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하츠·크림슨셀/PH·CS 팬소설作

[글렌x레이시]das berühmte Musikstück -제2곡

★은하수★ 2010. 8. 1. 11:49

1. 이것은 PandoraHearts(판도라하츠) 팬소설입니다!
2. 나름 글렌 바스커빌과 레이시 커플링입니다. 레이시가 실존했던 여성이라 가정하고 쓴 소설입니다.
3. 제목의 das berühmte Musikstück는 '다스 버뤼임테 무지크슈튀크'라고 읽습니다. '명곡(名曲)'이라는 뜻입니다.
4. 팬소설에는 너무나 실력이 미약한 저인지라 졸작이 싫다 하신 분은 ‘뒤로’퍼튼이나 ‘백스페이스’를 살포시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5. 타 사이트에서 장편 판타지 두 작품을 동시 연재하는 관계로 연재 속도가 늦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꾸벅).

-----------------------------------------------------------------------------------------------

-제2곡

기대주로 각광받고 있는 젊은 작곡가의 작업실은 악보 천국입니다. 창문과 직각으로 닿아 있는 벽에 업라이트 피아노가 피아노가 놓여있고, 창문과 피아노 위치를 제외한 사면의 벽에 책꽂이가 다수 빽빽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그리고 바닥부터 천장까지 닿는 책꽂이에는 악보가 가득합니다. 오선법이 시작된 때부터 지금까지 발표된 온갖 곡의 악보와 글렌 자신이 작곡한 곡의 악보입니다. 그런데 악보의 양이 책꽂이가 수용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서는 바람에 틈마다 꽉꽉 채워 넣었습니다. 잘못 건들면 터져 나올 정도로 위태위태합니다.

글렌은 수수한 손님을 보내고 나서 작업실로 들어갔습니다. 왼손에는 그녀가 준 종이를 꽉 쥐고 있었습니다. 몇 번이고 흥얼거렸으니 음 하나, 박자 하나, 그녀의 표기법, 전부 외웠을 겁니다.

“유명해진 이후로 귀족 외의 의뢰를 받은 적이 없었지?”

“그렇게. 정말 오랜만이야.”

아가씨가 만든 멜로디가 글렌의 손을 통해 피아노 연주로 살아났습니다. 글렌이 ‘구슬프다’고 표현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음의 배열이, 마치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모습을 그려냈고, 규칙적으로 잘게 쪼개진 박자가 초조하고도 안타까운 마음을 상징했습니다. 평범한 아가씨가 이 정도의 멜로디를 작곡했다는 사실이 진심으로 놀라웠습니다.

“그 손님, 음악에 재능 좀 있는 거 아냐?”

“그럴지도 모르지.”

“고막이 아니라 가슴을 울리는 곡은 드물다고.”

“솔직해서 그래. 음이 하나하나 솔직해.”

글렌은 아가씨가 그린 한 도막짜리 악보를 손에서 놓질 못했습니다. 저도 나름 음악에 소양이 있는 평론가고, 글렌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친구지만, 그가 그녀의 멜로디에 얼마나 매혹됐는지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그녀의 마음을 만족시킬 수 있는 곡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확신만이 있었습니다. 그의 영감이 온몸에서 방울방울 솟아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잠시 쇼팽의 악보에 정신 판 사이, 글렌이 깃털 펜과 오지선 노트를 들고 맹렬하게 악보를 그렸습니다. 단숨에 8줄이 음표와 기호로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잠시, 펜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가늘게 숨을 내쉬었습니다. 다음을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작곡을 할 때면 머릿속에서 수많은 음이 파도처럼 규칙적으로, 때론 불규칙적으로 몰려온다. 음의 파도 속에서 최상의 조합을 찾아내는 것이 작곡가의 능력을 판별하는 기준이다. 글렌이 했던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글렌이 파도 속을 헤치고 있을 때면, 그에게 일절 말을 붙이지 않습니다. 그 후에 나타날 어엿한 하나의 곡을 기다리느라 심장이 타들어가지만, 이 감각도 나름 재미입니다.

2줄이 더 그려졌습니다. 이 날의 작곡은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가장 소중한 친구였으니까 그 친구만을 위한 곡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거겠지?”

글렌은 창틀에 걸터 앉아 있던 제게 다가와 팔짱을 끼고서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저도 시선을 밖에 뒀습니다. 이렇듯,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구경이 아닌 관찰)하는 것도 우리 두 사람의 소일거리 중 하나입니다.

“상실감을 극복하는 자세가 기특하더군.”

“그녀의 눈은 이 세상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각오로 무장돼 있었으니까.”

