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Mutation-Kimera(리메이크)

Mutation - Kimera : 제 4 각성 ③

★은하수★ 2009. 9. 19. 11:06

세라핌은 얼음의 수정이 유도하는 대로 가디안스의 선발대가 있는 곳을 향해 날았다. 시아가 마력을 감추고 있었기 때문에 이 땅에 악마가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밀리엄의 폭발적인 마력과 메이의 마력을 감지했기 때문에 얼음의 대지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전에 급하게 돌아왔다. 제 1계급 천사 역시 글라셰 특유의 마력을 알기 때문에 얼음의 대지에 자기 외에 외부인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이 목적은 모르지만 그에게 선수를 빼앗기고 싶지 않은 마음에 비행 속도를 높였다.

“왔- 다-.”

200m쯤 남았을 때, 시아가 마력을 맘껏 방출했다. 메이와 이안이 깜짝 놀라고 세라핌이 급하게 제동을 가할 만큼 무시무시한 마력이 어마어마하게 주변을 휘감았다. 소름이 오싹오싹하게 돋을 만큼, 고위 악마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뽐내는 것처럼, 이것이 고위 악마의 힘이라는 것을 당당하게 내보였다.

“보스가 간만에 흥분하네.”

“상대가 세 쌍의 날개를 가진 치품천사니까요.”

“역시 우리 보스가 최고라니까.”

“온몸에서 짜릿짜릿하게 느껴지는 이 전율. 은근히 중독성 있어.”

감탄은 감탄이고 안전은 안전이었다. 입으로 시아의 힘에 대해 온갖 찬사를 다 하면서 슬금슬금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될 수 있는 한 멀리, 시아가 겨우 보일 정도까지 거리를 뒀다. 밀리엄과 낭인족은 글라셰 순종 둘을 데리고 피신했다.

“시아는 대체 얼마나 세?”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편이 귀 아프게 듣는 편보다 나. 귀띔 좀 해주자면, 악마계 후작 나으리지. 그것도 대공작 후보로 성큼 올라가 계시는 귀한 보물.”

“대공작으로 추대 받는 후작이라고?”

마야라임 라도이바이스는 얼음의 대지에서 생의 시작과 끝을 맞이하는 글라셰 순종 중에서 ‘머리’급에 해당한다. 외모는 아주 조그만 토끼로, 속성은 블러드 셰이드로 설정되어 있지만 실질적인 실력은 일반 블러드 셰이드보다 한 수 위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시아의 마력에서 오싹함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 주변을 장악한 시아의 마력이 본 실력의 극히 일부라는 것도 알아차렸다.

“이안.”

통칭 메이라 불리는 토끼 아가씨는 은백색 털을 입은 늑대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불렀다.

“어쩌면……. 나, 무지막지한 거물과 통성명했는지도 몰라.”

“그래서 마야는 무서워?”

“응. 무서워. 난 절대로 시아를 적으로 돌리지 않을 거야. 그녀의 힘은 우리 머리로 측정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야. 정말 대단한 키메라…… 라고 밖에 말 못하겠어.”

밀리엄과 낭인족은 글라셰 순종의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 제 3천왕은 토끼 아가씨의 통찰력에 내심 감탄했다. 일부의 힘을 조금만 보고서도 숨겨진 실체를 꿰뚫어보는 건 여간 해선 가질 수 없는 능력이었다. 얼음의 대지라는 고립된 지역에서만 살았으면서도 이 만큼의 통찰력을 가졌다는 건, 토끼 아가씨도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은 잠재력이 생각 이상으로 클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남겼다. 보스의 목적은 글라셰를 한쪽 종족으로 갖고 있는 키메라지만 덤으로 토끼 아가씨를 데려가도 나쁠 거 없겠다고 생각한 그였다.

“우리 보스는 훌륭한 먼치킨이거든. 쉽게 보면 곤란해.”

하이 엘프-실버 드래곤 키메라는 머리 위로 높게 기지개를 켰다. 보스와 세라핌이 서로를 경계하면서 가만히 마주보고 있는 것 자체도 대단히 흥미로웠다. 누가 먼저 어떻게 치고 나갈까하는 호기심이 흥분을 야기했다.

