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Mutation-Kimera(리메이크)

Mutation - Kimera : 제 6 각성 ⑤

★은하수★ 2010. 3. 23. 17:35

시아와 지원은 재밌는 구경거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소리가 난 방향으로 달려갔다. 마침 지원의 압장이 소멸해서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다. 지원은 지상을 달리고, 시아는 발끝이 닿을 듯 말 듯 날렵하게 주변 건조물을 지지대 삼아 통통 튀어 다녔다. 그러다가 싸움터가 보일 즈음 시아가 지원의 앞을 가로 막았다. 지원도 알 수 있었다, 재윤의 트랩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아직 저쪽은 트랩이 없군. 가자.”

구축이 덜 된 빈틈을 노리고 전투 반경 내로 들어갔다. 대기가 두 소드의 마력으로 짙게 물들었지만 세나와 멜로즈의 위치를 파악할 수는 있었다. 실전에 오래 몸담고 있다 보니 마력 추적 능력이 첨예하게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무서워서 울고 있을 줄 알았는데 잘만 놀고 있네.”

시아는 여자 아이들을 발견하자마자 멜로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멜로즈는 두 팔로 시아의 목을 감싸 안으며 폴짝 뛰듯이 시아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까르르 웃고 볼을 비비는 등 응석을 부렸다. 시아는 멜로즈의 엉덩이를 톡톡 두드린 다음에 세나에게 안겨줬다.

“보스, 이겼어?”

“응.”

“쉽게?”

“응.”

멜로즈는 다시 한 번 까르르하고 웃었다. 상공에서 휴가 포일러와 싸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긴장감이란 일절 없었다. 멜로즈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세나 역시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주변의 움직임을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재윤이 잔챙이를 전부 제거했지만 혹시 또 갑자기 튀어나올지 모르므로 경계심도 늦추지 않았다.

[쿠광!]

불꽃이 가벼운 눈발처럼 하늘거리며 내렸다. 실체를 현성하는 마법끼리 충돌했으면 수많은 파편 때문에 지상이 어지러워졌을 것이다. 지금도 지상 상태가 깔끔하다고 못하지만 이 이상 엉망이 되는 건 반갑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 싸우는 중이라 얼마나 더 어지럽혀질지 미지수였다. 재윤의 트랩 마법이 발동해야 온갖 파괴·파손이 멈출 것이다. 어차피 이 지역을 쥐락펴락하는 길드-가디안스-가 자신들의 영역이 얼마큼 난장판이 되든지 신경 쓰지 않는 주의라, 싸움이 시작된 이상 ‘무사’를 기원하는 일은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휴가 암만 고문 자리에 있어도 현장에 쉴 새 없이 나간 덕분에 무리 없이 옛날 실력 나오네. 2년 동안 죽은 듯이 지내서 몸이 많이 굳었다더니만.”

시아는 여유만만하게 관전했다. 휴와 같은 표정으로 길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같은 소드끼리의 싸움인데 고문님께서 훨씬 여유로워 보이십니다.”

지원은 자신이 ‘신 휴는 전대 4천왕이었던 만큼 강하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싸움의 형세를 왜곡하며 보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오만상을 찌푸리며 헛손질하는 포일러를 보자니, 휴가 포일러를 테스트하는 기분이 들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휴가 포일러의 수준에 맞춰서 전투에 임하는 것 같았다.

“원래 포일러 미마이드는 휴의 적수가 못 돼. 2년 전에도 밀렸는데 지금이라고 다를까.”

“각성 등급도 같은데 차이가 나는 건 개인 역량의 차이입니까?”

“그것도 있겠지만 우선은 내면의 차이가 크지.”

가디안스의 보스는 길드원들을 지키기 위해 큼직한 보호막을 형성했다. 재윤이 트랩 마법 준비를 끝내고 점차 마력 수위를 높였기 때문이다.

휴가 포일러를 적당히 상대하면서 시간을 끄는 것도 다 트랩 마법을 쓰기 위해서였다. 포일러가 후퇴할 생각을 못하고 계속 이곳에 있도록 발을 묶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적당히 봐주면서 포일러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플레이를 택한 것이다. 휴가 단번에 결판을 내도 되겠지만, 휴와 재윤의 목적은 포일러의 생포였다. 소드의 마법을 쓰면 포일러에게 저항력이 있기 때문에 효과가 많이 줄어들어 버린다. 그래서 재윤이 부지런히 트랩 설치에 전념했다.

