”

시아는 민이 건네준 찻잔을 집어 들다가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밀리엄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밀리엄은 간절히 애원하는 눈으로 시아를 올려다보다가 다시 바닥을 향해 이마를 고속으로 하강시켰다. 그와 멀뚱멀뚱 눈을 마주보던 시아는 솔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냥 나 없는 동안에 보스를 잘 보좌하라는 한 마디 끝내자마자 저 모양이야.”

솔리는 집무실 소파에 다리를 꼬며 앉았다. 암살부대 대장이자 직속상관, 자신의 캡틴이 직접 타준 차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받고는 소리 내지 않고 품위 있게 마셨다. 그녀의 오리지널이 하프 운디네이고 플러스가 자작급 뱀파이어라는 걸 감안하면 그런 품위야 몸에 밸 대로 배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었다.

시아는 찻잔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나서 밀리엄에게 가까이 다가가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밀리엄의 성격을 꿰고 있기 때문에 시아의 별거 아닌 말에 과민반응을 보이고 눈물을 있는 만큼 다 퍼내는지 이해했다.

“참- 할 일도 없다. 솔리는 일이 많으니까 내 옆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적잖아. 그래서 자기 몫까지 날 챙겨주라는 뜻에서 말한 건데 그게 그렇게 서러워? 그러면 너도 일을 만들어서 밖으로 나가면 되잖아.”

“그-러면, 나의 피앙세랑, 훌쩍, 자주 엇갈린단 말이야. …그리고, ……꼭 금방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훌쩍, 말했다고.”

솔리는 소속한 부대 특성상 아지트에 있는 시간이 매우 적다. 그래서 밀리엄이 시아에게 솔리 좀 그만 부려먹으라고 곧잘 조르는데, 이번엔 특히 위험하고 어려운 임무를 맡은 뉘앙스가 풍겨서 심장이 덜컥할 정도로 놀란 모양이다. 밀리엄은 이미지고 자존심이고 다 버리고서 끊임없이 울어댔다. 다섯 살배기 꼬마나 할 만한 짓을 대략 170살 먹은 작자가 하고 있는 거다.

“솔리는 나 만만치 않은 무적이잖아. 잘 알고 있는 녀석이 이런 꼴로 질질 짜면 솔리가 어디 맘 편히 일하겠어?”

“흐잉……. 하지만…….”

꼬마가 엄마와 떨어지길 싫어하는 것처럼 밀리엄은 솔리와 떨어져야 한다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일순간 시아는 양심이 푹 찔렸다. 이번에 솔리에게 맡긴 임무는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고 위험 부담이 극에 달하는 것이라 밀리엄이 그 시간동안 무사히 버틸 수 있을지 내심 걱정됐다. 하지만 사적인 사정으로 히든 카드와 같은 이번 일을 없었던 걸로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 끝날 때까지 누구에게도 진실을 발설할 수 없었다.

“듬직한 낭군님으로 있지 못할망정 짐 덩어리가 될 셈이야?”

밀리엄은 눈물을 흩뿌리면서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자신이 솔리의 짐 덩어리가 된 다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울지 마. 그리고 솔리가 그런 말을 하는 것도 무린 아니잖아. 원체 하는 일이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 태반이고, 너도 이젠 4천왕이라 날 직접 돕는 위치니까 극히 자연스런 일이야.”

“으읍……. 매정해 보스.”

“원래 이 바닥이 매정하잖아.”

“그런 말…… 웃으면서 하지 마. 진짜, 진짜 잔인하다고,”

밀리엄은 옷소매로 눈가와 얼굴에 가득 묻은 눈물을 닦아내고 천천히 몸을 피며 일어섰다. 시아는 먼저 다과 준비가 끝난 탁자로 가서 소파에 편히 기대앉았다. 그리고 밀리엄을 향해 가까이 오라 손짓했다.

“제 1천왕이 일부러 이렇게 준비했는데 감사히 기쁘게 먹어야지 않겠어?”

