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하츠·크림슨셀/PH·CS 팬소설作

행복을 만끽하는 순간

★은하수★ 2012. 12. 26. 15:25

 

1. 이것은 PandoraHearts(판도라하츠) 팬소설입니다!
2 팬소설에는 너무나 실력이 미약한 저인지라 졸작이 싫다 하신 분은 ‘뒤로’퍼튼이나 ‘백스페이스’를 살포시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3. 오랜만에 판도라하츠 팬소설을 쓰는 터라 일단 간단하게 단편으로 워밍업을 합니다.

-----------------------------------------------------------------------------------------------
 

 

행복을 만끽하는 순간

 

문득 잠에 깨서 눈을 떠보니 방은 조금 어두운 편이었다. 아침이라 눈이 떠진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어둑어둑한 시야 때문에 ‘뭐야’라고 낮게 잠긴 목소리로 중얼 거리고는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이불에는 솜이 두껍게 겹겹이 들어 있어서 묵직했다. 겨울이니까 이 정도로 무거운 이불이 아니면 밤새 추워서 못 잘 것이다.

“아, 커튼.”

헝클어진 금발머리가 다시 이불 밖으로 쑥 나오는가 싶더니, 파자마 차림을 한 10대 중반의 소년이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왔다. 찬 공기 때문에 몸을 바르르 떨었지만 털이 복실복실한 실내화를 꾹꾹 눌러 신고 급히 창가로 다가갔다.

창문마다 두껍고 무거운 벨벳으로 만든 커튼이 꼼꼼하게 쳐져 있었다. 게다가 커튼 색도 어두운 와인과 어두운 감색이라 아침 햇살이 방을 비추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촤륵]

용감하게 커튼을 좌우로 젖히는 순간, 냉기가 소년의 얼굴에 휘몰아쳤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

소년은 두 팔로 제 몸을 꽉 감싸 안았다. 그래도 창문에서 떨어지지 않고 얼굴을 창문 유리에 가까이 내밀어 밖을 내다봤다. 눈부시게 하얀 정원이 바로 보였다.

“눈이다.”

그는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동그란 볼을 발그레 물들이며 기뻐했다.

“오늘이 섣달그믐이지?”

다음 날이 새해라서 기뻐하는 것인지, 오늘 밤에 저택에서 열 파티를 기대하는 것인지, 소년은 두 팔을 쫙 펴고 팽이처럼 뱅글뱅글 돌면서 방을 배회했다. 입가에는 미소가 만개한 그대로였다.

“엘리스에게 어떤 드레스를 선물할까? 풍성하고 긴 머리칼과 매력적인 눈동자를 가졌으니까 어떤 거든 다 어울릴 거야. 게다가 내가 사 주는 거면 뭐든 거절하지 않는단 말이지. 빨리 시내에 나가서 엘리스를 위한 드레스랑 목걸이를 사야지.”

아무래도 파티를, 파티에 참석할 그녀를 기대하는 모양이다.

[똑똑]

아침에 그의 방을 찾아올 사람이라면 두 명 있지만, 이렇게 예의 바르게 노크를 한다면 분명 ‘그’였다. 소년은 배시시 웃으면서 그를 방으로 들였다.

“일어났어, 길.”

“역시 오늘 같은 날은 깨우기 전에 일어나는군.”

흑발에 금색 눈동자가 묘한 조합을 이루는 청년이 들어왔다. 나이트레이 공작가의 양자이자 레이븐의 계승자인 길버트 나이트레이였다. 어린 시절에 모셨던 주인, 오즈 베델리우스-지금 파자마를 입은 채 상당히 들떠 있는 금발머리 소년-가 어비스에서 살아 돌아온 이후 다시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얼른 시내로 나가자. 엘리스의 드레스를 사야해.”

오즈의 반응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는지 길버트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줄 알고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전차와 같은 추진력에 밀려버렸어.”

“응?”

오즈는 고개를 왼쪽으로 과하게 갸우뚱 거렸다. 길버트는 두 손으로 그의 머리를 감싸 잡고 제자리로 척 세웠다. 그리고 다시 한숨을 짧게 뱉었다.

