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1. 이것은 가정교사히트맨리본 판타지입니다!
2. 커플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3. 팬소설에는 너무나 실력이 미약한 저인지라 졸작이 싫다 하신 분은 ‘뒤로’퍼튼이나 ‘백스페이스’를 살포시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4. 전에 쓴 중편 [환상곡]이 츠나요시 군 중심, [오페라]가 무크로 군 중심이었다면, 이번엔 히바리군 중심입니다.
5. 타 사이트에서 장편 판타지 두 작품을 동시 연재하는 관계로 연재 속도가 늦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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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t movement(1악장)
히바리 쿄야의 나이, 어언 25세. 봉고레 왕국에서 젝스 리터(sechs Ritter : 6기사)의 지위에 앉은 지도 어언 3년. 그 세월 동안 디노는 한 번도 그에게 연락을 취한 적이 없었다. 덕분에 봉고레 왕국에 충실하게 익숙해지고 그곳 사람이 다 됐는데, 이게 웬걸, 디노가 외교 사절단의 대표로 찾아왔다. 마음 같아선 디노의 얼굴에 주먹을 한 방 날리고 싶었는데 현재 히바리는 봉고레 왕국의 리터(기사)고, 디노는 타국의 왕자니까 겨우, 정말 억지로 겨우 참았다.
“리터 폰 볼케(Ritter von Wolke : 구름의 기사), 표정이 별로네요.”
지금 히바리가 성심성의껏 모시는 봉고레 왕국의 왕, 츠나요시 봉고레는 히바리의 포커페이스를 꿰뚫어봤다. 히바리가 그를 불평 없이 따르는 것도 주변 일을 정확하게 파악(간파!)하고 온화하게(적절하게!) 대응하는 그 능력 때문이었다.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이 돼서 그런지 몰라도 디노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의젓하고 따뜻했다. 왕으로서 제대로 자각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더 좋은 왕이 되기 위해 끝없이 노력했다. 적의 말도 경청할 줄 알았으며(암살자는 빼고!) 결심한 바는 반드시 실행에 옮겼다(범죄 외의 것들!). 봉고레 왕이 히바리보다 한 살 아랫니, 올해 24살이고 햇수로는 왕이 된지 11년째다. 디노와는 비교도 안 되는 정치 경험치를 쌓고 상급 스킬을 보유하고 있음이니리, 이번 외교 거래에서도 빛을 발했다. 히바리는 은근히 디노의 신하가 아니라 봉고레 왕의 신하로 있는 현실에 감사했다. 저 무능한 왕자가 다음 캬발로네 왕이 될 거라 생각하니 한숨만 나왔다.
“좋을 릴 있겠습니까?”
“그래도 옛 친구잖아요. 서툴면 그걸 보완해주는 것이 친구의 도리에요. 게다가 오랜만에 만난 거니까 디노 왕자님이 본국에 돌아가기 전에 하루 정도 휴가라 생각하고 같이 편히 지내세요.”
“폐하, 그건 휴가가 아니라 징벌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결국 봉고레 왕의 햇살 같은 미소에 히바리가 밀렸다. 아무래도 히바리는 봉고레 왕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것이 부탁이든 명령이든 단순한 조언이든 진지한 충고든 항상 그의 말에 따르는 자신을 발견했다. 디노와 같이 있을 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구에게 순순히 따른다는 것 자체가 그에겐 기적과도 같은 것이었다.
알현실을 나온 히바리는 디노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가다가 도중에 복도 한복판에서 멈춰 섰다. 누군가 자신을 엿보는 시선이 사방에서 느껴졌다. 그것은 인간 아닌 것들의 시선이었는데 그들을 소환한 건 인간이었다. 히바리는 잭-오-랜턴(빛의 중위정령)을 소환한 소환자가 누군지 고민할 필요 없이 당연히 알고 있었다. 리터 폰 조네(Ritter von Sonne : 태양의 기사)인 사사가와 료헤이였다. 진심으로 사고 구조를 파헤쳐보고 정신 연령을 측정해 보고 싶은 상대지만 고급 무투술이나 고도의 정령술을 높이 사서 무례한 짓을 참는 중이다. 만약 사사가와가 젝스 리터가 아닌 평범한 리터나 그 이하였다면 필시 히바리가 그의 머리 뚜껑을 열어봤을 것이다.
“표정이 변함없이 극한으로 차갑군.”
“볼일 없으면 쓸데없이 말 걸지 말지 그래.”
“볼일 있다면 내 말을 들어줄 의사가 있다는 뜻이군.”
