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한달간의성전수호록(완)

한 달 간의 성전수호록 : D-20 압도적인 수!

★은하수★ 2009. 3. 18. 19:20

D-20 압도적인 수!

 

변함없이 세계수와 최근접한 곳에서 주변 감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성전이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모르니까 하루 사는 걱정만 할 뿐, 생명의 숲 안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만큼 긴장생태는 아니었을 겁니다. 추측할 필요도 없이 분명합니다. 날씨가 워낙 화창했던 터라 생명의 숲 바깥에 있는 사람들과 저절로 비교됐습니다.

[챙, 챙, 챙]

[퍽, 퍽, 퍽]

[붕, 부웅, 붕]

근처에서 수련 중이라 무기 부딪히는 소리, 막는 소리, 휘두르는 소리 등등 죄다 분명하게 들렸습니다.

한창 활기 넘치는 중에 살기가 엄습했습니다.

“엑시델, 숙여.”

폴이 제가 있는 나뭇가지에 재빠르게 올라와 제 머리를 밑으로 눌렀습니다.

[콰앙!]

어디선가에서 날아온 화구가 폴이 만든 보호막에 부딪히면서 터졌습니다. 이 폭발음을 시작으로 주변이 시끄러워졌습니다.

“어떻게 된 거야?”

“서쪽에서 나타났어. 수가 파악이 안 돼.”

“응?”

“내거 본 놈만 해도 스무 놈 더 되거든.”

하프 데몬이 스무 명 넘게 나타났다는 사실에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습니다. 심판단의 규모가 클 거라고 예상했으면서도 막상 다수가 나타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도 몸도 반응하지 못했습니다.

“정신 똑바로 챙겨.”

폴이 어깨를 꽉 쥐지 않았더라면 크로스보우를 전투태세로 바꾸지 못했을 겁니다.

폴이 지상으로 내려가고 나서 강철화살과 은촉화살 수를 확인하고 크로스보우를 왼팔에 단단히 고정했습니다. 나무들을 살피다가 지상을 내려다봤는데 마침 지브릴이 몇몇의 지원병을 데리고 나타났습니다.

“지브릴 바운테스터!”

딥데어족 지원병들은 심판단 무리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고 지브릴은 제가 있는 쪽을 향해 고개를 들었습니다. 역시 연륜이랄까, 폴과는 다른 깊은 붉은색의 눈이었습니다. 양손에는 날이 넓적한 대겸이 하나씩 쥐어져 있었습니다. 하나만 들고 있어도 무거울 것처럼 생겼는데 두 개를 들고서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습니다.

“그린은?”

“드렌필드에서 대기. 저 녀석들은 내 제자들이야.”

“전투종족이 수소라도 와 준다면 든든하지. 평화종족 몇 명분을 해내는데.”

“상대가 하프 데몬이라면 좀 다르지.”

“난 충분히 든든하니까 괜찮아.”

[피융]

[서걱]

[팍!]

[취악]

대화중에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놈들을 상대했습니다. 대표들 중에 저와 지브릴, 반대쪽엔 패시가 세계수와 최근접한 곳에 있었으니 그 녀석들은 모를 루트를 통해 파고든 대담한 녀석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저희가 있는 줄 모르고 전력으로, 거의 무방비 상태로 달리는 중이었던 터라 간단한 공격에 쉽게 당했습니다.

은촉화살과 강철화살을 섞어서 급소를 몇 발씩 더 타격을 주고 쓰러트렸습니다. 지브릴은 일찌감치 흉부를 벤 터라 쉽게 목을 따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가 쓰러트린 녀석의 목을 깔끔하게 벴습니다. 피가 솟구쳤지만 그녀의 붉은 눈은 조금도 찡그리지 않았습니다.

“몬데비언족과 소울족의 혼혈이군.”

하프 데몬에 대해 일찍이 잘 알고 있던 지브릴은 시체의 종족을 금방 눈치 챘습니다.

“있잖아, 일리안 쌍둥이랑 폴도 하프 데몬에 대해 알게 됐어.”

“그 정도는 예상했어. 너랑 패시를 페카도나드에 데려다 준 게 나잖아.”

늦던지 빠르던지 어쨌든 알게 될 사실이었습니다. 그래도 페카도나드에 갖다오지 않은 폴과 치니비에게도 가르쳐줬다고 한 소리 할까봐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 거였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습니다.

생명의 숲 곳곳에서 무기 부딪히는 소리, 폭발음 등 싸움 소리가 들렸습니다.

급한 마음에 세계수 쪽을 홱 돌아봤습니다. 다행히 세계수에 접근한 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근접한 수풀에서 패시와 심판단 단원이 싸우는 모습이 보여 심장이 빠르게 뛰고 온몸이 근질거렸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한 것이었습니다.

“살기가 대단하군……. 엑시델. 넌 세계수 위로 올라가도 괜찮지?”