“아까부터 시아를 보스라고 하던데, 너히는 길드인 거야?”

“얼음의 대지 밖에서 우리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길드지.”

메이는 더 물어보지 않았다. 그들에 대해서 깊게 알면 안 될 것 같았다. 본능적으로 그들이 위험하다는 건 일찍이 감지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에게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는 그녀를 위축시켰다. 더 이상 그들과 엮여서도 안 되고, 그들을 더 알아서도 안 되며,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악마계의 유명 인사를 만나다니 영광이군요.”

“그런 당신은 세라핌인데도 못 알아보겠습니다. 제가 웬만하면 다 압니다만 당신은 정말 처음 봅니다.”

“치품천사라 해서 다 같은 치품천사가 아니니까요.”

마기를 맞붙이면서 탐색전을 벌였다. 그런데 시아가 갑자기 마기를 싹 다 거둬들였다. 세라핌은 당황하며 얼떨결에 그녀를 다라 마력을 숨겼다. 그 순간 앞머리의 그늘 때문에 잘 보이지 않던 블랙-레드 오드아이가 섬뜩하게 와 닿았다.

“키득, 키득. ……. 크크크크크크. …….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시아는 배를 붙잡으며 자지러지듯이 웃었다. 악마의 웃음소리는 얼음 수정 뒤에 숨어있는 글라셰들 마저 불안감에 휩싸이게 했다. 소름 돋는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온몸의 신경을 자극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쾌한 무언가가 척추를 따라 오르내렸다.

“그래. 그렇습니다. 치품천사라고 해서 다 같은 치품천사가 아닙니다. 아주 솔직하십니다.”

왼쪽 붉은 눈이 피가 일렁이듯이 사악하게 빛났다.

“타락천사 오이핌. 지명수배명단에 오른 분인데 제가 잠시 못 알아봤습니다.”

[쿠과앙!]

감쪽같이 사라졌던 마력이 다시 폭발하듯이 높게 솟아올랐다. 검은 날개가 활짝 펴지고, 한 갈래로 낮게 묶은 긴 머리칼이 탄력 있게 출렁거렸다. 그런데 위압감이 넘쳐나던 그녀가 그녀의 시야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하지만 그녀를 다시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녀의 마력이 분명하기 때문에 세라핌의 등 뒤에서 그녀의 파혼검 니이드를 들고 있는 그녀를 곧장 발견했다.

“지명 수배된 타락천사는 죽여도 된다. 이게 천계의 규칙 아닙니까? 오이핌.”

“누가 얌전히 당할 줄 알아?”

정체를 들킨 타락천사는 세 쌍의 흰 날개에 씌운 마법을 해제하고 시야에게서 잽싸게 떨어졌다. 반말로 말투가 급변했지만 시아를 두려워하는 건 변하지 않았다. 검은 날개에 촘촘히 박혀있는 지저분한 깃털이 파르르 떨렸다.

“얌전히 당해주시면 재미없습니다. 마음껏 발악해 주시기 바랍니다.”

타락천사는 시아의 살기에 밀려서 온몸이 경직됐다.

“그래도 계급은 치품천사니까 ‘재미’를 기대했는데 제 9계급 떨거지랑 피차일반이군요. 실망입니다.”

“으으으으으으…….”

어느 샌가 시아의 손이 타락천사의 얼굴을 대담하게 쥐었다. 마력이나 살기를 떠나서 악마 구유의 불쾌한 기운이 확 끼쳐 올랐다. 그는 부들부들 떨면서 양손으로 시아의 팔을 붙잡았다. 하지만 시아는 그의 얼굴을 더 세게 쥘 뿐 절대 물러나지 않았다. 날카로운 검은 손톱에 붉은 피가 맺힐 정도로 그녀의 손과 그의 얼굴이 가깝게 붙은 상태였다.

[치이이이이익]

“크아악!”

보스의 손에 응집된 마기가 산성으로 변하여 타락천사의 얼굴을 녹였다. 타락천사는 거세게 발버둥 친 덕분에 얼굴이 완전히 뭉개지기 전에 벗어날 수 있었다. 아니, 도망가도록 시아가 내버려둔 것이다.

