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Mutation-Kimera(리메이크)

Mutation - Kimera : 제 3각성 ⑨

★은하수★ 2009. 8. 4. 15:19

이 시각 연구실에서는 화타의 살기 때문에 구석에 숨은 연구진을 볼 수 있었다. 시아가 도착할 즈음엔 화타만 연구실 안에 있었고 나머지는 문 바로 밖에서 화타의 살기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연구실 내부엔 몇몇 파손된 물건도 있었다. 연구가 진척되지 않자 화타가 감정을 폭발시킨 것이 분명했다. 시아는 터벅터벅 걸어 들어간 후에 화타가 잘 보이는 어느 의자에 골라 앉았다. 화타는 시아가 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도대체가 말이지 가능성을 대입할 때마다 즉각즉각 부반응이 나올 수 있는 거냐고! 100이면 100! 어떻게 죄다 오답이야?”

[쿠과과과과-]

[퍼엉!]

[쉬-익]

화타는 그의 지팡이를 가로로 길게 휘둘렀다. 지팡이에 걸린 모든 실험기구와 실험재료 및 약품들은 부서지고 깨졌다. 터지기도 하고 주변을 부식시키기도 했다. ‘연구실의 모든 것을 소중히’가 화타의 모토인데, 정신이 반쯤 외출하고 눈이 헤까닥 뒤집히면 아무 소용없다. 사정거리 안에 있는 것들은 가차 없이 망가진다. 대부분 원상복구하기 힘들 정도가 된다. 뒤처리는 정신이 바로 든 화타가 하기 때문에 웬만해선 아무도 그의 행동에 시비를 걸지 않는다.

“크아아악!”

인간이 낼 수 있는 비명 중에서 제일 날카롭고 괴기스런 소리를 맘껏 질렀다. 그와 동시에 그의 살기가 폭등했기 때문에 시아를 제외한 근처의 모든 길드원들이 바싹 긴장한 상태에서 더 겁먹었다. 연구진은 오리지널이 인간인 키메라가 80%고 나머지는 전부 드워프 순종이다. 화타의 비명과 광기에 간이 쪼그라들고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천하의 구 화타도 못 푸는 문제가 있구나.”

화타는 빠르게 고개를 돌려서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시아를 응시했다. 시아는 등을 뒤로 편하게 젖히고 지극히 평범한 그녀만의 무표정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표정은 기가 충만하지도 무기력하지도 않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덕분에 그녀의 평상심이 화타에게 조금씩 전달됐다.

“보- 스-.”

“놀러왔어.”

화가 완전히 가라앉은 화타는 시아의 생긋 웃는 밝은 표정을 보자마자 다리 힘이 확 풀렸다. 맥없이 제자리에 주저앉더니 멍한 얼굴로 시아를 쳐다봤다. 시아는 자리에서 일어난 후에 그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그녀 앞을 더럽히고 있는 각종 약품과 파편들은 그녀가 만들어낸 바람에 쓸려 양 옆으로 물러났다. 그녀는 깨끗한 바닥을 한 발씩 디딘 후 그의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그를 진정시킬 때까지는 무표정이었지만 그가 이성을 되찾은 후부터는 줄곧 환한 표정을 유지했다. 아주 잠깐 동안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주저앉은 그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무릎을 굽히더니 쭈그려 앉았다.

“너무 연구실에만 있었어.”

시아는 화타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50대 후반인 화타였지만 보스 앞에서는 6-7살 꼬마였다. 생각할 것도 없이 자동적으로 그녀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녀가 이끄는 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람 좀 쐬자. 나도 집무실에만 있었더니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아. 분명 산소 부족 때문이야.”

길드원을 어린 동생 다루듯이 잘 어우르는 길드 가디안스의 보스는 중년 수석 연구원도 아주 쉽게 다뤘다. 그의 손을 꼭 잡은 오른손은 악수하듯이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 사이에 시아의 마력이 손과 손들을 통해 화타에게 전달됐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수면·최면 계열 마법을 약하게 쓴 후에 곧바로 정신이 번쩍 드는 각성 계열 마법을 썼다. 덕분에 머리가 무거운 먹구름으로 가득 찬 것 같았던 답답함이 말끔히 사라졌다.

“이 아지트는 보스의 명령대로 공기 순환이 잘 되도록 만들었어. 산소 부족이라니, 그런 핑계가 통할 리 없잖아.”

“오-. 구 화타, 부활했습니다.”

화타가 먼저 시아의 손을 놨다. 시아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 번 쳤다.

“고마워, 보스.”

“크리세이스도 못 말리는 걸어 다니는 생화학 폭탄이잖아. 당연히 내가 와야지.”

