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Mutation-Kimera(리메이크)

Mutation - Kimera : 제 4 각성 ④

★은하수★ 2009. 9. 22. 16:29

보스가 막 만든 애완동물을 워프에 밀어 넣자 흩어져 있던 길드원이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녀는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얼굴들을 보니 처음 보는 광경에 얼이 빠진 이가 대부분이었다.

“보-스-. 굉장히 쇼킹했어.”

밀리엄은 멀쩡한 쪽이었다. ‘보스는 모두의 모범이고 근엄하다’라는 환상이 아닌, ‘보스는 대단하다’라는 환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시아가 무얼 하든 그의 환상에 부합했다. 이번에도 ‘대단했다.’

“갖고 있는 능력, 썩혀 봤자 뭐 해. 한 번 쯤은 써 먹어야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오른손을 물로 휘감더니 타락천사를 쓰다듬던 손바닥과 그가 핥은 손등을 깨끗하게 씻어냈다.

“그 타락천사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

“뭐, 내 걸로 만든 거지. 이왕 내 거로 할 거, 말 잘 듣는 스파이로 만들었어.”

“스파이……?”

“단기간 소모품으로 끝낼 스파이.”

길드원들은 거리를 상당히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타락천사와 한 대화의 내용을 알지 못했다. 시아는 간략하게 타락천사의 정체와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설명했다. 다들 무슨 엄청난 걸 들은 마냥 재미난 표정을 지었다.

“멋져, 보스. 역시 악마는 재밌는 종족이야.”

밀리엄은 천천히 박수를 치면서까지 감탄했다.

“시아는 내 생각 이상으로 대단하구나.”

“이하동문.”

메이와 이안도 비교적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께름칙하게 여기기는커녕 오히려 그녀의 능력에 흥미를 가졌다. 흔치않은 능력이다 보니 거부감이 생기거나 호기심이 생기거나, 극단적인 반응 중에서 한 쪽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아주 드물게 무반응도 있지만, 두 글라셰 순종은 격하게 관심을 보이는 쪽이었다.

“모우나 필츠나 전부 시아의 상대가 못 될 거야.”

“어림도 없지.”

그들은 즐거워했다. 진 시아라는 존재를 재미있어라 했다.

“근데 보스. 아까 그 손놀림.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던데?”

밀리엄이 시아에게 바짝 붙어서 귀에 대고 소근 거렸다. 17세 소녀는 얼굴이 붉어질 법도 한데, 지금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의외로 덤덤했다.

“처음이야.”

“혹시 타고난 선수?”

“본능이란 무서운 법이니까.”

“헤에……. 본능이구나.”

밀리엄은 시아에게서 한 발짝씩 천천히 네 걸음 가량 뒤로 떨어졌다. 일부러 기피하는 척 했다. 시아는 그를 멀거니 쳐다보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가볍게 ‘풋’하고 한 번 웃더니 도도한 걸음걸이로 그에게 다가갔다.

“부러웠어? 너도 해 줘?”

오른손 검지로 밀리엄의 턱을 밀어 올렸다. 전혀 웃지 않는 낯으로 자신보다 키가 큰 엘프 청년을 까불지 말라는 듯이 쳐다봤다. 주먹질이나 발길질보다 더 아픈 협박이었다.

“엘프도 천사 못지않게 살이 연해서 느낌이 좋을 거야.”

“보, 보스…….”

“농담이야.”

시아는 밀리엄을 놔주고 코트 주머니에 두 손을 깊게 찔러 넣었다. 밀리엄은 하하하 웃어 넘겼지만 길드원들은 그러지 못했다. 시아는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아무래도 농담 같지 않았다. 그녀의 말은 뭐든 진담 같았다.

“아, 맞다. 너희들, 방금 본 건 비밀이다. 절대 누구한테도 얘기해선 안 돼. 특히 제 1천왕에게는 더더욱 안 돼.”