세계수의 개인 수호기사(?)가 되라는 뜻이었습니다. 세계수의 가지 위에서 접근자들을 향해 화살을 난사하면 지원병들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도 벌 수 있고 적을 처리할 수도 있으니, 어떻게 보면 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습니다.

“아, 맡겨둬.”

지브릴은 시야에 걸려든 하프 데몬을 상대하러 발을 움직이고 저는 세계수를 향해 최대한의 속도로 달렸습니다.

“크앙!”

“읏.”

풀숲에서 막 빠져나와 세계수의 지배지(세계수의 영향으로 나무는 자라지 못하고 키 작은 풀만 자라는 일정 구역)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근처에 숨어 있던 하프 데몬 두 명이 덮쳐들었습니다.

일단 한 명은 은촉화살로 움직임을 저지하고 다른 한 명은 단검으로 방어 정도는 하려는데, 제 바로 옆에 폴이 나타나 대신 막아줬습니다.

“폴!”

“그렇게 눈에 띄게 이동하는데 당연히 걸리지!”

분명히 워프로 이동한 겝니다. 안 그러고서야 꽤나 떨어진 곳에 있던 아이가 그렇게 빨리 이동할 수 없습니다.

“덕분에 살았어.”

[푹, 뻑!]

이마 정중앙에 은촉화살을 박고 아래턱을 있는 힘껏 차올렸습니다. 그리고 타이밍 맞춰서 심장에 화살을 쐈습니다.

“크아앙!”

고통을 참으며 마지막 발버둥을 치던 하프 데몬은 커다란 주먹을 저를 향해 휘둘렀습니다. 뒤로 물러나며 그 주먹을 피했는데 다음 주먹이 또 날아들었습니다. 몬데비언족과 소울족의 혼혈이라 피부가 조금은 얇을 줄 알았는데 몬데비언족 순혈만큼 두꺼운가봅니다. 은촉이 심장에는 닿지 않아 주먹을 몇 번이고 휘둘렀습니다.

“엄청난 깡이잖아.”

그래도 처음에 이마에 쏜 화살 때문에 앞으로 고꾸라졌습니다.

“끝냈…… 어…….”

폴을 향해 돌아봤는데 폴은 오른손과 팔의 일부가 피범벅이었습니다. 심판단 단원의 시체가 하늘을 보며 땅 위에 누워있었고 그 옆엔 그의 심장으로 보이는 피범벅의 살덩이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한 큐에 끝낸 거야?”

“신경 쓰지 말고 할 일이나 해. …아니, 그게 아니지……. 말괄량이 아가씨. 너무 튀지 마.”

폴은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왼손으로 얼굴을 감싸듯이 가렸습니다. 자신이 뭔가 실수라도 한 듯 난감해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응, 응.”

상황도 상황이려니, 폴을 두고 혼자 세계수 가까이로 서둘러 갔습니다.

다른 이들이 철저하게 외곽 수비를 해 준 덕분에 그 때까지 세계수가 무사했습니다. 누군가가 세계수에 직접 마법을 가하려하면 마법을 쓸 줄 아는 아군 중 누군가가 공격을 막았습니다. 마법에 의한 공격이라면 성전 자체에 걸려있는 보호 마법으로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지만, 뉴노멀족이 마법을 못 쓰는 만큼 세계수의 마법 방어력이 다른 성전에 비해 현저하게 낮기 때문이었습니다.

“대박… 이라고 하면 욕먹으려나?”

세계수에 높이 올라가서 주변 상황을 살피니 생각보다 더 가관이었습니다. 숲이 망가지는 중인 건 당연지사고, 시체나 부상자가 맨 땅에 늘어갔습니다.

왕궁에서 파견한 군대의 피해가 제일 클 수밖에 없었고, 윌-프로텍터의 부상도 중상까진 아니지만 가벼이 넘길 만 한 건 아니었습니다. 모두 작게나마 피해를 입었는데 그 중 가장 멀쩡한 건 역시 딥데어족이었습니다. 전투종족의 힘을 제대로 보여줬습니다.

하프 데몬 중에서 바로 죽임을 당하지 않은 자들은 차례대로 어딘가로 소환됐습니다. 덕분에 약 서른 명 정도 되는 수가 열 안으로 줄었습니다. 그 수도 점점 줄면서 마지막까지 남은 것이 세계수 바로 아래까지 온 혈안왕이었습니다. 그를 상대한 건 슈볼츠아웃 형제였습니다. 형제까리 피 튀기게 싸웠습니다.

“2대 1인데도……. 나 참. 혈안왕이 너무 세잖아.”

혈안왕이 두 형들을 거세게 밀어붙였습니다.

“텔러!”

[뻑!]

혈안왕은 이야기를 잠시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티는 혈안왕의 매정한 주먹을 복싱의 방어 자세처럼 두 팔로 막았습니다.

“우리 셋 중에서 가장 똑똑했던 네가 선택한 게 이거냐!”