“샤론이 엘리스를 데리고 나갔어.”

모든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한마디였다.

샤론 레인즈워스. 레인즈워스 공작가의 유일한 공녀로, 현 공작인 할머님에게 직접 전수 받은 쥘부채 휘갈겨 치기 기술을 훌륭하게 소화하는 동시에 자신이 하고픈 일은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여왕님 기질을 갖고 있다는 뒷소문이 파다한 (외모는) 어리지만 (실제로는) 어리지 않은 상대하기 쉽지 않은 인물이다. 마이페이스가 강한 오즈도 샤론은 함부로 자극하지 않았다.

“으음. 샤론 양이 엘리스를 여동생처럼 귀여워한다지만 오늘까지 엘리스를 독점하려고 하다니. 뭐, 파티 때는 내가 계속 파트너로 데리고 있을 거니까 지금은 양보해야지.”

오즈는 조금은 실망할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대인배와 같은 면모를 보이며 담담하게 넘어갔다. 그러나 곧 특유의 간사한 미소를 씨익 지었다.

“엘리스의 쓰리 사이즈는 꿰고 있으니까 엘리스가 없어도 드레스를 살 수 있어. 그리고 샤론 양이 사주는 것 대신 내가 사준 걸 입힐 자신도 있고.”

“오즈. 너 지금 진짜 야비한 표정인 거 알아?”

길버트는 아니나 다를까 한 전개에 어깨가 축 쳐졌다. 그렇다. 충성을 맹세한 주인 오즈 베델리우스는 언제나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하나부터 열까지 포석을 준비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이 몸이 중심’이라는 자기 규칙을 철저하게 관철했다.

소년과 청년은 간단하게 외출 준비를 하고 저택을 나섰다. 저택이 시가지에서 멀찍이 떨어진 한적한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시장 근처까지는 마차를 타고 갔다. 깊숙한 곳까지 귀족 마차를 끌고 갔다간 섣달그믐이라는 이유로 부랑자나 빈민들이 ‘적선’을 요구하며 바글바글 모여들 게 뻔하기 때문에 적당히 거리를 두고 마차에서 내렸다. 옷도 덜 화려하게 입고 허름해 보이는 망토를 두른 것도 다 같은 이유에서였다.

귀족 중에서도 4대 공작가라는 높디높은 가문에서 나고 자란 소년이 아무런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서민들의 시장을 활보하는 것도 신기한 광경이지만, 여성 전용 드레스샵에 여성을 동행하지 않고 과감하게 발을 들이는 것도 진귀한 모습이었다. 길버트는 시장 근처의 조그만 다세대 주택에서 혼자 살기 때문에 나이트레이 가의 양자라고 해도 시장을 돌아다니는 것쯤이야 예삿일이지만, 아무래도 드레스샵에 남자끼리, 그것도 소년과 청년이 나란히 들락날락하는 것을 영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주인이 저렇게 당당하게 행동하는데 시종이 감히 말릴 수 없었다. 생각해 보라. 본디 귀족이라면 유명하면서 유능한 재봉사를 저택에 불러 신체 치수를 재고 옷감을 고른다. 시장의 드레스샵을 이용하는 건 귀족까지는 아니나 돈이 많은 상인계층, 혹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하급 귀족 정도다.

“길. 엘리스에겐 어떤 색이 가장 잘 어울릴까?”

“글쎄.”

가게 안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살피는 오즈와 다르게 길버트는 출입문 근처의 벽에 기대서서 건성으로 응하기만 했다.

“엘리스처럼 귀여우면서도 쿨하고 기품 있는 매력적인 아가씨는 뭘 입어도 다 소화할 수 있지만, 역시 매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드레스가 좋겠지?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색이 좋아야지.”

“네가 좋은 걸로 골라.”

“전에 산 고급스런 붉은 색 드레스, 정말 잘 어울렸지. 눈동자가 깊은 붉은색이라 거기에 맞춘 건데, 역시 눈 호강할 정도로 예뻤어.”