밀리엄이 진격 부대에게 단단히 일러뒀다. 그들은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시아는 어찌되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제 1천왕 민은 시아의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이미 있었다. 민을 깔보면서 멋대로 잘난 척하는 뱀파이어 순종을 손 볼 때 시아가 악마의 힘을 진하게 풍기면서 말과 간단한 손짓만으로 무뢰한을 희롱했다. 민은 보스의 새로운 모습에 적잖이 놀랐지만 그것이 악마의 본능 중 한 가지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딱히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보스의 색다른 모습 중 한 가지로 여길 뿐이었다.

“시아는 대단해. 얼음의 대지에서도 시아와 필적할 만한 상대는 찾기 힘들 거야.”

메이는 이안의 등 위에 올라탄 채 싱글벙글 웃었다. 시아의 실력을 본격적으로 피부로 느꼈을 때는 두려움과 거리감이 앞섰지만 지금은 전혀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친근하게 대했다. 전혀 어려워하지 않고 시아에게 좀 더 붙어 있으려고 노력했다. 이안은 그저 메이를 따라 행동하는 편이지만 그 역시 시아가 마음에 들었다. 자발적으로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다.

“뭐, 우리 보스니까.”

“세상에 둘도 없는 용자잖아.”

“역시 우리 보스가 최고야.”

새롭고 파격적인 장면을 보고 나서 넋이 나갔던 길드원들이 겨우 제정신을 차렸다. 시아가 무얼 하든 그들에게는 보스였다. 존경심이 우러나오는 그들의 진정하고도 절대적인 우두머리다. 살생도 서슴없이 하는데 그깟 희롱쯤이야.(일반적으로 사회에서는 전혀 통용될 수 없는 사고방식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이해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긴 해도, 보스는 보스니까 뭐든 용인할 수 있었다.

“이제 천사도 얼음의 대지에서 내보냈겠다, 몰 코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겠어? 메이양.”

길그 가디안스의 제 3천왕은 가디안스를 위해, 아니 가디안스의 보스를 위해 자발적으로 길 안내를 맡은 글라셰 순종에게 작업을 거는 듯한 간지러운 말투로 상큼하게 말을 걸었다. 이안은 밀리엄을 경계했지만 메이는 활짝 웃으면서 ‘응’이라고 발랄하게 대답했다. 이안은 밀리엄의 호스트 같은 언행이 마음에 안 드는지 회색 눈동자가 빛날 만큼 눈에 힘을 줬다.

동남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일시적으로 멈췄던 행군을 속행했다. 이미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들의 목적지는 몰 코톤이 있는 필츠 판바이스의 거점이었다. 길 안내를 위해 메이를 태운 이안이 시아보다 두 발짝 앞서서 걸어갔다.

암만 걸어가도 보이는 건 똑같았다. 연푸른색 얼음 수정과 흰 눈. 작은 티 하나 허락하지 않는 새하얀 눈밭 위에, 수정 무리-성인키만 한 수정을 중심으로 그 반만 한 수정 네다섯 개가 다닥다닥 모여 있는 하나의 무리-가 곳곳에 산재했다. 얼음의 대지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이 풍경만큼은 절대 바뀌지 않았다. 생명체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메이와 이안을 빼면 아예 보이지 않은 셈이었다. 몰래 숨어서 보고 있다는 감은 있는데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그나마 달라진 게 있다면 수정에서 용린수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글라셰 순종 두 명이 동행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였다.

“여긴 정말 눈과 얼음 밖에 없네.”

“얼음의 대지잖아.”

메이는 아주 당연한 대답을 당당하게 했다. 시아는 피식 웃고서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마침 메이가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 지루해? 계속 똑같은 것만 반복 돼서?”

“여기서 평생을 사는 누구씨도 있는데 지루하다고 말하면 실례지.”

“여긴 원래 이런 곳이고 우린 익숙하니까 괜찮아. 외부인이 보면 진짜 재미없을 지도 몰라.”

“외부인에게는 정말 지루할지도.”

이안이 메이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메이가 이안의 머리를 이마와 긴 주둥이를 지나 코끝까지 길게 수차례 쓰다듬었다. 이안은 메이의 손이 코에 닿았다가 다시 머리 위로 올라갈 때 코를 약간 들어 올리고서 킁킁 거렸다.

“아-. 그 보다는, 눈하고 얼음밖에 없는데 너희는 뭘 먹고 사나 해서.”