정령계 마법과 천사계 마법을 융합한 재윤의 독창적인 마법. 아직 이름은 없지만 영혼 속박 마법에 속한다. 트랩 안에 있는 모든 영혼을 속박할 수 있는 정신 마법이라 금기술로 폐기될 수 있지만, 아직 이 마법의 존재를 아는 이가 적어서 얼마든지 사용 가능했다. 육체에 상처 하나 입히지 않으면서 영혼은 무한히 공격할 수 있을 뿐더러, 육체 안에 영혼을 가둘 수도 있다. 원래 자기 몸이 졸지에 영혼을 가두는 단지가 되는 것이다. 다수의 적을 한꺼번에 생포하기에도 적합하다 할 수 있다.

“포일러 미마이드가 소드만 아니면 귀찮은 일 벌일 필요가 없는데. 하-.”

버섯 포자가 퍼지는 것처럼 지면에서 반짝이는 녹색 빛가루가 솟아올랐다. 공기를 타고 오르고 오르다가 두 소드가 있는 곳까지 다다랐다. 포일러가 수상한 낌새에 신경만 곤두세울 때, 휴는 미리 보호막을 형성하고 자리를 피했다. 포일러가 있는 곳이 트랩이 정중앙이라, 그와 같이 있으면 보호막이 있어도 마법에 걸릴 가능성이 있었다.

“무슨 수작이냐?”

“바톤 터치라고 할 수 있지.”

포일러는 휴가 있어야할 자리에 재윤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챘다. 녹색 빛가루가 조명 역할을 해서 새하얀 날개가 더욱 윤이 나 보였다. 소드는 마족이라 본능적으로 천사에 대해 거부감이 강했다. 그래서 반짝이는 고귀한 날개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어졌다. 휴가 없어진 것은 금세 뒷전이 됐다.

라파엘 계열의 주천사는 정신계 정족이라면 능숙하게 다루는 고대 언어로 주문을 외웠다. 포일러도 일단 마족 중 최상위 계급인 소드라서 지식의 양이 방대하지만, 고대 언어 쪽에는 문외한이었다. 그래서 재윤이 주문을 외우는 것 같긴 한데 어떤 마법인지 알 길이 없었다. 뒤늦게 보호막을 형성했으나 빛가루에 충분히 노출됐으니 소용없는 짓이었다. 재윤은 가련한 무지의 생명체를 위해 짧게 안식의 기도를 했다. 물론, 주문을 모두 외운 후 포일러가 눈치 못 채도록 돼 언어를 계속 사용했다.

“Auf Wiedersehen(아우피더제엔 : 작별인사).”

아직 이름 없는 마법. 시동어는 마법명이 아니라 작별 인사였다.

포일러의 몸에 닿은 빛가루가 일제히 가늘고 긴 침으로 변했다. 수 백 개의 녹색 침이 그에게 징그럽게 박혀 들었다. 통과한 것도 있고 심장 까지 다다른 것도 있었다. 육체에서 피가 나는 부분이라면 휴에게 당한 부분이 고작이었다. 영혼을 타깃으로 하는 이 마법은 포일러가 고통 때문에 비명을 지를 자유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기다란 녹색 침은 점점 육체 속으로 스며들면서 영혼을 가둘 공간을 형성했다. 포일러는 예상하지 못한 공격을 받고 쇼크로 정신을 잃은 사이에 그렇게 자신의 육체에 봉인 당했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의 봉인을 푸는 수고가 필요하지만, 바보 한 놈 잡아들이는데 나쁘지 않은 마법이야.”

원래 정신계 마법 중에 상대의 몸은 단지 삼아 영혼을 봉인하는 마법이 있다. 그런데 시아의 생각에 재윤의 마버이 기존 마법보다 포획 능력 및 가능성이 몇 배 더 높았다. 트랩에 걸린 순간 성공률이 50%로 오르고, 빛에 닿으면 100% 속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전자는 자기가 원하는 만큼 상대를 더 구속할 수도 풀어줄 수도 있다. 그 어떤 마법보다 강도 조절이 수월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신 수진을 영입하면서 겨우 11명을 채웠던 츠뵐프 리터가 다시 10명이 되겠군요.”

휴가 시아의 앞에 얌전히 착지했다.

“약을 사용해서 잔챙이만 수두룩하게 늘리니까 간부에 채울 인재가 없는 거야. 솔직히 포일러 미마이드도 츠뵐프 리터에 이름 올릴 때까지 사마엘 녀석이 깨나 고심했을걸? 뭐, 그래서 가장 마지막 자리였는지도 모르지.”