“그럼 같은 색으로 하던가.”

“이번엔 신년 맞이 파티잖아. 그리고 ‘마담 레드’와 같은 별명을 노리는 게 아니라면 당연히 다른 색으로 입어서 뭐든 다 어울리는 매력 넘치는 레이디라고 뽐내야 한단 말이야.”

“그러면 붉은 색 빼고 골라.”

참고로 ‘마담 레드’에 대해 알고 싶다면 ‘흑○○’라는 작품의 전반부 스토리를 참고하길 바란다.

몇 차례 대화가 오고 간 끝에 결국 오즈는 길버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길버트는 멀뚱멀뚱 그를 내려다보다가 생각지 못한 기습을 당했다.

“길. 너무 대충대충이야.”

오즈는 길버트의 넥타이를 쥐어 잡고 아래로 확 내려 당겼다. 그리고 다시 휙 돌아 서선 이 드레스 저 드레스를 꼼꼼히 살폈다. 길버트는 이런 일도 다반사라서 한 마디도 따지지 않고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검정색도 실크와 얇은 코튼으로 이렇게 고급스러울 수 있구나. 엘리스의 머리칼과 어울리겠어. 눈동자가 가장 아름다운 액세서리니까 눈동자를 돋보이기 위해선 검정 드레스가 좋겠지. 디자인도 너무 귀엽거나 너무 섹시하지 않게 무난하고. 순백의 드레스보다 더 우아할지도.”

드디어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발견했다. 오즈는 드레스 자락을 매만지며 감탄을 줄줄이 늘였다.

“이제 됐지……?”

길버트는 그의 표정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전체적으로 온화하면서 만면으로 행복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마치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이 예비 신부를 위한 선물을 고르는 것처럼. 오즈가 여태껏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표정이었다.

“오즈.”

“응?”

다시 평소대로 돌아왔다.

“그 바보 토끼가 그렇게 좋냐?”

대답이 없었다. 마주 보며 침묵인 채로 시계의 초침이 째깍째깍 움직였다. 단순히 순수한 소년의 미소를 유지하던 오즈는 점점 눈을 크게 뜨며 당황한 듯 놀란 표정으로 변하더니 이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자신을 한심스러워 하면서도 기쁜 복잡한 표정을 만들었다.

“아……. 그렇구나. 그래서 엘리스를 위해 뭔가를 해줄 때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구나.”

오즈는 다시 자신이 고른 드레스를 쳐다봤다. 그리고 이것을 입은 엘리스를 상상했다.

“정말, 정말 잘 어울릴 거야. 다른 사람들이 반하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해주고 싶어.”

그의 전신에서 또 다시 행복이 넘쳤다. 급기야 지금 빨리 엘리스를 보고 싶어 한다는 것까지 주변 사람들마저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녀 생각에 푹 빠져 있었다.

“길. 난 말이야, 엘리스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게 좋아. 바로 옆에서 바로 앞에서 같이 있는 게 좋아. 그리고 이렇게 엘리스를 생각하면서 엘리스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도 좋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이 따뜻한 감각이 끊임없이 흘러나와 내 몸을 감싸. 엘리스가 내 전부가 돼 버릴 것만 같아서 무서워. 그런데 엘리스만 있어 준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아. 내가 망가져도 엘리스만 고귀하다면, 내가 타락해도 엘리스만 숭고하다면, 난 무한히 행복할 수 있어.”

“나 참.”

길버트는 오즈를 이해하기 어려운지 모자를 앞으로 기울여 얼굴을 살짝 가렸다. 그래도 자신의 주인이 저렇게나 기쁜 얼굴로 즐겁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싫지 않았다. 양 볼에 홍조를 띄우고, 이 자리에 없는 그녀를 생각하는 그윽한 눈빛에, 멈추지 않는 온화한 미소. 길버트가 아는 한 아마도 지금의 오즈가 평생 중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일 것이다.

 

 

 

 

 

 

 

★은하수★의 망상의 세계

★은하수★의 망상의 세계

★은하수★의 망상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