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1. 이것은 가정교사히트맨리본 초기 스토리에 대한 재해석 페러렐 팬소설입니다. 링 쟁탈전 전까지, 즉 무크로 편까지 되겠습니다.
2. 아마노 아키라 작가님이 데뷔 당시 그린 가정교사히트맨리본 초기 단편의 소재를 일부 가져왔습니다. 그런고로 '츠나요시 군의 누나'가 등장합니다.
3. 제목 L'arancione 란, '오렌지 색'을 뜻하는 단어로, 별 의미 없습니다.
4. 커플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본인은 개그를 격렬하게 싸랑합니다.
5. 팬소설에는 너무나 실력이 미약한 저인지라 졸작이 싫다 하신 분은 ‘뒤로’퍼튼이나 ‘백스페이스’를 살포시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6. 사이트에서 장편 판타지 두 작품을 동시 연재하는 관계로 연재 속도가 늦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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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츠나요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케시, 하야토와 함께 등교를 하고 있었다. 2-3일 전만 해도 등굣길이나 하굣길이나 혼자였다. 그래서 길동무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심심하지 않다. 혼자가 아니니까 쓸쓸하지 않다. 이런 나약한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저 눈에 띄게 변한 일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자신이 신기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같이 어울리고 있는 그들이, 마치 예전부터 오래 알아온 사이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도 기분이 묘했다.
“사- 와- 다-!”
[두두두두두두두]
마치 들소가 죽을 각오로 달려드는 것 같은 굉음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중학교에 입학한 이래로 벌써 40번 하고도 6번째였다.
[휙]
츠나요시는 몸을 반쯤 틀어서 맹렬한 질주를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그를 노린 것이기 때문에 타케시와 하야토는 피할 것도 없었다. 다만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땅이 건조한 탓에 흙먼지가 과하게 날렸다.
“이 자식-. 이게 무슨 짓이야?”
하야토가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쳤다. 그러나 상대는 가속도 때문에 이제 겨우 멈춰선 터라 하야토의 말이 들릴 리가 없었다. 게다가 관심사는 오로지 츠나요시였기 때문에 멈추자마자 다시 츠나요시에게 덥썩 달라붙었다.
“사와다, 복싱부에 들어와라.”
“싫습니다.”
0.1초의 여유도 없는 똑부러진 대답이었다. 그러나 츠나요시와 마주칠 때마다 복싱부 입부를 권하는 복싱부 주장, 사사가와 료헤이는 끝없이 솟아 나오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너 같은 인재를 반드시 우리 복싱부에 넣고 싶다. 사나이라면 복싱이지, 암.”
앞문장과 뒷문장이 서로 관계있는 듯 없는 듯 묘한 틈이 있었다. 하지만 돌려 말할 줄 모르는 단도직입적인 성격이라서, 뭘 말하고 싶은 것인지 요지는 확실했다. 게다가 만날 때마다 같은 주제로 거의 똑같은 문장을 사용하다보니, 그가 앞으로 어떤 말을 꺼낼 지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제가 난생 처음 죽도를 잡고 검도 시합에서 이겼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연이라니까요. 복싱은 절대 무리에요.”
료헤이가 할 말을 츠나요시가 먼저 해버렸다. 츠나요시는 료헤이가 다음 말을 생각하는 틈에 그를 제치고 학교로 향했다. 그러나 사사가와 료헤이가 누구던가. 365일 ‘극한’을 부르짖으며 생각과 말보다 행동과 몸이 먼저 나가는 남자가 아니던가. 당연히 츠나요시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곧바로 그를 뒤따라갔다. 그것도 하야토와 타케시를 무리하게 제치고 츠나요시에게 바싹 붙었다.
“검도든 복싱이든 한 번에 움직임을 알아보는 눈이 있다면 뭐든 극한으로 가능하다!”
“그러니까 그 때는 우연이었다니까요.”
츠나요시는 같은 말을 몇 십번 반복하다보니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형님이 싫어하시잖아.”