그에게는 ‘레이시’라는 아가씨가 슬픔을 이미 극복한 모습으로 보였나 봅니다. 멀리서 슬쩍 엿본 저보다는 가까이에서 마주 본 그가 더 정확하겠죠. 어찌 됐건 그녀가 마음이 굳세다는 점은 우리 둘의 공통된 생각이었습니다.

“아, 그래. 그 아가씨의 미소를 가까이서 본 소감이 어때?”

“어째서 그런 걸 묻는 거야?”

“천하의 글렌님이 여성 앞에서 얼굴을 붉혔다고. 이건 놓칠 수 없는 특종이야.”

너무 흥분한 나머지 창틀에서 떨어질 뻔했습니다. 삐끗 했을 때 글렌이 잡아주지 않았다면 정말 떨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할 일 없으면 돌아가. 이번 마감, 아직 안 했을 거 아냐.”

“그러고 보니까, 너한테 줄게 있어서 왔지.”

손님에게 정신이 팔려서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상의 안주머니를 뒤적여, 미란다 양에게서 받은 음악회 초청권을 찾아 꺼냈습니다. 글렌은, 겉봉에 이름이 쓰여 있었기 때문에, 제가 건네주기 전에 알아서 제 몫을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봉인(봉투를 촛농이나 밀랍으로 봉한 후 그 위에 찍는 인장·문장)을 보자마자 다시 제게 돌려줬습니다. 저는 받지 않고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쳐다봤습니다.

“이 행동은 대체 뭐야?”

“내가 바르마 가라고 하면 학을 떼잖아.”

“미란다 양이 직접 준 거라고.”

“아서 경이 직접 줬대도 싫어. 바르마 가와 얽히는 건 절대 사절이야.”

글렌과 바르마 가 사이에 불온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딱히 얽혔던 적도 없습니다. 아직까지도 교류라곤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왜 그렇게 싫어하냐고 물어도, ‘본인이 싫다면 싫은 것이다’ 밖에 답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바르마 가가 이상한 루머에 휩쓸린 적이 있다면 모를까, 진절머리 치면서까지 싫어할 이유가 없는데도 글렌은 필사적으로 바르마 가를 멀리 합니다. 그래도 그가 이토록 기피한다고 해서, 바르마 가가 언짢아한다든가 섭섭해 하는 건 아닙니다. 저도 이제는 그러려니 하지만, 역시 이해가 안 됩니다.

“바르마 가에서 주최하는 음악회야. 그런 어마어마한 곳에 나 혼자 가라고?”

“왕실 주최 음악회도 뻔질나게 ‘혼자’ 다녀 놓고선 무슨 헛소리야?”

“이야-. 상당히 매정한 일침이군.”

말에 악센트를 주면서 또박또박 강조할 줄은 몰랐습니다. 결국 그를 데려가는 건 웃으면서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그는, 손님이 맡긴 멜로디에 완전히 심취해서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 사실을 잘 알기에 그를 가만히 혼자 내버려 뒀습니다.

“다녀오면 멋진 평론을 쓸 수 있을 거야.”

제가 먼저 배시시 웃으니까 글렌도 미소를 보여줬습니다.

“그러면 나는 그 평론을 잘 읽도록 하지.”

“최우선 독자로서 대가는 알고 있지?”

“완성된 곡을 가장 먼저 들려줄 것. 훗. 몇 년째 지키고 있는 약속인데?”

“아아. 이래서 오랜 친구가 좋은 거야.”

글렌은 저와 같은 생각이라는 듯이 입뿐만 아니라 눈도 부드럽게 웃었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사교계 사람들이 글렌의 이런 면모를 봐야 그를 어려워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밖에서는 대개 무뚝뚝한 표정에 차가운 눈을 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사업상 용무가 아니면 그에게 접근하지 않습니다. 무서운 인물로 오해하고 그를 꺼리는 겁니다.

미소가 아름다운 손님 레이시가 부탁한 곡은 소품 수준의 짧은 곡으로 사흘 만에 완성됐습니다. 단시간을 이룩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바로 그녀였습니다. 아가씨가 만든 한 도막의 멜로디 덕분에 글렌이 열렬하게 빠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완성된 곡은 저를 통해 아가씨에게 전달됐습니다. 그 때 글렌의 전언은 ‘나는 이미 작곡료를 받았다’였습니다. 아가씨가 그 후에 글렌의 집을 찾아갔지만 글렌은 장기 출타 중이었고, 저는 제 일로 무던히 바빴기 때문에, 글렌과 저는 점점 그녀에 대해 잊어갔습니다. 그러다가 글렌이 그녀와 다시 만난 것은 약 1년 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