“맞는 말이긴 한데, 얌전히 수긍하자니 가슴 아픈걸.”

화타는 시아의 분명한 지적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난장판이 된 주변을 둘러봤다.

“이거 그야말로 개판이군.”

“보통은 개판 5분 전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말 그대로 개판이야.”

시아는 화타의 표현에 적극 긍정했다. 부서지고 망가진 것들은 도저히 수리할 수 없을 듯싶었다. 기계 분야에 유능한 드워프가 수 명 있다지만 완전 박살난 것들은 수리가 불가능했다. 그냥 다시 만드는 것이 나을 법했다. 약품은 순수 약품 중에서 급한 것만 골라 구매하고, 나머지는 연구진 전체가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한 사람의 행동 때문에 다수가 며칠 야근하게 생겼다.

“화타.”

“알아. 감봉이지?”

“징계도 같이.”

“맙소사.”

한숨이 절로 나왔다. 보스가 싱긋 웃으면서 하는 말은 언제나 뒤에 단두대가 있기 마련이었다. 따지거나 울먹이며 매달리면 보스가 어떻게 치고 나올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만큼 그녀가 화났다는 뜻이니까. 화타는 얌전히 이번 처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징계의 구체적인 내용은 크리세이스한테 맡길 거야.”

“보스. 울 캡틴이 원래 특수전투 부대 소속이었다는 거 기억해? 처벌을 캡틴한테 맡기면 이 나이든 육신은 고장 나고 말 거야.”

화타는 손 사래질을 쳤다. 차라리 보스 손에 죽고 말지 크리세이스에게는 절대 당하지 않으리라는 의지가 굳건했다. 크리세이스가 4천왕답지 못하다는 명목으로 시아에게 이래저래 혼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를 성장시키기 위한 방책이었다. 배수진을 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안 하는 성격이라 시아가 강하게 몰아붙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실은 4천왕에 어울리는 인재임이 틀림없다. 인격적 성장이 조금 부진해서 그렇지, 전 후방지원 부대 대장 신 휴와 객관적으로 비교해 보면 비등비등한 실력자였다. 전 특수전투 부대 부대장이었지만 후방지원 부대에 금방 적응하고 확실하게 대장 노릇을 하고 있다.

“뼈저리게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그 고질병을 확실하게 고치라는 차원에서 내가 호의를 듬뿍 담아 결정한 거야.”

주변에 꽃과 별이 만발할 만큼 화사하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블랙-레드 오드 아이를 번뜩이는 악마가 배경에 겹쳐 보이는 환각이 그 미소를 한없이 살 떨리는 공포로 탈바꿈시켰다. 이 시점에서 한 번만 더 토를 달면 이 세상의 빛을 못 보개 되리니, 이성을 갖고 사고할 수 있는 다세포 생명체라면 군말 않고 그녀의 말을 따를 것이다. 화타 역시 별 수 없었다.

“그래도 말이야…….”

시아는 몸을 돌려서 연구실용 접시에 놓여있는 연분형색의 투명한 입방체 젤리를 조심스럽게 가져왔다. 동시에, 그녀에게서 뿜어지던 가슴 두근거리는 공포가 싹 사라졌다.

“그 난리 통에도 이건 무사해. 우연이야, 아니면 피해서 날뛴 거야?”

“무의식중에 이건 망가지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인지한 게 아닐까?”

“우연이란 얘기군.”

그녀는 가늘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기프테 폰 크로이추크에 대항하기 위해 화타가 혼신의 힘을 다 바친 중간 결과물이 하마터면 화타 본인의 손에 수포로 돌아갈 뻔했다. 그녀는 아직 다리가 멀쩡하여 기울어지지 않고 튼튼하게 버티고 있는 선반 위에 그것을 올려놓았다. 그녀가 가끔 연구실에서 화타의 연구물을 향해 장난을 치지만-그 대상에는 연분홍색 젤리도 포함된다― 그것들은 화타 못지않게 시아에게도 중요한 것들이었다. 허무하게 망가진 광경을 보고 가슴 아플 수밖에 없었다.

“크루세이더에서 만든 것보다 더 복잡해?”

“보스. 이건 복잡한 걸 떠나서 조잡해. 인내심의 한계를 다시 측정하게 될 줄은 몰랐어.”

“표현 한 번 확실하네.”

화타가 얼마만큼 신경이 예민해졌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조만간 환갑잔치를 열어야 하는 화타가 나이만 먹었다고 한다면 인생에서 스스로에게 사기 친 거다. 그는 그의 나이가 아깝지 않게 인내심을 키우고 평정심도 타인의 배였다. 하지만 다혈질적인 본성은 계속 내재하기 때문에 인내심의 끈이 끊어지면 가차 없이 난봉꾼이 됐다. 그래도 그의 인내심의 끈은 굵고 튼튼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그의 본성이 표출되지 않았다.