시아는 가까이 있는 수정을 손끝으로 스치며 지나갔다. 각성제를 먹은 것처럼 수정의 매끈한 감촉과 뼈까지 시린 냉기가 육체에 쌓여가는 피로를 잊게 해줬다.

“우린 얼음의 대지 안에 있으면 배고픔도 추위도 느끼지 않아. 대지의 힘을 받아서 성장하고 강해지는 거야. 하지만 대지 밖으로 나가면 너희처럼 무언가를 먹어야만 해. 밖에서는 다른 이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 수 밖에 없어.”

얼음의 대지 안에 사는 글라셰는 ‘식사’, ‘섭취’ 등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불의 대지에 사는 무스펠과의 또 다른 차이점이었다. 무스펠은 불의 대지에 끝없이 타오르는 불과 대지 주변의 생물체를 사냥하면서 생명을 유지한다. 식습관이 이렇게나 다르기 때문에 불의 대지는 비교적 외부에 개방적이고 얼음의 대지는 폐쇄적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글라셰가 얼음의 대지 안에서는 먹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곳의 키메라들도 그래?”

“오리지널이 글라셰인 경우에만 그래. 플러스가 글라셰면 이따금씩 밖으로 나가서 허기를 채워야 해.”

메이의 설명에 의하면 몰 코톤은 후자였다. 하지만 오리지널이 정령이기 때문에 천성적으로 허기를 느끼지 않았다. 다만 자연력으로 성장하고 육체를 유지하기 때문에 자연력을 충족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대지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정령이란 자연 그 자체라고 할 만큼 최고의 자연 친화력을 자랑하는 종족이기 때문에 이는 필수불가결하다.

“다들 먹고 살기 급급한데 너흰 그런 걱정 없이 사는 구나.”

“우린 이제껏 당연하게 그래 와서 그 점은 잘 모르겠어.”

“어떻게 보면 먹는 즐거움이나 포만감을 느끼지 못한 채 사는 거잖아.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헤-. 뭐든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라잖아.”

시아와 메이가 사소한 주제로 잡담을 하는 사이에 수정은 전혀 없고 눈만 소복이 쌓인 넓은 공터에 도착했다. 입구를 나타내는 듯이 기다랗고 두꺼운 수정이 5m쯤 거리를 두고 두 개가 세워져 있었다. 이안은 그 사이를 지나가기 전에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가디안스의 선발대도 멈춰 섰다.

“여긴 필츠의 영역이야. 겉에서 보면 평범한 눈밭이지만 게이트를 지나가면 숨겨진 안이 보여.”

메이가 땅 위로 내려왔다. 무어라 중얼 거리고 손바닥을 허공에 대자, 보이지 않던 막이 얕은 파동을 일으키며 둥글게 열렸다.

“이제 들어가도 돼.”

두 글라셰 순종이 먼저 게이트를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드래곤의 레어랑 비슷한 걸?”

밀리엄이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험한 관문을 통과해야 드래곤의 레어에 도달할 수 있듯이 게이트를 통과하자 겉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무수히 시야에 들어왔다. 오른편은 평범한 공터지만 왼편은 온갖 기구가 즐비했다. 높은 원형 탁자와 그에 어울리는 10개의 의자, 침대로 삼아도 될 만큼 푹신해 보이는 긴 소파, 그리고 천으로 가려서 내부가 보이지 않는 천장 등 얼음의 대지 밖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세간이었다. 이렇게 살펴보니까 드레곤 레어보다는 평범한 집에 가까웠다. 지나온 게이트는 대문 혹은 현관문인 셈이었다.

“필츠-.”

메이가 더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캡틴. 일이 너무 수월하게 풀리지 않습니까?”

하프 실피드가 밀리엄의 등 뒤에서 자그맣게 속삭였다. 그는 원래 인간 남성인데 추위를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구속체를 끊어 플러스 종족으로 변했다. 인간 여성도 라미아로 변해있었다. 여기서 추가하자면, 하프 엘프도 오리지널이 인간이다. 추위를 많이 타기 때문에 지레 긴장하고 얼음의 대지에 들어오기 직전에 플러스로 변했다.