그때 민은 자리에 앉아서 보스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고 솔리는 이미 하나씩 먹고 있었다. 시아가 다과에 손대기 시작하자 밀리엄은 제자리에서 쭈뼛쭈뼛 거리다가 솔리의 옆에 앉았다.

“정말이지 아까는 아지트의 내 방이 아니라 버섯 재배지에 온 줄 알았어.”

“아무짝에 쓸모없는 버섯뿐이었지요.”

시아와 민의 말은 겨우 진정한 밀리엄에게 다트를 세게 던져 꽂듯이 가슴을 푹푹 찔렀다. 그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린 양갱 한 조각을 입 안에 넣어 씹다가 잠깐 턱 운동을 멈췄다. 그리고 보스와 제 1천왕의 눈치를 보다가 다시 보일 듯 말 듯 소심하게 씹어 삼켰다.

“그 버섯들, 정말 못 쓰는 거야?”

“먹으면 식중독 걸려요. 그냥 쓰레기라고요.”

“꽤 많던데 아깝다.”

자주 볼 수 없는 보스의 천진난만한 모습과 언제나 그러한 민의 무덤덤한 모습이 서로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거나 과한 부분을 상쇄하면서 조화를 이뤘다. 정확하게는 민의 딱딱함을 시아가 일부러 부드럽게 감싸는 것이다. 덕분에 시아 스스로도 어색하지 않게 둥근 성격을 내보일 수 있게 됐고 민도 처음에 비해 상당량 유들유들해졌다.

“보스, 이 바보 같은 사람. 4천왕 자리엔 너무 부족하지만 그래도 보스가 뽑아줬으니까 잘 좀 봐줘.”

시아는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고 입에 포크를 문 채 솔리를 뚫어져라 봤다.

“왠지 뉘앙스가 나랑 밀리엄이 선보고 네가 중매쟁이 같아.”

“보스! 난 지금 진지하게 얘기하는 중이야.”

“먹는데 체하게끔. 먹을 땐 즐거운 얘기만 하는 게 예의이자 정석이라고.”

똑부러지게 말하고는 바나나 조각을 맛있게 오물오물 씹어 먹는 시아였다. 뒤이어 키위 두 조각이 연달아 시아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그거 보스가 만든 예의이자 정석인가요?”

“아니, 우리 어머니의 주장.”

민은 포트를 가져와서 시아의 찻잔을 다시 채웠다. 한 번 차를 마시기 시작하면 연거푸 석 잔을 마시는 습관을 잘 알고 있기에 시아가 직접 움직이거나 지시하기 전에 적당한 대를 맞춰 대응할 수 있었다.

“캡틴, 누가 보면 캡틴이 보스의 개인 사용인인줄 알겠어.”

솔리는 자신의 대장이 자발적으로 잡일을 하는 모습 자체가 신선했다. 왜 캡틴이 그래야 하느냐는 식으로 기분 나빠하거나 불만스러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장이 보스에게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 이러는 걸. 이제 말리는 것도 지쳐서 그냥 냅두려고.”

“왜 말려? 보스, 다른 녀석이 보스의 시중을 드는 것보다 캡틴이 하는 게 몇 십 배는 더 안전하다고.”

“무슨 말이야?”

“생각해 봐. 아무나 보스 가까이서 이런 시중을 들면 언제 어떻게 비명횡사할지 모른다고. 요즘 독약이 얼마나 정교하고 야비한데. 하지만 캡틴은 절대적으로 보스 편이잖아.”

솔리는 정색한 채 진지하게 말했다. 맞는 말이고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으나 조금은 비약적이고 과장된 면도 있었다. 그만큼 솔리도 시아를 끔찍이 생각한다는 뜻이라서 시아는 그에 대해 특별히 토를 달지 않았다.

“알아서 눈치껏 다 챙겨주니까 나야 편하지. 그래도 명색이 가디안스의 제 1천왕인데 이런 잡일을 한다는 게 체면상 말이 안 되잖아.”