“우리 쪽이었으면 기껏해야 특별 부대 대원일 겁니다.”

“저 성질머리를 누가 맡아? 무소속 확정이야.”

시아는 단칼에 포일러를 판단했다. 휴는 후후후 웃으며 애매한 동의를 했다. 그래도 나름 포일러의 능력치를 존중하는 그였다.

“너희들 오늘 귀한 구경한 거야. 원래 재윤은 플러스 상태에선 안 싸우거든.”

“라파엘 계열은 전투 천사가 아니니까. 맞지?”

“그래.”

멜로즈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좋아했다. 그녀가 재윤과 자주 가까이 있지만, 그녀조차 천사의 모습을 보는 경우가 드물었다. 오리지널이 이미 훌륭한 전투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 전투 능력이 그보다 떨어지는 플러스로 굳이 각성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강력한 정신계 마법을 사용할 때나 잠깐 각성할 뿐이다.

“시시하게 끝났는데 주변 꼴은 가관이구만.”

“원래 생포하는 게 더 힘들잖습니까.”

역시 신 휴. 시아의 말을 하나하나 잘 받아쳤다.

“보스. 어째서 저자를 생포하는 겁니까?”

지원은 아직 가디안스와 크루세이더의 눈치 줄다리기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쩔 땐 과감하게 크루세이더의 지부를 박살내는데, 또 어쩔 땐 일부러 숨을 끊지 않았다. 가디안스만 강약 조절을 하는 게 아니었다. 크루세이더도 주변의 움직임에 맞춰 가디안스를 자극했다. 여타 길드처럼 ‘무작정’ 돌격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경제적. 효율성과는 다른 분위기라서 어떤 수식어를 붙여야 할지 곤란하다. 그나마 어울리는 말이 이것일지도 모른다.

“표면적으로는 가루다 왕족을 몰살한 책임을 물으려고. 그건 우리가 아닌 가루다 일족이 해야 할 일이잖아. 대신 잡아준 거야. 그러니 죽일 수 없어.”

“그러면 이면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흐음-. 그건 이 멀대랑 저 멀대도 몰라.”

시아는 악의가 없다는 듯이 화사하게 웃으면서 휴와 재윤을 차례대로 손가락으로 찍어 가리켰다. 190cm 이상의 호리호리한 미남들(인간의 시선에서)은 악의 없이 ‘멀대’로 불렸지만, 기분이 조금이라도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면 고문님과 미마이드의 내면의 차이란 마음가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봐, 이봐. 나이에 비해 너무 질문을 달고 사는 거 아니야?”

“궁금한 걸 어쩝니까?”

대답 못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휴가 바로 듣는데서 말하자니 민망했다. 아니, 시아 자신이 민망하기보다 휴가 민망해 할 것을 염려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인정하는 사실이거늘 휴 본인은 계속 거부하는 것이라 가급적 휴가 없는 곳에서 회자됐다.

“휴가 가디안스에 들어온 이유라서 말이지. 음……. 네 캡틴……은 말고, 스승한테 물어봐. 잘 설명해 줄 거야.”

시아는 잠깐 휴의 눈치를 보다가 지원의 어깨에 손을 턱 얹으며 대답을 미뤘다. 이렇다 해도, 휴가 무엇이 얘기 대상인지 바로 알아채지 않겠는가. 휴는 지원에게 닿아있는 시아의 손을 위로 들어올렸다.

“이상한 거 가르치지 마십쇼.”

“난 가르치지 않았어. 디레스가 가르칠 거야.”

“이런 식으로 발뺌하시는 겁니까?”

“그러면 휴가 부성애가 너무 대단해서 포일러 미마이드보다 강하다고 말하리?”

“어머, 정말인가요?”

세나는 농담을 진담으로 믿어버렸다. 시아는 아차 하는 마음에 어색하게 웃었다. 너무 조용하게 있어서 여기 있다는 것을 잠시 잊고 생각 없이 농담을 내뱉은 것이다. 세나의 청각이 닿는 거리는 ‘농담 금지 구역’임을 재확인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후회하는 것도 잠시. 시아의 머리에 장난이 번뜩 떠올랐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그 무엇보다 강하잖아. 결혼도 안 한 휴가 길드에 들어와서 부성애에 눈을 뜬 건 상당히 특이한 일이지만, 덕분에 몇 배로 강해졌거든. 자기밖에 모르는 포일러 미마이드가 아빠 정신으로 똘똘 뭉친 휴를읍…….”

“보-스-!”