“생각보단 쉽게 일이 진행되긴 했지. 나쁠 거 없잖아. 그만큼 빨리 돌아가고.”

“그래도 속이 편하지 않습니다. 뭐가 일어날 것만 같습니다.”

“무적 보스께서 계신데 무슨 걱정이야.”

밀리엄은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시아는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다가 밀리엄과 하프 실피드가 자기 얘기를 하는 것 같아 슬쩍 그들을 쳐다봤다. 하지만 곧 다시 주위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하스 실피드는 시아를 빤히 주시하다가 가볍게 미소 지었다. 보스와 같이 있으면서 앞 일을 걱정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펜타곤에게도 자신 있게 덤비는 보스다. 암만 성가신 일이 일어나도 문제없을 것이다.

천으로 덮인 찬장 옆에 모퉁이가 있고, 그 멀리로 흰 벽과 문이 보였다. 메이가 필츠를 찾으러 들어간 방이었다. 그 문이 다시 안에서 열리더니 메이가 발랄하게 뛰어나왔다. 그런데 모두의 시선은 다른 곳에 쏠렸다. 그녀의 뒤로 키가 2m쯤 되는 백곰이 새하얀 오랑우탄을 들쳐 업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육중한 몸매를 자랑하는 동물 두 마리가 본의 아니게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셈이었다.

“곰이 오랑우탄을 들 수 있구나.”

“그러게.”

길드원들이 입을 벌리고서 벙-한 얼굴을 했다.

“당신이 필츠 판바이스인가요?”

시아가 백곰 앞에 가까이 가서 섰다. 그의 키가 그녀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고개를 뒤로 젖혀야 했다.

“그렇습니다. 내가 필츠 판바이스입니다. 당신은…….”

필츠가 머뭇거리자 메이가 옆에서 그를 더와줬다.

“시아 바르베리트-진.”

“어, 그래. 당신이 시아 바르베리트-진이군요.”

“네. 당신 어깨 위에 있는 몰 코톤을 만나러 왔어요.”

“마야라임에게서 간단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필츠는 몰 코톤-흰 오랑우탄-을 긴 소파 위에 내려놨다. 내려놓고 보니 몰의 왼팔에 길고 얇은 상처가 보였다. 날카로운 것에 베였을 때 나타나는 모양새였다. 금방 생긴 상처 같은데, 필츠와 대련 중에 당한 모양이었다.

“한 길드의 보스라고 들었습니다.”

“아직 그릇이 작아요. 저들이 절 도와주는 덕분에 보스를 유지하고 있는 걸요.”

“너무 겸손하십니다. 악마계의 후작이라는 얘기까지 들었습니다. 한 눈에 보기에도 훌륭한 대공작 후보십니다.”

시아는 볼을 긁적였다. 메이가 필츠를 부르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싶더니 별별 얘기를 다 했나 보다.

길드 가디안스의 보스는 필츠 판바이스에게서 온화함을 느꼈다. 세로로도 크고 가로로도 듬직한 곰 아저씨는 메이, 이안, 몰 뿐만 아니라 다른 글라셰를 돌보는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 같았다. 밀리엄의 사부이자 시아의 고문, 엘더 피스크와 분위기가 매우 흡사했다. 덕분에 처음 만난 인물을 거부감 없이, 오히려 편하게 대할 수 있었다.

“시아. 모우가 지금은 이래도 실은 쓸 만해.”

메이는 시아가 기절해 있는 몰을 보고서 몰 같은 약골은 필요 없다고 할까봐 걱정 그득한 눈으로 몰을 감쌌다. 시아는 웃으면서 메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살라만더-글라셰 키메라라구. 이런 희귀 키메라를 거절하는 건 바보나 할 짓이지.”

“우리는 본인이 싫다 해도 억지로 끌고 가야 하는 입장이거든.”

밀리엄이 불쑥 끼어들었다. 메이는 슬그머니 밀리엄을 피해 이안에게 달라붙었다. 아까부터 줄곧 치근덕거리는 게 찝찝했나 보다. 밀리엄은 장난기가 발동해서 다시 메이에게 가까이 갔다. 메이는 이안의 등 위로 올라타려다가 급하게 나려가서 다시 시아에게 붙었다. 하지만 밀리엄이 계속 따라오자 결국 필츠에게 의지했다. 필츠는 인자하게 내려다보고서는 메이를 번쩍 들어 목마를 태워줬다.