“가디안스의 보스를 위한 일인데 뭐가 대수야?”

보스가 아끼는 최고의 암살자가 댄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아니, 그녀가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확고한 투로 말하는 바람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것이 진리인 것 마냥 생각하고 있는데 다른 이유로 그 생각을 바꾸자니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고, 결국은 바꿀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나의 솔리는 언제나 보스 우선이구나.”

밀리엄의 머리에 버섯 하나가 뽁 튀어나왔다. 솔리는 그 버섯을 가볍게 떼 냈다.

“당연하잖아. 보스는 나의 보스고, 나는 보스의 부하니까. 너도 보스랑 내가 동시에 위험에 처하면 보스부터 구해야 해.”

“으윽.”

누굴 구할 거냐고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누굴 구하라고 박아버리니까 밀리엄은 움찔 했다. 솔리가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나오는 건 또 처음인지라 밀리엄은 마음에 또 다른 상처가 생겼다. -혹시나 솔리의 머리와 마음엔 내가 없는 게 아닐까.

대책 없는 커플을 보면서 시아는 코로 가늘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양갱 한 조각을 대충 씹어 삼키고 찻잔을 깨끗하게 비웠다. 분명 뜨거울 텐데 한잔 가득인 것을 반억지로 다 들이켰다. 그리고 빈 잔을 컵받침 위가 아닌 옆에 내려놨다. 더 이상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는 뜻이었다.

“자, 자, 이제 그만 나가. 야참은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 나도 가서 좀 자야겠어. 하루 종일 두뇌 노동을 했더니 피곤해.”

시아는 등을 푹신한 등받이에 파묻고 턱으로 문을 가리켰다. 민, 밀리엄, 솔리는 일제히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넌 잠깐 여기 있어.>

보스의 텔레파시가 민에게 전달됐다. 민은 자연스럽게 쟁반으로 식기를 치웠다.

“우리 먼저 나갈게. 푹 쉬어, 보스.”

“보스-, 잘 자.”

솔리는 밀리엄과 나란히 집무실을 나서는데 문을 닫자마자 보스에게서 텔레파시가 왔다. 그녀는 살포시 미소 지으면서 밀리엄에게 딱 달라붙어 팔짱을 꼈다. 그리고 보스에게 ‘응’이라는 대답을 보냈다.

두 길드원이 나가고 시아도 민을 도와 주변을 싹 치웠다. 둘 다 손 보다는 마법을 응용한 잡기술을 사용했다.

“벌써 새벽 세 시에요, 보스.”

안 그래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서 깨나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뭐랄까, 일부러 자지 않으려고, 잘 수 없다며 스스로를 채찍질 하는 것 같이 보였다. 자칭, 동물적 본능에 충실하다는 시아가 본능을 거스르고 있으니까 또 다른 폭탄선언을 할까봐 긴장했다.

“응. 내일을 위해서 충분히 자야하는데 눈 감고 누워있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더욱 더 만발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뭔가에 쫓기는 것처럼 초조해 보이세요.”

“루시퍼에게서…….”

“그 자를 만나셨어요?”

순식간에 민의 눈매가 날카로워지고 목소리가 무겁게 깔렸다. 루시퍼가 민에게서 확실하게 미움 받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성가신 녀석이긴 해도 나랑 같은 종족이고 공생관계야. 그리고 괜찮은 정보를 곧잘 가져온단 말이지.”

“아무리 그래도 그는 믿을 수 없는 자입니다.”

불신 가득한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신뢰를 잃은 자. 보스가 그런 자를 만났다는 것, 그런 자가 보스에게 접근했다는 것 모두 민의 화를 불러 일으켰다. 민은 보스가 루시퍼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점이 안타까웠다. 자신의 보스는 신성한 채 존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은연중에 사고를 지배했다.