엽기적이고 흉한 몰골이 공개된 순간 메이와 이안이 두 눈을 꽉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속이 울렁거리고 기분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런 식졌다.체 훼손을 본 적이 없었다.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다.

“주, 주, 주, 주, 죽여 버리겠어! 크악. 죽일 거야. 죽일 거야. 죽일 거야. 죽일 거야. 죽일 거야. 죽여 버리겠어!”

타락천사는 왼손으로는 얼굴을 가리고 오른손으로는 주먹을 단단히 쥐고서 시아에게 달려들었다. 마력으로 둘둘 감긴 주먹이 시아의 얼굴을 향해 빠르게 날았다. 하지만 헛스윙이었다. 시아가 너무 여유롭게 피했다. 타락천사는 시야가 많이 좁아지고 이성도 컨트롤이 되지 않은 탓에 주먹을 몇 번 휘두르든 그녀를 칠 수 없었다.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먹이를 노리는 짐승적 본능도 없고 기만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고수도 아니다. 타락천사가 시아를 상대하기란 새끼 길고양이가 사람에게 그르렁거리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미카엘이나 카마엘 계통이 아니면 천사의 전투력은 다 거기서 거기지. 계급 같은 건 그저 명분.”

밀리엄은 결과가 빤히 보이는 시시한 싸움을 보며 가소롭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지인들 사이에서 먼치킨으로 통하는 보스가 자드키엘 계통으로 보이는-최소한 미카엘이나 카마엘 계통이 아닌- 타락천사에게 1mm라도 밀린다면, 그건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전투력은 별로라도 마법력이 높으면 성가시잖습니까.”

“우리 보스에게 마법으로 덤벼서 1분 이상 버티는 녀석은 몇 없을 걸? 아, 물론 보스 역시 전력으로 상대할 때 얘기지. 게다가 천사족은 원래 마법에 약해. 선의 상징적 존재밖에 안 되거든. 유일하게 강점이 있다면 백마법이라고도 불리는 신성력일까? 하지만 그것도 마법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좀 있고, 통한다고 해도 가브리엘 계열이나 우리엘 계열이 아니면 보스의 상대가 못 돼.”

천사족 자체가 타 종족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타 종족이 그들에 대해 아는 사실은 몇 없다. 밀리엄과 같이 있는 낭인족도 천사족이 계열에 따라 능력이 제각각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악마족도 가문 별로 특이한 능력이 존재하나 천사족처럼 분명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천사족이 능력 구별은 정령의 구별법과 흡사하다.

“그리고 우리 보스가 오죽 세냐. 클러치 사마엘도 뒷일이 성가셔서 냅두는 거지 실은 간단하게 죽일 수 있는 분이라고.”

“그건 알고 있습니다.”

“저 타락천사는 전투력이 높은 것도 마법력이 높은 것도 아니야. 보통 세라핌보다 더 약한 것 같아. 아마 보스는 괴롭히면서 천천히 즐길걸? 이제 막 시작했는데 설마 벌써 끝을 볼까.”

밀리엄의 예상대로 시아는 쉽게 끝낼 생각이 없었다. 얼굴을 흉하게 뭉개버렸지만 상대가 쇼크사할 정도는 아니었다. 일부러 죽지 않을 만큼 힘 조절을 했는데 단번에 일이 끝나버리면 허무해서 화가 날 지도 모른다.

타락천사는 양쪽 주먹을 모두 강화 마법으로 공격력과 방어력을 높였다. 그리고 겉에 코팅까지 해서 주먹 자체를 단단하게 했다. 주특기가 격투기인지 복싱인지 구분이 되지 않지만, 발과 공격 마법은 일절 쓰지 않고 주먹만 쉴 새 없이 휘둘렀다. 시아는 일단 공격은 한 수 접어두고 그의 주먹을 전부 가볍게 피했다. 스트레이트, 어퍼컷, 훅, 잽. 뭐 하나 제대로 들어맞는 게 없었다.

어떠한 공격이든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무의미한 주먹질을 쉴 새 없이 퍼부은 타락천사는 숨을 거칠게 쉬면서 잠시 멈췄다. 시아는 그를 비웃지도 않고 얕보지도 않았다. 전혀 힘들어하지 않았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무표정으로 그를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죽여 버리겠어!”

