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하츠·크림슨셀/PH·CS 팬소설作

[글렌x레이시]das berühmte Musikstück -제4곡

★은하수★ 2010. 8. 18. 11:38

1. 이것은 PandoraHearts(판도라하츠) 팬소설입니다!
2. 나름 글렌 바스커빌과 레이시 커플링입니다. 레이시가 실존했던 여성이라 가정하고 쓴 소설입니다.
3. 제목의 das berühmte Musikstück는 '다스 버뤼임테 무지크슈튀크'라고 읽습니다. '명곡(名曲)'이라는 뜻입니다.
4. 팬소설에는 너무나 실력이 미약한 저인지라 졸작이 싫다 하신 분은 ‘뒤로’퍼튼이나 ‘백스페이스’를 살포시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5. 타 사이트에서 장편 판타지 두 작품을 동시 연재하는 관계로 연재 속도가 늦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꾸벅).

-----------------------------------------------------------------------------------------------

-제4곡

리이드 광장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녀는 광장 남쪽에 위치한 한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글렌은 카페오레를, 레이시는 카페모카를 각각 앞에 두고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천하의 글렌이 여성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진짜 미소를 아낌없이 보여주는 일은 이 때가 최초였습니다. 글렌 스스로도 자신이 얼마나 바보같이 행복한 표정을 지었는지, 그 당시에는 전혀 몰랐을 겁니다. 레이시가 가진 그에 대한 첫인상이 ‘다정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으니, 할 말 다했습니다.

“표정이 많이 밝아지셨군요.”

“언제까지 슬퍼할 수 없잖아요. 그리고…… 벌써 1년인걸요.”

레이시는 씁쓸하지만 가벼운 미소로 친구의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됐습니다. 글렌은 그녀를 보며 사람이란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매 순간 다른 가면으로 자신을 무장하는 상층 사회의 사교계에 실컷 질려있던 차에, 그녀의 순수하고 꾸밈없는 표정이 그의 마음을 부드럽게 쓰다듬었습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병은 정말 어쩔 수 없나봐요.”

글렌은 찻잔을 입술 가까이까지 들었다가 도로 내려놨습니다. 레이시의 눈이 자신을 향하고 있어도 다른 것을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슬픈 것을 직시하는 눈, 상실을 경험한 눈, 그것은 ‘공허’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너무 가벼울 정도로, 의식도 감정도 이성도 사고도 영혼도 그 어느 것도 깃들지 않은 채 그저 ‘무(無)’ 자체였습니다. 글렌은 레이시의 눈을 마주보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접했을 큰 슬픔을 간접적으로 느꼈습니다. 심장이 아리고 위장이 욱신거렸습니다.

“언제 죽을지 알고 있었는데, 각오… 각오 하고 있었는데도, 막상 때가 되니까……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그래서 줄곧 괴로웠어요.”

레이시는 아직까지 친애하는 친고와의 사별을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였습니다. 1년 내내 상실감 속에서 살았습니다.

“한 명의 죽음은 여러 사람을 괴롭히죠. 그런데 레이시 양. 한 명의 방황도 여러 사람을 괴롭힙니다. 레이시 양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잖습니까. 저도 얄팍하게나마 당신과 연이 닿은 사람입니다. 당신이 여기서 더 무너질까봐 걱정됩니다.”

글렌은, 사교계 사람들은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온화한 표정으로 레이시를 올곧게 바라봤습니다. 그녀는 그제서야 글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의 눈은 그녀를 똑바로 응시했고, 그의 입은 여심을 흔들 만큼 부드럽게 미소 지었습니다.

그와 그녀는 서로의 빈곳을 채워주며 서로를 치유했습니다. 짧은 재회가 긴 인연을 이끌었습니다.

글렌은 집에 돌아온 후로 줄곧 창밖을 바라보며 레이시를 생각했습니다. 카페에서 나와 그녀가 마지막으로 보여준 것은, 짐을 전부 벗어내고 홀가분해진, 극상으로 환한 웃음이었습니다. 그는 그 순간을 회상할 때마다 심장이 격하게 뛰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안아주고 싶다 생각했습니다.

사교계에 나가면 화려하게 치장한 미인이 지천에 깔렸습니다. 평소엔 볼품없어도 꾸미면 예뻐 보이는 곳이 사교계입니다. 그런데 그곳의 여성들에게 화장 도구는 손에 쥘 수 있는 무언가 만이 아닙니다. ‘미소’마저 화장도구 중 하나입니다. 아무리 타고난 미인이라도 만들어낸 미소를 걸치면 추하게 보입니다. 차라리 웃지 않으면 좋을 것을… 하고 안타까울 정도로 가짜 미소가 판을 집니다. 그래서 미녀들이 ‘아름다워’ 보여도 ‘사랑스럽게’보이지 않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사랑스럽지 않은 것처럼, 아무리 귀여워도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랑스러우면 아름답게도 보이며 귀엽게도 보입니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는 둥, 제 눈에 안경이라는 둥, 하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닙니다.