따뜻한 빛을 속에 지니고 있는 누런 호박들(잭-오-랜턴)이 사사가와의 주위를 멤돌면서 그에게 놀아달라고 보챘다. 그의 웃는 낯과 정령의 빛이 너무나 닮아, 히바리는 순간 속이 울렁거렸다. 평화로운 분위기에 익숙지 않은 탓에 일어나는 거부반응이었다. 봉고레 왕국에 처음 오고 근 석 달을 이 위통으로 고생했다. 그런데 삼년이나 된 지금, 새삼스럽게 위통이라니, 웃기지도 않았다. 다 갑자기 나타난 디노 때문이라고 치부하는 히바리였다.
“날 세워서 시간을 잡아먹을 만큼 대단한 것이 아니면 물어 죽이겠어.”
“캬발로네 왕국과 관련된 일인데 극한으로 구미당기지 않겠어?”
히바리는 정령들을 정령계로 돌려보낸 사사가와의 목에 검을 들이댔다. 검이라면 봉고레 왕국 최고의 검사, 리터 폰 레건(Ritter von Regon :비의 기사)에게 질릴 만큼 시달려봐서 사사가와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젝스 리터 중 한 사람으로서의 관록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는 웃으면서 히바리의 검을 손으로 밀어냈다.
“내겐 왕자의 얼굴을 보기 싫어서 회의실 외부 경비를 자처한 리터에게 외교 거래의 내용을 알려줄 의무가 있지.”
그러고 보니 히바리는 지난 이틀간 봉고레 왕이 괴교 거래를 성공적으로 성사시켰다는 결과만 들었지 그 내용을 들은 적이 없었다. 솔직히 관심조차 없었다. 회의실 내부에 있던 자들이 모두 왕의 능력에 감탄할 뿐인지라, 진정 주의를 박아야 할 것에 소홀히 했다. 아무리 봉고레 왕국의 리터로 있다지만 모국과 관련된 일을 간과하다니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디노 캬발로네 왕자가 망명을 청했어. 이에 우리 폐하는 군대 지원을 약조하셨지. 이것이 시작과 끝이야.”
사사가와의 대화 패턴에 익숙해진 지라(그럴 의도가 없었지만 저절로 그렇게 됐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픈지 알아들었지만 어째서 그 시작에 그 끝이 나왔는지 중간 과정을 듣지 않고서야 이해할 수 없었다.
“왕자님이 망명을 청한 이유는 둘째 치고 어째서 폐하께서 망명 신청에 대고 군대 지원을 양조하신 거지?”
“지금 당장은 극한으로 기억나지 않는다.”
누구도 아니고 사사가와인데 어련하겠는가. 외교 거래 내용의 처음과 마지막을 기억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했다. 덕분에 히바리가 디노를 찾아갈 분명한 명분(‘이유’라고 쓰고 ‘명분’ 혹은 ‘핑계거리’라고 읽을 수도 있다.)이 생겼다. 사사가와 덕분에 디노의 방에서 무안하게 아무 말 없이 서있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런데 뭔가 불안했다. 불안한 게 당연했다. 망명이라니, 군대 지원이라니, 비상시국에서나 튀어나올 법한 단어들이 아닌가. 디노에게로 향하는 히바리의 발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조금이라도 빨리 구체적인 사실을 알고 싶었다. 그 덕분에 자신을 향해 인사를 건네는 리터 폰 레건을 쌈박하게 무시하고 지나쳤다.
[똑 똑]
“실례하겠습니다. 봉고레 왕국의 젝스 리터 중 리터 폰 볼케, 히바리 쿄야입니다.”
“쿄야!”
딱딱한 인사 앞에서도 디노는 반갑게 그를 맞았다. 그가 자기에게 눈길 하나 안 준다고 침울해 하고 있던 차에 그가 방문해 주니 기쁜 게 당연했다. 창가의 팔걸이의자에서 하늘을 유유히 날아다니는 나비를 바라보다가 히바리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벌떡 일어서서 그에게로 서둘러 다가가려고 했다. ‘다가갔다’가 아니라 ‘다가가려고 했다’. 일어서는 동작과 앞으로 나가려는 동작이 부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바람에 발이 꼬여서 넘어져버렸기 때문이다.
“나잇값 좀 하십쇼.”
“응…….”
