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1. 히바하루 NL커플링이 기본입니다
2. 팬소설에는 너무나 실력이 미약한 저인지라 졸작이 싫다 하신 분은 ‘뒤로’퍼튼이나 ‘백스페이스’를 살포시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3. 제목의 Il giallo 란 이탈리아 어로 '노란색'을 뜻합니다. 노란색은 외로움이나 강한 자기주장 등을 상징합니다.
4. 프롤로그에 낚이지 맙시다. 픽션이니까요.
5. 타 사이트에서 장편 판타지 두 작품을 동시 연재하는 관계로 연재 속도가 늦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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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야기
세상은 참으로 공평하다. 대지를 밟으며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 할 것 없이 장점과 단점을 두루 갖기 때문이다.
세상 참으로 자비롭다. 아무리 무능한 인간이라도 그 단점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생의 짝이 꼭 한 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이치에 따라 장점을 적당히 갖고 단점도 적당히 가진 소녀가 자신의 단점을 적당히 감싸주는 소년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하교 중이기 때문에 교복차림에 책가방 지참은 당연지사요, 추가 옵션을 갖추기까지 했다.
그녀는 떼 지어 나오는 학생들을 역행하여 나미모리 중학교 교문을 통과했다. 타 학교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눈에 띄면서, 더 눈에 띄는 행동을 하는 바람에 수많은 시선을 받았다. 하지만 소년을 향한 강한 마음이 그녀를 움직이는 원동력과 그녀의 얼굴을 가리는 두꺼운 철판이 되었다. 사랑에 깊이 빠진 소녀는 무적이었다.
세상의 이치에 따라 장점을 적당히 갖고 단점을 적당히 가진 소년이 자신의 단점을 적당히 감싸주는 소녀를 교실 창문을 통해 보고 있었다. 왼팔에 차고 있는 붉은 완장은 이 시점에서부터 무력한 장식품이 되고 말았다.
그는 풍기위원회 회원들에게 방과 후 풍기단속을 맡기고 귀빈 응접실로 들어갔다. 교실 팻말에 적혀 있는 이름과 다르게 풍기위원회의 특별실로 사용되면서 실질적으로 그만의 개인실인 이곳은, 매일 소년이 소녀를 맞이하는 만남의 장(場)이었다. 방과 후면 오로지 소녀만 들어올 것을 허락했다. 풍기위원회 위원조차 들어갈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쿄야 씨.”
“어서 와.”
매일 변함없이 소녀가 귀빈 응접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항상 똑같은 대사를 주고받았다. 그 다음엔 소년이 소녀를 맞이하러 직접 다가간다. 자존심이 강한 소년이 타인을 위해 움직이는 건 이 세상에서 소녀만이 할 수 있다.
소년과 소녀 사이의 유대는 제 3자가 감히 낄 수 없도록 단단하다. 그리고 이미 다른 소녀나 다른 소년에게 줄 마음이 없을 정도로 서로에게 온 마음을 내줬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도 서로에게 등을 돌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르바이트 비를 모아서 그동안 갖고 싶었던 티세트를 샀어요. 피크닉 가기 딱 좋게 큐트한 전용 트렁크도 있고, 간식도 겸할 수 있게 접시랑 포크까지 있어요.”
대나무로 짠 트렁크를 열자 연보라색 수국이 깔끔하게 그려져 있는 아담한 티세트가 가지런하게 정리된 모습이 드러났다. 작은 포트 하나와 찻잔 두 잔, 받침 두 장과 접시도 두 장, 티스푼 두 자루와 포크도 두 자루, 냅킨 뭉치, 그리고 차 거름망. 버너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다과를 차릴 수 있는 기본세트였다.
“물을 끓여오지.”
소년은 소녀가 가져온 티 포트와 찻잔을 예열기에 넣고 전기포트로 물을 끓였다. 본디 귀빈 접대용 특별실이기 때문에 차를 끓이기 위한 제도구 및 기구들이 응접실 한 곳에 구비되어 있었다. 예열기까지 있는 건 수선스러울 지도 모르지만 ‘귀빈’을 대접하려면 이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미모리 중학교 운영회의 생각이었다.
소녀는 소년이 차를 우릴 물을 준비하는 동안 식기를 탁자 위에 차례대로 펼쳤다. 응접실에 있는 공용 식기를 사용하다가 자신이 구입한 식기를 사용하려니 뿌듯하고 기뻐서 전신에서 행복의 아우라가 나왔다. 줄창 웃는 얼굴에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오늘 실습시간에 만든 파운드케이크가 있어요.”
“차는 다즐링으로 하지.”
서로에게 이것을 해 달라 저것을 해 달라 부탁하지 않았다. 서로에게 뭐든 해주고 싶은 마음에 자신이 직접 움직였다. 그런데도 서로의 행동이 겹치지 않고 동선이 얽히지도 않았다. 환상의 호흡이라고 하면 과장이겠지만 그렇게 불러주고 싶을 만큼 잘 맞았다.
웃는 얼굴을 잘 보이지 않는 소년은 소녀와 같이 있을 때면 내내 얼굴 전체로 웃었다. 엷은 미소는 기본이요, 소녀만을 보는 눈은 필수 옵션이며, 화색이 돋는 것은 상황에 따른 선택 옵션이었다. 마음에 품은 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차고 넘칠 정도로 행복한 바보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는 길에 파르페 가게 옆 골목에서…….”