“악마 왕의 심부름 때문에 날 찾아왔다는데 안 만날 수 없잖아. 그리고 그 녀석은 공작 작위에 대법관 직책까지 꿰차고 있어서 후작인 나는 필연적으로 녀석과 부딪힌다고.”

시아가 루시퍼에 대해서 변명하는 것이 이번만 해도 100번째가 훨씬 넘는다. 정확한 숫자를 세면 120번 하고도 7번째다. 가디안스의 주요 인사 대부분이 루시퍼를 껄끄러워 하고 그 중 몇 명은 깊은 혐오감까지 갖고 있어서 시아가 루시퍼와 만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변명을 늘 해야 했다. 그렇다고 시아가 그를 일부러 만날 정도로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건 절대 아니다. 그럴 리 없다. 그런 사이가 될 수 없다.

“특히 이번엔 슈튀크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갖고 왔어. 악마 왕이 보낸 거고 100% 확실한 거야.”

민의 눈이 순식간에 커졌다. 시아가 심각한 표정으로, 거기에 난처함과 두려움이 가미된 표정으로 팔짱 낀 채 소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발끝을 응시하고 있었다. 민은 그것이 쉽지 않은 결정 때문에 고민하는 자세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지금은 루시퍼와 만났다는 사실보다 보스가 큰 문제로 난처해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시해야 했다.

“펜타곤의 슈튀크 말입니까?”

“침묵 속에서 고요하게 살고 있다가 갑자기 밖으로 나와서는 별별 잡다라한 것을 다 하고 다니더니, 이젠 악마 왕에게 순종은 키메라의 일에 끼어들지 말라 했다더군. 절대 키메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진 관심 없지만 성가신 일을 벌이는 건 크든 작든 사절이야.”

엄숙한 오라가 주변을 휘감았다. 악마 특유의 암기가 검은 안개가 되어 옅고 넓게 퍼졌다. 블랙-레드 오드아이는 정면을 똑바로 응시했는데, 눈빛이 날카롭고 방금 전까지 갖고 있던 약간의 공포와 망설임을 일순간에 잠재운 강인한 의지가 엿보였다. 스스로 어떻게 할 것인가 결정을 내린 시아를 향해 민은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 바로 진짜 카리스마다.

“너만 알고 있어. 내일 디 페라이더루흐가 다스 엔데에 나타날 거야. 그리고 이 정보는 사마엘도 알고 있기 때문에 크루세이더도 대대적으로 움직일 거야. 그래도 계획이 변경되는 일은 없어. 바뀌는 게 있다면 나와 네가 최고치까지 각성하고 크루세이더 잔챙이들을 단번에 쓸어버리는 거야.”

민은 심장이 강하게 뛰었다. 보스의 말은 잔잔한 물결이 되어 부드럽고 유연하게 흘러들어와 심장과 함께 공명했다. 시아는 단순하게 내뱉은 말이지만 민은 청아한 명령으로 들렸다. 반드시 따라야하는 사명이었다.

“굵직한 놈들은 우리 길드원들이 간만에 제대로 뛰놀게 남겨 주고 걸리적거리는 녀석들만 치워. 그리고……. 제 3천왕과 강 솔리에게 접근하는 녀석들은 그냥 내버려 두고, 제 3천왕이 기운이 빠지고 빠지도록 크루세이더 놈들을 몰아 줘. 그 사이에 난 슈튀크를 상대할 테니.”

“Ja, für Sie, meine Boß."

제 1천왕은 보스를 향해 허리를 직각으로 숙였다.

아침 해가 뜨기 직전의 하늘이 가장 어둡다. 달마저 거의 지다시피 한 밤하늘은 별만 겨우 반짝이고 새까만 어둠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런 밤하늘을 배경으로 등지고 앉아있는 길드 가디안스의 보스가 훨씬 더 어둠에 가깝다. 그녀 고유의 마기와 암기를 뿜어내지 않아도 표정이나 포스로 분위기를 잡지 않아도 있는 것 자체가 ‘어둠’이다. 그녀 자체가 어둠, 어둠의 화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