“샘플이 저만큼 있어도 안 돼?”

시아가 쭉 뻗은 팔을 따라 그녀의 검지 끝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봉인 마법으로 재고 처리한 살덩어리들이 거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정보 부대와 수색 부대가 수거한 샘플 전부가 그 자리에 모여 있었다.

“길드 에덴에서 만든 약은 아주 제각각이야. 추출한 샘플마다 기본기며 조직이 다 달라.”

“약이 유통된 지 1년 정도 됐다는데 그 사이에 신약이 수십 개가 쏟아졌다는 거야?”

“지금까지 정황을 보면 그것밖에 없어. …신약 주기가 터무니없이 짧아. 이걸 이끌 정도로 굉장한 녀석이 길드 에덴에 있었으면 왜 진작 움직이지 않은 거지?”

길드 에덴 자체가 수수께끼 덩어리라서 그들이 어떤 일을 일으키든 ‘에덴이니까’라는 이유로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건은 그럴 수 없었다. 에덴이라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흘러 넘기기엔 어처구니없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흠……. 에덴 내부에서 누가 더 좋은 약을 만들지 시합이라도 했나?”

“그거 은근히 말 되는데?”

화타는 피식 웃었다. 보스의 엉뚱한 발언이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렇다 해도 납득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기발하면서도 엉뚱한 구 화타잖아. 여-기 녀석들이 진절머리 날 정도로 수상한 실험을 할 때 아닌가? 구 화타의 실험 철칙 중 제 800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알아낸다.”

“그게 뭐야.”

“헤-. 숫자만 틀렸지 한글을 맞잖아.”

시아는 팔짱을 끼고 화타를 당당하게 내려다봤다. 화타는 그녀의 말에 따라 주변에 멀찍이서 몸을 숨기고 있는 연구원들을 둘러봤다. 아직까지 겁먹어서 떨고 있는 자는 없었다. 하지만 전원, 시아와 화타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연구실로 들어갈 타이밍을 재는 중이었다.

“나 참. 아는 건 다 해봤다고.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엉뚱한 걸 해야 하나?”

화타는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젊었을 적 윤기 나는 검은 머리는 이제 회빛이 되어 화타가 한 살씩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이 안타깝게 느껴지도록 부추겼다.

길드 가디안스의 수석 연구원이 괴로워하며 고민하는 동안 시아는 살덩어리의 군집지로 들어갔다. 몸에 밀착하다시피 가깝게 보호막을 두른 후에 샘플들을 자세히 살폈다.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것도 있었다. 봉인 마법이 걸려 있어서 자리를 이탈할 수는 없지만 그 자리에서 살을 움찔움찔 조금씩 움직일 순 있었다. 그녀는 하나씩 손을 대봤다. 각각 다른 키메라가 엉망으로 섞여있었다. 그야말로 랜덤으로 진흙 인형을 골라서 무턱대고 섞어 붙인 느낌이었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화타. 봉인 걸기 전에 혹시 이 녀석들끼리 섞인 적 있어?”

“글쎄. 다 따로따로 도착해서 그건 모르겠는데.”

나이 먹은 만큼 괴짜 딱지를 붙이고 있는 화타는 지팡이에 의지하며 일어섰다. 굳이 지팡이를 지고 다닐 필요가 없을 만큼 건강하고 허리도 굽지 않았는데 자신이 나이가 있음을 알리기 위해 일부러 불필요한 지팡이를 필수품처럼 갖고 다녔다. 그만큼 애용한다는 말일 뿐, 그의 지팡이 얘기는 여기서 이만 넘어가자. 잡담만 늘어나는 기분이다.

“해볼까?”

“해 봐.”

“흐응. 그러면 이거랑 이거.”

시아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살덩어리를 골랐다. 화타가 건 봉인을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려 풀었다. 그녀에게 있어 마법이란 어릴 적 장난감과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살덩어리를 휘감고 있는 봉인의 띠는 은근히 어려운 마법이다. 그런데 타인이 건 중상급 마법을 가벼운 터치만으로 해제하는 건 여간해선 할 수 없는 일이다.

“으음. 샤오메이. 아무거나 던져봐.”

이게 웬걸. 아직 살아있는 샘플인데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바로 옆에 거대한 살덩어리가 있는데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시아는 수 초 간 그들이 움직이길 기다리다가 화타의 원숭이를 불렀다.

“끼기-.”