[부웅-]

이번 스트레이트도 허공을 가르는 데에 그쳤다.

“왕년에 세라핌이었던 영광스러운 계급이 심히 아깝습니다.”

[뻐억!]

“컥!”

시아의 돌려차기가 타락천사의 복부 중앙에 정확하게 맞아 들어갔다. 타락천사는 타액을 내뿜으며 뒤로 날아갔다. 깃털의 상태가 불량해도 날개는 날개이기 때문에, 비참하게 멀리 날아가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자식, 뚫린 게 입이라고.”

“당신은 달린 게 머리입니까?”

“주, 죽여 버린다.”

“말은 쉽게 나오는데 몸이 안 따라주는가 봅니다. 자, 얼른 죽여 보십쇼.”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무표정으로 약 올리는 것도 비웃으면서 약 올리는 것 못지않게 신경을 박박 긁었다. 타락천사는 이성의 끈을 끊어 버린 지 오래였다. 두 주먹을 번갈아가며 내지르고, 내지르고, 또 내질렀다. 한 번이라도 시아를 스치지 못했지만 죽어라고 공격했다. 제 3자가 봐도, 시아가 봐도 안타까울 만큼 필사적으로 덤볐다.

“쓸데없는 움직임이 너무 많습니다.”

[뻑!]

“운동반경이 지나치게 큽니다.”

[퍽!]

“상대가 누군지 제대로 인식하고는 있습니까?”

[뻐억!]

시아의 군더더기 없는 잽은 타락천사의 뭉개진 얼굴을 제대로 가격했고, 복부를 노린 로우 어퍼컷도 그의 따뜻한 배를 깊숙하게 쑤셔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오른 다리를 높게 들어 올려서 그의 어깨를 강하게 찍어 내렸다.

타락천사는 방어조차 허술했다. 아예 하지를 못했다. 시아가 찍어 내린 힘에 밀려 고속으로 지상에 곤두박질쳤다. 다행히 얼음 수정이 없는 푹신한 눈밭 위로 떨어졌다. 수정 위였으면 몸이 관통됐을 것이다. 아니, 머리부터 세로로 떨어졌으니 관통되기 전에 머리가 박살나면서 피와 뇌 조각이 사방으로 흩뿌려졌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공격도 방어도 보잘 것 없지만 맷집은 훌륭하셔서 좀 더 즐길 수 있겠습니다.”

시아도 지상에 사뿐히 내려왔다. 무표정으로 타락천사를 내려다보며 오한이 드는 말을 거리낌 없이 던졌다. 타락천사는 자신이 겁도 없이 덤비고 있는 상대가 악마계의 대공작 후보 바르베리트 후작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끝가지 오기를 부렸다. 몸을 휘청거리며 일어서더니 복싱의 방어자세로 두 팔을 가볍게 접어들고는 그녀를 거칠게 노려봤다.

“지루하지 않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시아는 그의 등 뒤로 텔레포트 했다. 그가 차마 그녀의 위치를 파악하기도 전에 손톱이 날카로운 그녀의 손이 그의 왼쪽 귀를 찢어버렸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번에, 칼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찢었다. 차라리 칼로 베었으면 고통이 덜했을 것이다. 손으로 신체의 일부를 찢었을 때의 고통은 칼로 순식간에 벨 때보다 최소한 10배는 더 아프다.

“크아아아! 이, 죽일 년.”

타락천사는 피를 쏟아내면서 그녀를 돌아봤다. 지혈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못했다. 그런데 시아는 그의 뒤에 없었다. 그가 좌우를 훑어봤지만 그녀의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찌-익]

“캬아악!”

그녀는 그가 뒤로 돌 때에 맞춰 다시 등 뒤로 이동해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나머지 한 쪽 귀도 찢었다. 피가 거칠게 뿜어졌다.

“얼굴의 균형을 맞춰드린 겁니다.”

그녀는 대사 하나하나가 다 잔인했다. 그러나 그녀 자신은 본인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가를 알지 못했다. 이건 전혀 잔인한 축에 속하지 않았다. 평범한 고문에 불과했다.

“어차피 고막은 달려있으니까 소리는 잘 들리시죠?”