휴는 연장자의 여유로써 참으려고 했지만 터무니없는 낯간지러운 말을 듣자니 불편했다. 시아의 등 뒤에서 두 손으로 시아의 입을 꽉 막았다. 웃는 낯으로 감정을 숨겼지만 어금니 꽉 깨문 채 말하면 다 소용없는 짓이다. 시아는 분노 섞인 목소리를 듣고 더욱 재밌어 했다.

“뭐 어때. 숨어 지내기 전까지 ‘보스의 아버지’라고 확실하게 불렸잖아.”

오리지널로 돌아간 재윤이 포일러의 축 쳐진 육체를 들고 나타났다. 불쌍하게도 그의 마법에 걸린 제 3 존재들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마법의 잔재를 확실하게 뒤처리한 후였다.

“보스의 말장난이 아니라 정말 부성애가 있으셨군요.”

“미노타우르스 청년. 이 사람들 말을 곧이 듣지 말라고.”

“에-이-. 휴는 부끄럼쟁이.”

멜로즈까지 가세했으니 가디안스의 기존 멤버가 모조리 휴를 매장하는 꼴이 됐다. 시아는 그렇게나 즐거운지 휴에게 붙잡힌 채 끝없이 키득 거렸다. 휴는 아래로 흘겨보다가 시아를 풀어주고, 아주 대담하게 그녀의 볼을 주욱 잡아당겼다.

“보스의 기쁨조는 류 군 하나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에- 하아 오아으 우-.”

누가 들어도 ‘하나보다는 둘’이었다. 휴는 역시 통칭 ‘보스의 아버지’답게 헤드락으로 적당히 응징했다. 아직 신참 대열에 있는 지원과 세나로서는 이 광경이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감히 보스에게 과격한 레슬링 장난이라니. 헛 걸 보는가 싶었다.

“아아아아-. 재윤. 그거 지하 수감실에 던져놓고, 민이 데려와. 아아-.”

“류 군에게 의지하십니까?”

“보스한테 헤드락 거는 심보보다, 악, 민한테 구해달라고 하는 쪽- 이, 덜 치사해.”

시아는 눈앞에서 신참들이 멍 때리고 있는데도 어린애 같은 면모를 당당하게 보였다. 그녀가 가족들과 연을 끊기 전에는 집에서 언제나 이런 생활을 했다. 아지트에서는 보스로서의 위엄 때문에 가급적 민이나 휴 앞에서만 어리광을 부렸다. 그래도 다른 길드원들이 보스의 아이다운 구석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시아가 일부러 필사적으로 감춘 적도 없었다. 그러니 지금은, 신참에게만 보스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가장 파격적인 모습이 것이다. 시아든 휴든, 구태여 지금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 적당히 해. 보스. 가루다 일족에 넘기기 전에 직접 고문하실 겁니까?”

재윤은 왼손만으로 밀가루 부대처럼 포일러의 허리를 부둥켜안아 들고 자신의 허리에 밀착시켰다. 소드 상태에서 영혼이 봉인 당했기 때문에 묘인족으로 돌아가지 못한 포일러다. 소드는 절대 가볍지 않은 종족이거늘 그것을 너무 쉽게 한 팔로 들었다. 생긴 것과 다르게 힘이 상당했다. 아무리 상급 정령 중에서 스프라이트가 강한 쪽에 속한다지만 그건 기술과 마력이다. 이 정도 괴력이면 클래이에 필적했다.

“대, 대단하다.”

“그러게 말입니다.”

휴는 슬그머니 팔을 풀었다.

“으흠. 흠. 그 녀석한테 물어볼 중요한 게 몇 가지 있거든. 아직은 가루다 일족에게 못 넘겨. 괜찮지? 멜로즈.”

“보스가 대신 죽여도 상관없는걸. 우리가 복수에 목숨 거는 종족이 아니잖아.”

꼬마의 입에서 험한 단어가 술술 나왔다. 표면 나이 7세, 살아온 햇수 32년의 무서운 괴리였다.

“일족의 공주님이 괜찮다니까 사양 않고 괴롭혀야지. 아까 오웰 슈나이더의 반응을 보면 내 생각이 막는 것 같은데, 역시 확실하게 캐내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소드라서 웬만한 고문은 통하지 않을 겁니다.”

“걱정 마. 치사한 방법을 쓰면 뭐든 풀리는 법이야.”