연구실 천장의 철근 지지대 위에서 놀고 있던 화타의 원숭이는 시아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어딘가로 잽싸게 달려갔다. 그 아이가 연구실로 되돌아오는데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손에는 생고기가 들려있었다.

[휙]

[철퍽]

샤오메이가 던진 고기는 살덩어리에 맞자마자 흡수됐다. 그리고 그 살덩어리는 잠깐 움직이는 듯싶더니 다시 잠잠해졌다.

“호오-.”

시아는 살덩어리의 주변을 한 바퀴 돌아봤다. 원숭이가 던진 살코기는 흡수하면서 바로 옆에 있는 또 다른 살덩어리는 흡수하지 않는 이 별난 수수께끼의 물체에 호기심이 극도로 상승했다. 지금 그녀는 보호막 안에 있는 상태. 시험해 보고 싶었다. 자신이 보호막을 풀면 이 살덩어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휘릭-, 움찔.]

보호막을 풀자마자 괴물이 살을 쭉 뻗어서 시아를 흡수하려 했다. 닿기 직전에 다시 보호막을 치자 뻗어 나온 살은 보호막에 닿기 전에 움직임을 멈췄다. 가속도 때문에라도 보호막에 부딪힐 텐데 몇 밀리미터 남긴 시점에서 굳은 듯이 정지했다. 그리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화타. 어떻게 생각해?”

무표정에서 미소가 피어났다. 시아는 룬의 푸른색 봉인 띠로 살덩어리들을 다시 봉인했다.

“무모했지만 흥미로운 볼거리였어. 아무래도 조사를 다시 해봐야 할 것 같아.”

“약이 각각 다른 건 그 이유가 있는 법이라고 했던가? 그러면 신약 주기가 짧은 것도 당연히 그 이유가 있겠지. 그치?”

“그게 괴물들의 행동패턴과 관련이 있다면 이 다음 실험은 수월할 거야.”

시아의 도발적인 실험 덕분에 화타의 두뇌 회전이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시아도 조금 짐작 가는 것이 있었다. 그녀가 세운 가설이 과연 맞을 것인가는 화타의 실험 결과에 달렸다.

“독약 중에 세트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지. 그러면 신약의 개발 주기가 짧아. ‘세트’란 ‘시리즈.’ 규칙이 있는 법이거든.”

화타는 엉망이 된 실험용 테이블 위를 재빠르게 정리했다. 지금 당장 필요한 샘플 플라스크와 스포이트 몇 개만 몸 앞으로 끌어당기고 나머지 파편들은 책상 저쪽으로 쓸었다. 그리고 찬장으로 가서 독극물 표시가 있는 갈색 약병과 역시나 위험 표시가 있는 흰 병을 하나씩 꺼냈다. 약물 실험은 고도의 섬세함을 요구하기 때문에 마법은 일절 쓰지 않고 실험실용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일일이 작업했다. 스포이트로 지시약을 옮기는 중의 화타의 집중력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시아가 바로 옆에서 뚫어지게 쳐다봐도 전혀 몰랐다.

“크크크크.”

“어때?”

“아, 보스. 옆에 있었어? 크크크. 예상이 맞았어.”

평범한 인간들이 무언가의 성분을 분석할 때 원심분리기를 사용한다면 화타는 필터르 마법으로 깔끔하게 나눴다. 공중에서 구체로 떠있던 각 성분들은 각각 빈 시험관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크루세이더가 만든 약하고는 성격이 다른 거야?”

“아-까 눈치 챘잖아. 새삼스럽게 뭘 물어보는 거야?”

당신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하겠다. 길드 크루세이더가 만든 기프테 퐅 크로이추크는 단점을 보완하면서 개발되는 ‘한 가지’약이다. 하지만 길드 에덴이 만든 것은 ‘여러 가지 약’이다. 한 가지 약만 만들 경우에는 대량 생산하여 퍼트린다. 그러나 여러 가지 약을 비슷한 시점에 유포할 때는 그 수가 상당히 적다. 에덴의 독약은 ‘같은 세트의 약을 먹은 키메라끼리 한 몸으로 섞이게 하는’ 약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약을 취하지 않은 순수한 살덩어리는 흡수하고, 다른 약을 취한 살덩어리는 흡수하지 않는 것이다. 시리즈 별로, 세트의 형식으로 개발되는 약은 아주 기초적인 공식만 동일하고 90%에 해당하는 부분은 세트별로, 그리고 세트의 구성단위별로 제각각이다. 그래서 10%의 동일 지점을 찾지 못하면 세트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굉장히 힘들다. 아니, 찾아낸다 할지라도 각기 다른 약끼리 공식이 비슷할 수 있기 때문에 세트라는 사실을 눈치 채기 힘들다. 화타가 계속 실험에 실패한 이유도 기프테 폰 크로이추크를 조사하는 방법대로 에덴의 약을 분석했기 때문이다.