글렌이 레이시에게 푹 빠진 것은 언제부터였을까요. 그녀가 처음 곡을 부탁하러 왔을 때부터? 리이드 광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부터?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곧잘 이런 말을 합니다. 전생의 인연이 현세에서도 이루어졌다고. 글렌은 말합니다. 전생에 이루지 못했던 인연을 현세에서 이루려 하는 것이라고. 서로 다른 표현이지만, 어느 쪽이든 사랑에 빠진 자만이 할 수 있는 남사스러운 말입니다.

1년 만에 레이시를 만난 날, 그 날 저녁, 글렌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을 받으며 피아노를 연주했습니다. 베토벤이 연모한 여인을 위해 작곡했다는 ‘엘리제를 위하여’였습니다. 유독 베토벤의 피아노곡을 좋아했던 만큼, 자신의 감정표현을 그를 통해 비유적으로 했습니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색가 글렌다운 면모.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다음 날 오후. 한 창 행복한 티타임인 3시에, 글렌의 집에 커피향보다 더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저기……. 계세요?”

연하늘색 드레스를 입고 챙이 넓은 흰 모자를 쓴 깜찍한 아가씨. 그래도 옷차림보다 흰 피부와 검은 장발이 더 눈에 띄었습니다. 화사한 햇살과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환한 미소는, 그야말로 최상의 보너스였습니다.

“오오! 이거 레이시 양. 오랜만이군요.”

그 때 마침 글렌과 함께 있던 저는, 그녀를 맞이하러 뛰어나갔습니다. 그녀는 흡사 총각 두 명만 있는 공간에 찾아든 요정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에……. 쟈크 베자리우스 씨?”

“이거 이거, 영광입니다. 소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바보 이름은 일일이 외우지 않아도 됩니다, 레이시 양.”

“이봐, 글렌. 이건 무슨 심술이야?”

“이쪽으로 오시죠.”

글렌은 저를 무시하고 레이시를 응접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솔직히 조금 놀랐습니다. 글렌이 손님 배웅은 해도 마중 나가는 일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 등 뒤에 그가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으니 기척을 눈치 채지 못한 게 당연합니다. 게다가 부드러운 눈빛과 은은한 미소라니, ‘얼음성의 성주’로 통하는 천하의 글렌 바스커빌이 지을 만한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웃었습니다. 레이시가 나타나고 돌아갈 때까지 줄곧 ‘행복에 겨운 따뜻하고 친절한 그대’의 모습이었습니다.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가관이었습니다.

“레이시 양은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바스커빌 씨께서 타주시는 건가요?”

“저 치에게 맡기면 커피가 아니라 엘릭서가 되거든요.”

제가 커피를 상당히 못 끓이긴 하지만, 엘릭서라니요. 환상의 불로장생약만큼 쓰고 맛없다는 뜻일 겁니다. 분명.

“이봐, 글렌. 아까부터 계속 놀리기만 하고 말이야.”

“나는, 사교계에서 당당하게 뺨 맞은 인간을 위로해줄 정도로 친절하지 않아.”

고백하겠습니다. 그 날은 제가 글렌에게 하소연하고 칭얼거리기 위해 찾아갔었습니다. 하지만 이 부끄러운 사실을 아리따운 청량제 레이시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글렌이 장난을 치는 상대는 저밖에 없으니, 그 사실을 간과한 제가 제 무덤을 판 격이었습니다. 이 재미있는 사실을 두고 글렌이 가만히 있을 리 없잖습니까.

“베자리우스 씨. 뺨을 맞으셨어요?”

레이시가 너무나 순수한 얼굴로 걱정스러워하는 눈빛을 마구 날렸습니다. 그리고 자세한 사정을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까지 온몸에서 오로라로 내뿜었습니다. 제가 워낙 미인에 약한 탓에 결국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약간의 오해가…….”

“귀부인의 스커트를 위로 확 걷었다나―.”

“오해라니까!”

글렌은 차분한 목소리로 심술궂은 말을 하고, 저는 얼굴을 붉히며 변명하고, 레이시는 저희 둘을 보며 까르르 웃었습니다. 왁자지껄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습니다.