하야토는 료헤이의 팔을 붙잡고 뒤로 당겨냈다. 그러나 복싱으로 다져진 굵은 팔은 악력이 평범한 손에 휘둘리지 않았고, 매일 쉬지 않는 로드 런을 다져진 굵은 다리는 제 갈 길을 충실하게 갔다. 눈앞에 있는 적을 떨쳐내지도 못하고 무시까지 당하다니, 하야토의 유소년 히트맨으로서의 자존심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하하하. 고쿠데라. 표정이 멋있는데?”
“닥쳐, 야구 바보.”
“하하하하. 화내봤자 소용 없어. 사사가와 선배는 나미모리 중학교에서 몸이 제일 다부지다고.”
타케시 역시 운동부 소속이기 때문에 학년이 달라도 료헤이에 대해 잘 알았다. 그리고 우연히 서로 부딪힌 적이 있는데, 당시 몸으로 느낀 감촉이 확실히 달랐다. 무기 없이 몸만으로 무장했다고 비유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근육에 피부까지 단단하게 단련돼 있었다.
“오빠. 아침 연습 때문에 일찍 나간 거 아니었어?”
료헤이가 세상에서 제일 아끼는 여동생 쿄코가 오른쪽 골목에서 나타났다. 그쪽이 사사가와 가 방향이었다. 츠나요시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입부 권유 때문에 일부러 저희 집 쪽으로 오신 거였어요?”
“물론이다. 사와다, 극한으로 환영한다.”
“전 안 들어간다구요.”
똑같은 패턴에 지쳤을 법 하건만, 츠나요시는 꼬박꼬박 대응했다. 역시나 똑같은 방식으로.
“오빠도 참. 강요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
쿄코가 말린 덕분에 료헤이가 겨우 츠나요시에게서 떨어졌다. 하야토는 료헤이가 다시 들러붙을까봐 재빨리 츠나요시의 옆자리를 사수했다. 아직은 오른팔로서의 경호보다, 떼쟁이 어린 아이의 고집처럼 보였다. 이에 비해 타케시는 마이페이스답게 싱글벙글 웃으면서 모두를 뒤따라갔다. 시끌벅적 즐거울 따름이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조용히 지나가면 좋으련만 오늘의 사건은 방과 후에 터졌다. 그것도, 사건을 터트리는 데 있어 아주 노련한 어느 인물 때문에 조작적으로 일어난 사건이었다. 츠나요시가 황당함을 넘어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리-본-! 어디 숨었어?”
츠나요시는 학교 곳곳을 뒤지고 쑤셨다. 그러나 리본이 있을 법한 곳에서 그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일단 불씨를 당겨 놓고, 그 불씨가 걷잡을 수 없는 산불로 커질 때까지 몸을 피한 후, 멀리서 산불을 구경할 심산이 분명했다. 츠나요시는 자신의 의지를 싸그리 무시한 리본을 용서할 수 없었다.
교사와 체육관 사이에서 화단과 석고상 등을 꼼꼼하게 살펴봤다. 그 때 마침, 교사에서 누군가 츠나요시를 불렀다. 츠나요시는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돌렸다. 얼굴 모르는 남학생 한 명이 1층 복도 창문을 넘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나미모리 중학교에는 교복에 학년을 구분하는 표시가 없으니, 1학년인 츠나요시로서는 자신을 부르고서 창문을 넘으면서까지 급히 자신에게 달려오는 이 학생이 과연 몇 학년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동급생 같았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너 사사가와 선배랑 시합한다면서. 다들 부실에서 기다리고 있어. 얼른 와.”
2학년인 료헤이를 선배라고 부르니, 역시 츠나요시와 같은 1학년이었다. 그러나 학년을 맞춘 기쁨도 잠시, 츠나요시는 깊고 깊게 멍때렸다. 동급생의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열심히 부인한 것이 사실이 되고 현실이 되자, 걱정이 가속도를 내며 앞으로 쭉쭉 뻗었다. 전심전력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왜 하필 료헤이의 눈에 들어서, 왜 하필 전교생의 눈에 튀는 행동을 해서, 일이 이렇게 됐나 모르겠다. 그저 앞 일을 생각하지 않고 지금만 급급하게 해결했던 자신을 탓했다.
“시련에서 눈을 돌리고 정정당당한 승부에서 발을 빼는 것은 복서가 아니야.”