“밀리엄.”

시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제 3천왕을 불렀다. 밀리엄은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시아의 앞에 섰다.

“부르셨어요?”

“너 로리콤이었구나.”

방긋 웃는 그 미소에 뒤통수를 2t짜리 망치로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밀리엄은 얼굴이 순식간에 시뻘게지더니 말까지 더듬었다. 뒤에서 길드원들이 캡틴의 정체를 잘 알았다는 듯이 감탄사와 휘파람 소리를 연발했다.

“괜찮아요, 캡틴. 캡틴이 로리콤이더라도 저희는 캡틴 편이에요.”

“이 세상은 다원화 사회라고 하지 않습니까. 로리콤 같은 특수한 인물 한둘 섞인다고 이 세상은 오염되지 않습니다.”

“저희는 캡틴의 특별한 취향을 존중합니다.”

길드원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커다란 창이 되어 밀리엄의 가슴을 관통했다. 아니라고 변명할 여지조차 없었다. 이대로 큰 오해를 짊어지긴 싫은데 얼굴색은 원래대로 돌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입도 입술만 달싹거릴 뿐 이렇다 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답답해 죽을 것 같았다.

“바르베리트-진 씨의 일행은 유쾌한 사람들입니다.”

“지루하지 않아서 좋죠.”

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진격 부대의 캡틴 골리기를 관람했다. 10명의 대원이 한 마음이 되어 캡틴을 궁지로 몰아넣는 장면은 언제 봐도 진경이었다.

“판바이스 씨는 제가 얼음의 대지에 온 이유도 들으셨나요?”

“키메라를 데려가기 위해 오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얘기가 빨리 끝날 거라 생각하시나요?”

“저와는 빨리 끝나겠지만 모우와는 빨리 끝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필츠는 원탁 쪽으로 걸어가서 의자 하나를 끌어당겼다. 그 의자에 앉으면서 모습이 상급 마족으로 변했다. 곰인 채 앉았으면 의자가 부서졌을 것이다.

스포츠형의 짧은 머리칼은 역시나 순백색이었다. 긴 망토는 흰 모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안에 입은 동양풍 의상은-중국 전통 복색에 가깝다- 어두운 감색 바탕에 붉은 금색 자수가 화려하게 놓여있었다. 동양의 전설에 나오는 천룡이 은근히 위압감을 풍겼다. 필츠의 위엄에 붉은 금색 자수가 한몫했다.

“마야라임. 이안이랑 놀고 있을래?”

“응.”

메이는 고분고분 내려갔다. 그리고 이안을 데리고서 모퉁이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시죠.”

“제 얼굴에 표가 났나요?”

“저에게 흥미를 아주 많이 생긴듯한 얼굴입니다.”

온화한 표정은 시아를 지긋이 살펴봤다. 시아의 리더로서의 그릇을 꿰뚫어보는 통찰력 높은 눈은 옅은 미소가 덮여 있는 입에 비해 무뚝뚝했다. 전혀 눈이 웃지 않았다. 입이 거짓된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시아는 포커페이스가 강한 만큼 상대의 표정도 잘 파악했다. 자신이 필츠에게 호기심이 있는 만큼 필츠도 자신에게 고도의 흥미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라도이바이스 양 앞에서는 약한 척 하지만, 실은 당신이 그녀보다 훨씬 강하죠?”

“아무래도 바르베리트-진 씨는 저와 동류인 것 같습니다.”

시아는 필츠의 대답이 아조 만족스러웠다. 그는 그녀의 기대대로 얼음의 대지에서 손꼽히는 강자가 분명했다. 메이도 강하지만 강한 쪽에 속할 뿐 일정 순위에 들지는 못할 것이다. 그의 실력을 보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다.

“헤-. 보스. 혹시 곰 아저씨가 덩치 값 하는 거야?”

밀리엄이 시아의 뒤에서 시아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얼굴을 앞으로 내밀어 볼을 마주 댔다가 이마가 시아의 손에 의해 뒤로 밀려났다.