진정 속내를 드러내는 듯 감추는 듯, 악마만 낼 수 있는 간사한 눈웃음이었다. 그러나 입 꼬리는 옆으로 늘어지지도 위로 올라가지도 않았다. 그 부조화 때문에 더더욱 그녀의 현재 심리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러면 마력제어기를 달고 마법을 풀어놓겠습니다.”

“소드한테 통할만한 제어기가 있나?”

“구 화타면 하루 안에 만들어 낼 겁니다.”

“흐응-. 그냥 그대로 넣어놔. 내가 고문할 때 마법을 풀면 되잖아. 이것저것 바쁜 화타한테 일 늘려주지 말자고.”

“Ja, für Sie meine Boß."

재윤이 먼저 아지트로 돌아갔다. 지상의 그림자를 타고 미끄러지듯이 고속으로 이동하는 짜이헨 인 샤튼(Zeichen in Schatten). 언제 봐도 경이로운 이동술이었다. 이것은 스프라이트를 스프라이트답게 보여주는 기술로, 하프 스프라이트는 본래 속도의 80%까지 밖에 흉내 내지 못한다. 그래도 이 기술이, 재윤이 절반은 스프라이트라는 증거이기도 했다.

“간만의 휴식은 이렇게 끝나는 건가?”

멀쩡하지 않은 것들을 대충 훑어봤다. 건물 하나가 통째로 날아간 건 없지만 자잘하게 싸움의 흔적이 보였다. 다수 간의 전투에 비해 규모가 작다 해도 소드끼리의 격전이라 파급 효과를 무시할 수 없었다.

“나쁘지 않았는걸요. 오히려 군경 쪽에서 ‘또’ 시끄럽게 시비 걸까봐 걱정되는 데요?”

“그런 건 평소처럼 ‘또’ 깨끗하게 무시하면 돼.”

시아는 세나의 가벼운 걱정을 더 가볍게 날려버렸다. 길드가 일정 지역에 손대고 있다지만, 어디까지나 ‘구역관리’를 하는 것이지 ‘자원봉사’까지 하는 건 아니다. 길드의 싸움에 휘말리는 건 팔자니까 알아서 대처하는 것밖에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 그러니, 군경의 눈에 길드가 아니꼽게 보이고, 서로 작은 일로도 눈을 부라리는 것이다.

“보스. 끝까지 못 먹은 만큼 아이스크림 사줘.”

멜로즈가 확실하게 분위기를 띄웠다. 원래 꿀꿀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본디 휴식차 나온 외출이었다는 것을 재인식 시키면서, 그에 어울리는 마무리를 지을 수 있게 유도했다.

“그거 괜찮네.”

“재윤이 것도 아이스크림 사줘.”

“응?”

“잠깐이긴 해도 여기 나왔잖아. 그러니까 사줘야 돼.”

“으음. 이해는 안 되는데 멜로즈가 그러라면야 안 될 것도 없지.”

악마의 양 손목에 넓고 두꺼운 수갑처럼 생긴 압슬이 채워졌다. 압슬이 형성되는 것과 인간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그리고 진원의 압장이 유지된 시간에 비해 훨씬 짧은 시간 안에 압슬이 사라졌다. 수진을 상대하고 플러스로 오래 유지했으면서, 그것이 그녀의 힘을 얼마 사용하지 않은 것이라는 뜻이었다.

민에게 등 떠밀린 외출은 달고 차가운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하고 아지트로 돌아갔다. 세나는 중간에 레스를 만나 새 임무를 배정 받았고, 지원도 텔레파시로 솔아의 호출을 받았다. 특별 부대가 모두 바쁘고 무소속도 여기저기 지원 다니느라 아지트 안은 한산하다 못해 심시해 보일만큼 길드원이 없었다.

“보스-. 일 열심히 해.”

“그래.”

눈치 빠른 멜로즈는 시아를 햐해 오는 민을 발견하자마자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휴는 자신의 집무실이 같은 방향이기 때문에 그녀와 동행했다.

“난 정-말로 안식복이 없나봐.”

민은 시아의 가벼운 한탄을 부드러운 미소로 위로했다. 장난에는 장난으로 응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니 말이다.

“미스터 김에게 대략적인 이야기 들었어요. 수고하셨어요.”

시아의 집무실로 들어가는 길에 솔리와 밀리엄이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아, 솔리가 일방적으로 밀리엄을 구박하는 소리였다.

“솔리를 가장 잘 안다는 녀석이 가장 학습능력이 없어.”

시아는 그냥 흘리는 말이었는데 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랑싸움이 아니라 임무 때문에 저러는 거예요. 미스터 브롤이 완전히 판을 깼다나봐요.”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