히바리는 한숨을 쉬면서 디노를 일으켰다. 그 때 팔로 느껴지는 감각이 이상했다. 디노의 무게가 3년 전에 비해 터무니없이 가벼워진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옷이 변한 체형을 제대로 가리고 있어서 그렇지 실은 비쩍 마른 상태였다. 꼭 기아에게 비단 옷을 입힌 것 같았다. 히바리는 디노가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한 나라의 왕자가 이런 몰골이라니, 심장을 검으로 파헤치는 기분이었다. 그의 이상상태도 알아채지 못하고 마냥 피하려고만 했던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군신 관계이기 전에 친구관계인 그를 이 지경으로 몰아세운 것이 자신인 것 같아서 더욱 괴로웠다.
“주위를…… 물리쳐 주십쇼.”
디노가 고개를 끄덕인 후에 눈짓을 보내자 사용인 모두 밖으로 물러났다. 타국의 왕족과 리터가 제 3자도 없이 밀폐된 공간에 같이 있는 것은 허락되지 않지만, 원래 같은 국가 출신이고 누구나 다 아는 오랜 친구 사이이기 때문에 국제적 문제가 될 염려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봉고레 왕이 먼저 허락을 했으니 이런 구차한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꼴입니까? 그리고 망명이라뇨? 3년 동안 캬발로네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역시 오자마자 잔소리구나. 진짜 오랜만에 듣는 쿄야의 잔소리……. 그리울 정도였다니까.”
“왕자님!”
바보같이 웃는 얼굴이 왜 그렇게 철없어 보이는지 모르겠다. 위험한 일이 생기거나 그런 기미가 보이거든 자신에게 연락하라고 신신당부 했거늘 어찌 이렇게 망가질 때까지 가만히 있었는지 한심스럽다. 이렇게 속으로 디노는 책망하는 히바리였다.
“그동안 편지 한 장 못써서 미안해. 뭐, 그만큼 바빴다는 거고, 그만큼 부지런히 움직였다는 거니까 용서해 줄 거지?”
요즘 세대의 왕족은 다 이렇게 천진난만하게 웃을 줄 아는 걸까? 역대 왕 중에 미소가 아름답다거나 따뜻하다거나 하는 왕은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역사 문구에서 읽어 본 적도 없다. 그런데 디노나 봉고레 왕이나 순종할 수밖에 없는 온화하고 순진무구한 미소를 짓는다. 히바리는 자신만 이 따뜻한 빛에 약한 걸까 짧은 고민을 했지만 다른 젝스 리터를 보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다들 봉고레 왕의 온기에 모이고, 다정함에 충성 서약을 했다.
“일단 앉으십쇼. 이 몸으로 봉고레 왕국까지 오시다니 정말 용하십니다.”
“냉정한 핀잔이야.”
“죄송합니다만, 칭찬입니다.”
히바리는 디노를 소파에 앉힌 후에 오른쪽 무릎은 세우고 왼쪽 무릎은 바닥에 대는 식으로 그의 앞에 무릎 꿇고 앉았다. 오랜만에 마주보는 옛 주군에 대한 그의 최대한의 예우였다. 디노는 옛 친구에게서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을 껄끄럽게 여기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히바리를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일어나. 무릎을 꿇을 사람은 다름 아닌 나야. 3년 동안 방치하고서는 염치없이 어려운 부탁을 하려고 왔어.”
다음 순간, 디노는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당했다. 그 히바리 쿄야가 손등에 충성의 키스를 한 것이다! 군신 관계에서 신하가 주군의 손등에 키스하는 것은 어느 순간에도 당신을 배신하지 않고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당신을 따르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고집쟁이에 자기 잘난 것만 알던 히바리가 디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충성의 키스를 하다니, 이건 천재지변과 맞먹는 대 사건이었다.
“전, 20년 전부터 당신의 신하였습니다. 왕자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것은 제게 숭고한 사명입니다.”
히바리의 입에서 낯간지러운 말이 술술 나왔다. 히바리 자신도 놀랐고 디노는 더더욱 놀랐다.
“여기 있는 동안 많이 변했구나.”
“주군을 진심으로 모시는 법을 배웠습니다. 봉고레 왕은 충성심을 우러나게 하는 자니까요.”
“성군이라 불리는 분인걸. 쿄야까지 변화시킨 걸 보면 그분은 단순한 왕이 아니라 신일지도 몰라.”
“왕자님도 그렇게 될 수 있으십니다.”
디노는 히바리에게서 이런 위로를 받을 줄 몰랐다. 전보다 훨씬 상냥해지고 어딘가 성숙해졌다. 진짜 어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캬발로네 왕국에서 혼자 생고생을 하면서도 히바리를 봉고레 왕국에 보낸 것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지금 보니까 후회는커녕 굉장히 잘한 일이었다. 이로써 히바리와의 재회는 그에게 있어 여러 모로 의미가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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