“보스. 오늘 파티를 시작하기 전에 분석이 다 끝날 거야. 해독제는 빠르면 내일 오전 중에 완성될 거고.”

“그렇게 빨리?”

“세트 형식의 약은 베이스만 캐내면 나머진 자동으로 공식이 나오는 아주아주 단순한 물질이거든.”

실마리를 잡은 화타는 완전히 열혈 모드가 됐다. 그의 기분이 하이 텐션이 되자 연구진이 슬금슬금 안으로 들어왔다.

“내일 원정 나가기 전에 약이 나오면 좋겠지만……. 같은 오전이라도 난 새벽에 출발할 거라서 말이지.”

“원정?”

“얼음의 대지에.”

“사서 고생이군.”

화타는 놀라지 않았다. 자신의 보스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이지 얼음의 대지로 간다 해도 이상할 거 없다는 식이었다. 이 정도 돌발행동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이기 때문에 태연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가는 이유도 묻지 않고 위험할까 걱정하지도 않았다. 그의 머리가 말하는 또 다른 분명한 사실이 있었다.

“캡틴 류가 기겁했겠어.”

민의 반응도 당연히 정확하게 집어냈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그 고집 꺾었으니까.”

“아니지, 보스. 캡틴 류가 보스의 고집을 못 꺾은 거지.”

화타의 정확한 지적에 시아는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화타의 원숭이가 그녀의 오른쪽에 서서 그녀를 따라하고 있었다. 그녀가 원숭이를 들어 안았는데 꼬옥 안기도 전에 화타의 왼쪽 어깨로 도망쳤다.

“너무해.”

“이 녀석은 암컷이라고. 당연히 여자인 보스보다 남자인 날 따르는 거야.”

“그래봤자 할아버지잖아.”

시아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화타를 쳐다봤다.

“크흐흐. 말을 잘못했군. 샤오메이는 내가 자기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있거든. 잘 따를 수밖에 없지.”

원숭이는 화타가 내민 오른손 위에 자신의 양손을 얹었다. 안마하듯이 조물조물 주물거리다가 제 두 손을 위로 들더니 화타의 머리카락을 뒤적였다. 화타는 원숭이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머리에 이 있어?”

“실례야, 보스. 샤오메이는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거라고. 그리고 이거 은근히 시원해.”

화타는 구석구석 살피느라 정신없는 원숭이를 곁눈질로 보며 웃었다. 그리고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로 원숭이의 등을 슬슬 긁었다. 원숭이는 여전히 머리털 정리에 콕 박혀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화타에게는 아버지에게 효도하는 딸로 보였다. 친딸을 일찍 잃은 화타에게 원숭이는 진짜 딸처럼 사랑스런 아이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샤오메이. 딸의 이름이 샤오메이였다.

“아, 보스. 원정 나가면 해독제는 누구한테 보고해?”

“네 직속상관은 보고 대상에서 제외인 거냐?”

“아, 우리 캡틴이 있었지.”

“순간적으로 주먹이 나갈 번했어. …….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내가 4천왕 전원에게 단단히 일러뒀으니까 계속 명령이 내려올 거야. 그대로 따르면 돼. 뭐, 밀리엄은 나랑 같이 나갈 거니까 여기서 열외지만.”

“호오-.”

시아는 연구진을 도와 바닥에 떨어진 반쪽짜리 비커를 주워들었다가 화타에게 뺏겼다. 화타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나가라고 손짓했다. 그는 보스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건 상관없지만 잡무까지 하는 건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다.

“여기에 너무 오래 있는 거 아니야? 캡틴 류가 찾겠어.”

“미리 말하고 왔어. 제한 시간도 적당하게 걸었다고.”

화타는 빙그레 웃더니만 의자에 앉으려는 시아를 확 잡아끌었다. 발로 의자를 저만치 밀어낸 다음에 시아의 등을 밀며 출입구로 향했다.

“놀고 싶어-.”

“캡틴 류가 놀아줄 거야.”

“퍽이나.”

시아는 이렇게 연구실에서 쫓겨났다. 어차피 화타를 진정시키러 간 것이었으니 이쯤 되서 나와도 꽤 오랫동안 연구실에 있는 셈이었다. 한 시간을 다 채우지 못했어도 아쉬울 게 없었다. 그녀는 시원하게 기지개를 켠 다음에 자신의 집무실로 텔레포트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