“이, 이, 이, 이, 이 년! 이, 이, 이, 이, 이 죽일 년!”

타락천사는 완전히 패닉 상태가 됐다. 그런데 그의 뜻대로 마력이 밖으로 방출되지 않았다. 그래서는 위협을 할 수도, 주먹을 강화할 수도 없었다. 머리의 양 옆에서는 피가 천천히 흘러내리는데 마력은 체내에서만 무정하게 흐를 뿐 전혀 그의 의지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그는 점점 더 패닉에 빠졌다.

“한 가지 묻겠습니다. 당신은 왜 여기에 왔습니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주먹을 들고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질문을 들었으면 대답을 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그의 공격이 통할 리 없었다. 시아는 가볍게 한 손으로 그의 목을 붙잡았다. 팔에 마력을 집중하여 근력을 높이자 그를 쉽게 들어 올릴 수 있었다. 그는 허공에서 발버둥 쳤다.

“당신은 왜 여기에 있습니까?”

“커컥, 시… 으르…….”

압도적인 차이에 굴복한 것일까. 알아들을 수 없지만 일단 대답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그게 중요했다. 시아는 손에 힘을 풀고 손가락을 펼쳤다. 그는 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지듯 땅 위로 힘없이 뚝 떨어졌다.

“다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심부름…….”

“누구의?”

“……그건…….”

타락천사는 대답을 머뭇거렸다. 그 때 그의 목덜미에 검게 그려진 문신이 보였다. 아니, 그건 악마가 애완동물에게 찍는 인장이었다. 악마들은 타인의 인장이 찍혀있는 애완동물은 범하지 않는다. 혹은 일부러 더 괴롭힌다. 누구의 인장인지 알아보기 때문이다.

“클러치 사마엘의 애완동물이구나. 그래, 그래. 그러면 내가 존칭을 쓸 필요가 없지. 애완동물 주제에 겁도 없이 주인의 적에게 대들다니 배짱이 일류급이군.”

인장을 보자마자 시아의 분위기가 싹 달라졌다. 살기는 없어졌지만 그보다 더 질 나쁜 불쾌한 기운이 감돌았다.

“살려 보내줄게.”

타락천사에게 있어 희망 가득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네 주인에게 똑바로 전달하려무나. 무식한 애완동물아. ‘얼음의 대지에 네 놈하고 관련된 녀석이 한 번만 더 발을 들이면 라르크에 있는 지부를 날려버리겠어.’ 자, 토씨 하나 틀리지 말고 제대로 전당해야 한다? 이왕이면 네 놈의 썩을 대로 썩고 짜부라진 혀로 주인의 발을 핥으면서 말이야. 주인이 착하다며 칭찬해 줄 거야.”

타락천사지만, 악마의 애완동물로 전락했지만 세라핌이다. 제 1계급 천사였던 자다. 자존심이 억수로 무너져 내릴 것이다. 하지만 이미 시아에게 굴복한 이상 이를 까드득 갈 수도 없었고, 짐승이 분개하는 ‘그르릉’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는 애완동물, 그녀는 후작급 악마. 이성을 겨우 다시 챙기면서 상대가 어떤 위인인지 자각했다. 첫눈에 알아봤으면서, 어리석게도 그녀에게 덤볐다. 그는 등에 땀이 주륵주륵 흘러내렸다.

“애완동물이니까 애완동물답게 굴어야지? 얌전히 묻는 말에 대답해야 한다?”

시아는 타락천사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는 주저앉은 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보내주기 전까지는 절대 이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사마엘이 시킨 심부름이 뭔가를 찾는 거야?”

[끄덕]

“글라셰 순종 아니면 키메라?”

“다, 당연히 키메라…… 에요.”

그는 다시 존댓말로 돌아갔다. 애완동물인 걸 들킨 마당에 배 째라하면서 반말로 나갈 수 없었다.

“그래, 그래. 키메라만 취급하는 크루세이더인데 당연히 키메라를 찾는 거겠지.”

길드 가디안스의 보스는 악마의 본성 중 사디스트적 본성으로 일시적으로 성격을 바꿨다. 타락천사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더니 손을 점점 밑으로 내려 그의 목덜미를 간질이듯이 만지작거렸다. 엄연한 성희롱이었다. 하지만 그는 거부할 수 없었다. 그의 의지가 아니었다. 사마엘에게 찍힌 애완동물용 인장이 그를 구속했다.