낯 익-은 목소리 덕분에 츠나요시가 정신을 차렸다. 눈살을 찌푸리며 목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돌아보는데, 순간 다시 경직하고 말았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잘 입고 있던 양복과 중절모는 어디 가고, 복서용 쇼트 하의에 코끼리 모자가 웬 말이더냐. 글러브까지 제대로 착용하고 있었다. 모자를 벗었거나 두건을 썼다면 코믹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츠나요시가 리본에게 태클 걸 부분은 90%가 모자였다.
“아, 사와다. 인사해라. 파오파오 사범이시다. 내게 복싱의 진리를 가르쳐주신 분이다.”
게다가 료헤이가 ‘극한으로’ 들 떠 있었다. 자신보다 한참 작은 꼬마를 사범으로 인식할 수 있는 사고방식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츠나요시는 료헤이나 리본에게 휘둘리고 있을 수 없었다.
“전 이만 가볼게요.”
“도망치는 거냐?”
“그래, 사와다. 극한으로 정정당당하게 승부다.”
어느 부분에 태클을 걸어야 할지 난감했다. 파오파오 사범임을 주장하는 기본? 입부 권유에서 승부로 시선을 돌린 료헤이? 어느 쪽도 태클을 걸 의욕이 나지 않았다. 조용히 무시하고 원만하게 일을 넘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냥 지나갔다간 리본의 강하고 깔끔한 발차기가 날아들 분위기였다. 그저 한숨만 나왔다.
“형님. 여기 계셨군요.”
“집에 가자, 츠나.”
좋은 타이밍에 구세주들이 나타났다. 타케시는 츠나요시의 가방을 챙겨오기까지 했다.
“으아아앗! 극한으로 방해다. 사와다는 지금 나와 중요한 얘기 중이다.”
“쓸데없이 형님께 추근덕 거리지 마.”
“쓸데없지 않다. 관계없는 녀석은 빠져라, 문어 머리.”
“이 자식. 말이면 다인 줄 알아?”
첫 인상 때부터 상성이 안 맞다는 건 알았지만, 가면 갈수록 불협화음이 되는 것 같았다. 타케시는 웃으면서 그들을 말렸지만, 어디까지나 ‘적당히’였다. 둘 사이에 ‘끼어드는’ 일은 하지 않았다. 마치 제 3자, 아니 철저하게 제 3자 자리를 지켰다.
“이 녀석하고는 이야기가 안 된다. 사와다. 이번 승부 한 판으로 입부를 결정하자.”
료헤이의 대화 상대가 다시 츠나요시로 돌아왔다. 그의 눈은 제대로 이글거렸다. 인내심이 한계까지 다다른 것이다.
“네가 이기면 더 이상 입부를 권하지 않겠다.”
“형님. 이놈의 장단에 맞추실 필요 없습니다.”
츠나요시의 생각에 료헤이의 제안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사사가와 료헤이’를 상대로 복싱에서 이기는 건, 중학생으로서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죽을 각오로 덤벼들어도, 이미 수준급으로 차오른 동체시력과 반사 신경 그리고 강력한 펀치를 당해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절대 무리- 라고 약한 소릴 하면 안 되지만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츠나. 한 번 해봐.”
“응?”
“넌 강하잖아.”
왠지 모르게 타케시가 츠나요시의 등을 떠밀었다. 타케시는 지금 뭘 보고 있을까? 츠나요시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의아하다거나 이상한 건 아니었다. 단지, 그래 단지, 진심으로 흥미를 가진 그의 눈이 제법 매력적이었다.
“형님. 먼저 귀가하십쇼. 이 모자란 녀석들은 제가…….”
“아니, 기다려.”
츠나요시가 료헤이에게로 한 발짝 다가갔다. 그리고 리본을 한 번 무섭게 째려본 다음에, 재빠르게 웃는 얼굴로 바꿔 료헤이와 마주봤다. 그러나 웃는 중에도 눈빛은 날카로웠다. 검에 비유하자면 ‘잘 다듬어진 날’에 가까웠다. 마피아계의 흐름에 끼게 될 자로서 아직 부족하긴 하나, 그래도 봐줄 만한 눈이었다.
“약속 지켜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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