[휘익-]

[퍽]

테스가 혈안왕의 머리를 향해 다리를 휘둘렀지만 혈안왕의 큰 손에 가로막혔습니다.

“젠장.”

혈안왕이 테스를 티 쪽으로 세게 떠밀었습니다. 한 쪽 다리를 잡혀 있던 테스는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넘어졌습니다.

티는 이에 휘말리지 않고 높게 뛰어올라서 혈안왕을 위에서 덮쳐누르고자 했습니다. 몬데비언족이 워낙 몸집이 커서 타 종족이 밑에서 공중에 떠있는 몬데비언족을 올려다보면 분명히 공포에 질릴 것입니다.

지금 티의 상대는 혈안의 야수왕. 막 테스를 상대해서 자세가 흐트러질 법한데 당황한 기색도 보이지 않고 티의 멱살을 잡은 다음에 오른쪽으로 집어던졌습니다. 그야말로 누가 건네준 쌀부대를 곧바로 다음 사람에게 던져 넘기는 모양새였습니다.

공중부양 중이던 티는 달리 방어도 하지 못하고 땅에 추락했습니다. 지친 상태라 제대로 착지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일방적인 싸움이라 제가 도와주고 싶었지만 슈볼츠아웃 형제의 자존심에 금이 갈까봐 크로스 보우를 몇 범이나 들었다 내렸습니다. 세계수에 직접 위해를 가하지 않는 이상 제가 직접 움직여선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 형제싸움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싸움, 단순한 형제싸움으로 내버려두고 계속 관전자로 있었습니다.

“텔러!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대!”

“그러면 방해하지 않을 거야? 그럴 리가 없지.”

혈안왕은 다짜고짜 들이대는 테스를 능숙하게 다뤘습니다. 테스는 약간은 무례한 타입이라 상대하기 좀 꺼려지는데 혈안왕은 같이 자랐던 시간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잘 알았습니다.

[꾸욱-]

“크악! 혈안왕은 무표정으로 테스의 어깨를 차 다시 넘어뜨리고 나서 그 어깨가 땅에 박힐 정도로 비벼 밟았습니다.

“텔러!”

[뻑!]

“크악!”

혈안왕에게 달려든 티가 멀리 나자빠지는 순간 두 명의 소리가 동시에 들렸습니다. 복부를 정통으로 맞은 티와 어깨를 심하게 밟힌 테스의 소리였습니다. 혈안왕이 두 명을 동시에 제압하는 효적인 방법을 썼기 때문이었습니다. 테스의 어깨를 밟은 발을 축으로 삼고 다른 발로 티를 찼으니 두 명의 비명이 동시에 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위에 있는 건 엑시델 크로네스테인가?”

저를 알아차리고서 절 향해 오른팔을 뻗었습니다. 그 순간 혈안왕이 몬데비언족과 딥데어족의 혼혈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냈습니다. 그리고 윌랜드 남부의 한 유적지에서 마법을 썼던 것도.

“그만 두지. 너 하나만 남았어.”

폴이 저와 혈안왕 사이에 나타났습니다.

주변을 보니 멀쩡한 딥데어족 몇 명이 벌써 가까이 와 있었고, 팔에 보상을 입은 패시와 다리를 절뚝거리는 치니비가 멀리서 세계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실망이군, 혈안왕. 이쪽으로 빠질 줄 몰랐어.”

“지브릴 바운테스터……. 당신이 그 이름으로 불러 주실 줄이야…….”

“내가 제대로 불러주길 바란다면 얌전히 다시 내 밑으로 들어오시지.”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군요.”

텍스트리터 씨가 지브릴에게서 검을 배웠다면 혈안왕은 마법을 배웠다 합니다. 텍스트리터 씨와 혈안왕은 사형제가 되는 셈이죠. 그래도 혈안왕이 텍스트리터 씨를 사형이라 부르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텔러. 아버지께서 널 찾으셔. 어떤 마녀와 싸운 후에 급격하게 건강 상태가 나빠지셨어. 회복기미가 보이지 않아.”

“장례식에는 한 번 들르도록 해보지.”

혈안왕은 매정한 한 마디를 하고 사라졌습니다.

“빌어먹을 자식!”

테스는 누운 채 혈안왕에게 짓밟혔던 어깨를 반대쪽 손으로 부여잡고 소리쳤습니다. 몬데비언족의 포효가 주위의 공기를 격렬하게 자극했습니다.

“얼추 끝난 것 같은데 돌아가야지. …아가씨, 내가 안아줄까?”

“시끄러. 혼자 내려갈 수 있어.”

폴이 일부러 장난을 시도했는데 분위기나 기분이 영 아니었던 터라 차갑게 받아치고 말았습니다. 제 반응이 당연히 그럴 거라 예상했는지 폴은 그저 생글생글 웃었습니다.

“자, 부상자들을 한 쪽으로 모아. 뒤처리가 더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지?”

아직 대부분이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지브릴이 박수를 치면서 전체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 노련함에 마음속으로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