“저거 범죄 아닙니까?”

“아? 뭐, 아까 실컷 두들겨 패고 신체를 훼손한 것도 범죄잖아.”

낭인족은 시아가 타인의 몸을 불쾌한 손놀림으로 희롱하는 것을 처음 봤다. 그에겐 꽤나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사마엘도 펜타곤의 무스펠 실험 얘기를 알고 있나봐. 그치?”

[끄덕]

“고개를 끄덕이면 목을 제대로 만질 수 없잖아.”

“죄송해요.”

“심술궂은 애완동물에게는 벌을 줘야지.”

[찌-익]

시아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타락천사의 윗옷 어깨 부분을 가로로 길게 찢었다. 못이 아래로 흐느적 내려가면서 흰 어깨가 드러났다. 긴 목과 어깨의 부드러운 살갗을 더듬는 손놀림. 그는 파르르 떨면서도 인장의 힘 때문에 도망치지 못했다. 그녀의 손을 피하지 못하고 불쾌한 농락을 곧이곧대로 느껴야만 했다.

“네 주인은 펜타곤 중에서 스피를 더 경개해, 아니면 플루를 더 경계해?”

“으…….”

“말해도 돼. 군주에게 충성하는 건 신하의 일이고, 주인에게 애교와 교태를 부리는 것이 애완동물의 일이니까. 너는 애완동물. 애완동물답게 아양 떨고 착하게 굴면 되는 거야. 자, 내 손이 가슴으로 내려가기 전에 대답하렴.”

좀 전만 해도 주먹을 휘두르며 발악하던 자가, 지금은 너무 다소곳하게 앉아있다. 시아의 손놀림에 몸을 맡기며 얼굴을 붉히고 있다. 그의 주인, 사마엘이 쓰다듬던 것과는 다른, 아주 부드러운 느낌에 취해버렸다. 이제는 그가 스스로 알아채기 전에, 그의 의지에 따라 얌전히 시아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었다.

“스피는 중요하지 않아요. 플루를 제일 미워하니까 플루만 경계하고 계셔요.”

“착한 아이네.”

[꾸욱 꾸욱]

“으, 아. 으…….”

[꾸욱, 지익-, 꾹, 꾹]

아주 짧은 통증이 끝나고 뇌를 가볍게 자극하는 쾌락이 그의 신경을 마비시켰다. 악마에게 인장을 받았을 때 느낄 수 있는 ‘거짓된 황홀함’이었다. 그의 흰 어깨엔 시아가 손톱으로 새긴 새로운 인장이 그려졌다.

“사마엘에게 들키면 네가 곤란하겠지?”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인장 위를 쓰다듬자, 상처 틈에서 배어 오르던 피가 다시 안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자국이 깨끗이 사라졌다. 시아의 인장이 감쪽같이 숨었다. 이제 타락천사는 시아의 것이 되었다.

“자. 나의 귀여운 애완동물아.”

시아는 정신이 몽롱한 그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는 그녀의 손등에 맹세의 키스를 한 후 그녀의 손톱에 맺힌 자신의 피를 천천히 핥았다. 그는 그녀에게 완전히 굴복했다. 절대 반항할 수 없었다. ‘진 시아’라는, 사마엘보다 더 독하고 진한 마약에 취한 것 같은 기분이 그를 사로잡았다.

“이름은?”

“오이핌 자드키엘.”

“주인은?”

“시아 바르베리트-진.”

“다른 사람 앞에서 대답할 때는?”

“클러치 사마엘.”

“너의 새로운 심부름은?”

“사마엘을 감시하고 주인님께 보고할 것.”

그는 시아의 손등을 핥으면서 꼬박꼬박 대답했다. 악마의 애완동물 인장이란 점령과 지배를 뜻했다. 겨우 남작급 사마엘의 인장이야, 후작인 시아의 인장에 의해 무효화되는 게 당연했다. 평범한 담배와 마리화나를 비교할 수 없듯이 두 악마의 인장의 힘을 비교하는 건 어리석은 헛수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