“역시 재기가 빨라.”

“캡틴은 불리한 상황에서 빠져나가는데 재주가 좋다니까.”

진격 부대는 밀리엄이 너무 빨리 회복한 것을 아까워했다.

“허물없는 보스와 부하의 사이가 보기 좋습니다.”

“아뇨. 이 녀석들이 특이한 거에요.”

시아는 밀리엄을 세차게 밀어냈다. 밀리엄은 충격 받았다는 듯이 과장된 표정을 지었지만 시아가 깔끔하게 외면한 덕분에 씨알도 안 먹혔다. 콧소리를 내며 ‘보스-’하고 불러봤지만 돌아오는 건 무시와 무관심이었다.

“당신 같은 사람이라면 몰을 맡겨도 되겠습니다. 제 마음이 편해질 것 같습니다.”

“몰 코톤을 키메라로 만든 장본인인가요?”

“다섯 명 중 한 명입니다.”

정령 살라만더가 글라셰라는 플러스를 얻을 때, 키메라 의식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오각별 키메라 변형진을 이용했다. 마력이 강력한 글라셰 순종 5인이 의식을 행했다. 같은 부류의 키메라(살라만더-글라셰 키메라)가 하는 것보다 성공 확률이 낮지만 같은 부류의 키메라가 존재하지 않으니 순종이 의식을 치르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판바이스 씨가 몰 코톤의 스승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혹시나 했는데,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군요.”

시아도 의자를 하나 끌어당겨 앉았다. 고귀한 검은 날개는 의자에 앉기 직전에 감춰졌다.

“제가 가장 한가해서 몰을 맡았습니다. 지낸 시간은 짧지만 몰이 얼마나 강한지, 잠재 능력이 얼마나 거대한지 압니다. 밖으로 나가고픈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겠죠.”

필츠는 아버지의 눈으로 소파에 누워있는 흰 털 오랑우탄을 바라봤다.

“두 달 반이었던가요? 몰 코톤이 키메라가 된지.”

“성실하게 성장한 두 달 반이었습니다.”

“그런 보물을 저희에게 쉽게 맡길 수 있으시겠어요?”

“선택권은 몰에게 있습니다.”

필츠의 눈에는 망설임이나 서운함이 존재하지 않았다. 몰이 자신의 품을 떠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뭐, 그는 어린 애가 아니니까요.”

시아는 팔짱을 끼고 등을 뒤로 쫙 젖혔다. 등받이에 등이 완전히 붙었다. 올곧은 자세. 그리고 옅은 마기가 그녀의 몸에서 천천히 빠져나왔다. 암기도 그녀를 감쌌다.

“눈치가 빠르십니다.”

필츠도 여리게 마력을 발산했다. 마력 발산 양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아무 것도 없는 공터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무슨 일입니까?”

“잘 봐.”

시아는 낭인족의 질문에 턱으로 필츠를 가리켰다. 그 자리에 있는 자들은 모두 화려한 의상 위에 흰 망토를 걸친 아저씨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메이와 이안도 방에서 나왔다.

[탁]

필츠가 오른발로 땅을 두드렸다. 그러자 그의 마력이 몸을 타고 아래로 흐르더니 지면에 닿자마자 온 방향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얼마 안 있어 필츠의 구역 전체가 그의 마력으로 가득 찼다. 구역을 보호하는 힘이 강해지고 침입자를 경계하는 위협적인 힘도 동시에 강해졌다. 얼음의 대지에 의지하지 않고 그 스스로 자신의 구역을 지켰다.

“헤-. 군더더기 없이 능숙하게 마력을 다루네요.”

밀리엄도 필츠의 숨겨진 실력을 알아봤다. 낭인족은 시아의 앉은키에 맞춰 허리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 자는 대체 뭡니까?”

“몰 코톤을 키메라로 만든 장본인이자 스승.”

“설명이 부족합니다만.”

“마야라임과 이안도 저 자의 정체를 몰라. 본인이 자신을 숨기는데 우리가 파헤쳐봤자 좋을 거 없어.”

낭인족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인 후에 뒤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