말하는 것은 소녀 혼자. 소년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소녀는 즐겁게 이야기했다. 흥분해서 상기된 얼굴로 방긋방긋 웃으면서 쉬지 않고 얘기를 이어갔다. 매일 만나면서 매일 할 말이 중복되지 않고 항상 새로웠다. 그리고 다양한 손짓과 표정 때문에 가령 같은 말을 하더라도 다르게 들렸다. 소녀는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전부 소년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반대로 소년은 소녀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빠짐없이 알고 싶었다. 그가 의존하는 세계는 그녀가 활보하는 세계보다 편협적(편협: 한 쪽으로 몰리고 좁은)이었다. 그래서 소녀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그것을 통해 소녀를 좀 더 깊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미, 자신 밖에 모르던 소년에게 소녀의 존재가 소년이 모르는 새로운 바깥 세계 그 자체였다.
하늘에 노을이 지고 학교 전체가 조용해졌다. 가장 늦게까지 남은 운동부도 전부 부활동을 마쳤다. 교사의 수십 개 되는 교실들 중에서 이 시간까지 온기가 남아 있는 곳은 귀빈 응접실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활기 있는 곳이었다.
소녀는 파운드케이크를 다 먹고 빈 기름종이를 부스러기가 흘러 떨어지지 않도록 반듯하게 접었다.
“쿄야 씨도 오늘은 즐거운 일이 있었나 봐요?”
“나?”
“네.”
소년은 빈 식기들을 한 곳으로 모아 정리하다가 아주 잠깐 손을 멈췄다. 즐거웠던 일인지 그저 평소와는 다른 어떠한 일이었는지, 무언가 생각나서 피식 웃었다. 그는 소녀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그렇게 한 번 웃는 것으로 끝냈다. 그리고 마저 작은 식기 탑을 쌓았다.
“사와다 씨 일행하고 있었나 보네요.”
“그 무리에 속하는 누군가랑. 그런데 잘 알아맞히네.”
“나미모리 중학교에서 쿄야 씨랑 얽히는 대담한 사람들은 사와다 씨 일행 밖에 없는 걸요.”
“하긴 그렇군.”
소년은 짧고 굵게 숨을 내쉬었다. 리본이라는 이름의 어린 아기가 나타나면서부터 본의 아니게 사와다 츠나요시 등과 행동을 같이 하게 됐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닌 일에 가끔씩 끼게 됐지만, 날이 갈수록 휘말리는 일의 규모가 커졌고 개입하는 정도가 깊어졌다. 개별 행동을 고수하는 자세는 바꾸지 않았지만, 남이 보면 소년 역시 마피아 봉고레 패밀리의 예비 10대 보스 휘하 젊은 세력에 버젓이 속한 일원으로 보일 것이다. 남의 시선일랑 신경 쓰지 않는 소년에게는 본인이 인정하지 않는 이상 쓸데없는 흥미성 화제 거리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하히? 사와다 씨 일행 중 한 명이라면……. 쿄코의 오빠인 사사가와 료헤이 씨?”
“이번에도 정답이야.”
소년과 소녀는 식기를 씻기 위해 나란히 복도 개수대로 향했다. (학교 중에는, 화장실과는 별도로 복도 중간에 개수대-물받침대가 있는 실내식 수돗가 정도로 생각하면 쉽다-가 설치된 학교도 있다. 글쓴이가 8년 정도 전에 졸업한 중학교가 바로 이 복도 개수대가 있는 학교였다. 화장실 세면대보다 더 애용했다.) 식기들은 소년이 들었다.
“한 번에 척척 맞히는군.”
“한 명이었다면서요. 리본에게 떠밀린 사와다 씨 아니면 동급생인 사사가와 씨일테니까요.”
소녀가 개수대에 상비되어 있는 세제와 수세미로 식기에 거품질을 하면 소년이 흐르는 물로 헹궜다. 이것도 매일 하는 평범한 일과였다. 하지만 타인에게는 절대로 보일 수 없는 초 개인극비일과였다. 나미모리 일대의 제압 독재자가 설거지하는 모습이라는 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 희귀한 광경은, 소년 입장에서는 소녀에게만 보이고 싶은 색다른 자신이고, 소녀 입장에서는 자기만 알고 싶은 소년의 가정적인 면모였다―라고 설명하는 편이 좋겠지만, 궁극적으로 소년의 위신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부분이라 되도록 비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소년이 그렇게 하자고 혹은 소녀가 그렇게 하자고 권한 것은 아니었다. 굳이 일부러 말로 드러내지 않아도 상대가 숨기고 싶은 부분은 서로가 알아서 챙겨줬다.
귀빈 응접실 뒷정리도, 문단속도, 같이 교문을 나서는 것도 전부 매일 반복하는 일상.
해가 뜨면서 아침이 오고 점심을 지나 저녁이 되고 해가 지는 것처럼, 변함없이 쉼 없이 반복되는 나날이 조금은 지루할 것이다. 하지만 단조로운 반복 속에서 약간의 변화만 있다면 권태감을 느낄 틈이 없다. 그리고 어제와 똑같은 오늘과, 오늘과 똑같은 내일을 누군가와 같이 보낸다면 지루함이 반으로 줄어든다. 그 사람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운 사람이라면 단조로운 일상이 무료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에 취해 자신이 느끼는 시간의 흐름이 빠른 나머지, 오늘과 같아도 좋으니 빨리 내일이 되기를 바랄 것이다.
소년과 소녀는 시간이 속절없이 빨리 흐르는 것이 아쉬웠다. 서로 손을 잡지 않고 나란히 저녁의 거리를 걸어가면서, 말 한 마디도 없이 조용히 상대의 옅은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주변의 잡음은 그들에게 닿지 못했다.
갈림길에서 꺾어 들어가기만 하면 소녀가 사는 집이었다. 그들이 매일 헤어지는 장소가 이 갈림길의 교차점이었다.
“하루.”
소년이 소녀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줄곧 일상의 평화를 지켜오던 소년이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로 일상의 순환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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